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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이런것까지 나왔더냐!


감회가 새롭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고 사립고는 이렇게 홍보동영상까지 만들게 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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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고 느끼는 건...


아...김종진 선생님 많이 늙었구나



라고 보며 생각하니 내가 졸업한지 이제 10년이 넘어가는 구나-_-;;;

한국에 있었어도 이걸 본 순간 학교 한번 찾아가고 싶을텐데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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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송대학 출신으로

대학교 3학년 편입으로 일본의 하고로모 국제대학에 왔습죠


당시 대부분 학교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았고,덕분에 학교에 딸린 기숙사라고 고를 수도 없었고 따로 계약을 하고 올 용기도, 정보도 없었기에 그냥 저냥 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학교측에서의 감언이설이 많았기에 그런가 보다 싶었지만 실제 일본에 와서 느낀건..


[사기당했음-_-;;]


발품팔면 이곳보다 훨씬 좋은 곳을 더 싸게 들어갈수있답니다.

정보능력은 철저히 본인일이기 때문에 저처럼 덤탱이먹으시는 것도 좋음ㅋㅋ


풍문에 이 기숙사는 지금은 폐쇄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현관문 비루하기 그지없다.


현관문을 열고 바로 보이는 모습


방안의 모습 2인실이다.

(1인실은 이 방을 혼자쓴다)

방세는 1인실의 경우 2만5천엔 + 수도세전기세등 뭉퉁그려서 7천엔 = 3만 2천엔

2인실의 경우는 2만5천엔을 반으로 1만2천5백인씩에 수도세전기세 명목으로 7천엔은 그대로

죽 1만9천5백엔이다.

내가 제일 이해가 안되던데 이 시스템. 절반이면 1만6천엔인데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는 속셈인가.


주방을 확대한 모습. 가스렌지조차 없어 요리해먹기 힘들었다.


공간이 없어 이런식으로 대충 놓기도...





마지막으로 전체 사진

1층은 한국 남자 2층은 중국 남자 3층은 중국여자가 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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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만에 주저리.

어디까지 뭘 썼는 지도 잘 기억안나는 데 일단 대학2학년까지 써놨었네ㅎ

그러므로 대학 3학년을 써보기로 해ㅋ

대학교3학년은 우송대학교의 2+2시스템에 의해 하고로모국제대학에 유학을 가게됨.

유학을 가기까지가 참 힘들었지.

돈은 없고 부모님은 돈이 없다고 하고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노력을 하고 형 친구인 유진이형의 소개로 들어갔던 술집에서 서빙알바를 하면서 주로 돈을 벌었지. 그리고 초딩친구인 메바의 소개로 한 게임 - 던전 앤 파이터 -

게임골드를 현돈으로 판매하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이었지.

초기자본이 없는 형식에서 처음에는 현돈이 전혀 안벌리는 듯 보였던 던파가 만렙을 몇개만들고 나서 돈이 벌리기 시작.

그렇게 마지막까지 돈을 어떻게 마련하게 되고 유학을 가게되지.

마지막의 마지막에 하고로모국제대학의 학과를 선택할 수 있는 데, 우리때는 관광과와 경영과 단 두개였음.

제휴가 되 있던 다른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다른곳을 가고자하면 대학2학년때 다른 학교를 가고 싶다고 말을 했어야 한다고 하더라. 알다시피 대학2학년때는 돈문제에 어떻게든 칼복학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에 이런 걸 알아볼 틈도 없었지.

이제와서 후회하면 뭐하냐... 그래서 난 당시 좋아하던 미즈타니교수님한테가서 상담을 하게됨.

단지 일본어가 좋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뭘하고 싶냐고하면 특별히 뭘 하고 싶다는 걸 모르겠습니다. 관광이냐 경영이냐..솔직히 둘다 마음이 안갑니다. 그냥 제휴되 있는 다른학교에 일문과에 갈까도 생각하기도 하고....허나 유학은 가고 싶고...

이런 애매한 마음을 다 퍼부었고 미즈타니센세는 나보고 남자니까 경영배우렴-_- 이런 말을 해주더군.

지금 뭘 하고 싶은 것도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앞으로 진로등 어떻게 살까 생각해보렴. 일본어를 배워서 뭐해먹고 살래? 넌 앞으로 가장이 되어야 하는 남자니 일단 하고싶은 게 없다고 진로결정이 무난한 경영배워보렴. 그리고 유학가서 경영을 배운다고 전공에 맞게 취직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경영이 별로라면 전공은 경영으로 해두고 가서 일본어 배운다는 생각으로 배우는 것은 어떻겠니- 하다보면 경영이 맘에 들지도 모르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이런 화술에 그냥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전 경영을 선택하게 됩니다.

교수님이 마지막까지 한국어로 된 경영책 좀 사들고 공부해 가렴...하는 말을 쌩까고 그냥 무작정 유학길을 가게됨.

부모님과의 마지막 작별인사는 뭐..솔직히 단 2년이니 군대와 똑같은 기간이라 별 생각도 없이 그렇게...

[다녀올께요] 하고 집을 나와 서울 - 인천 - 일본 관서공항으로 도착하게 됩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하고로모대학의 직원과 05학번얘들이 마중을 나와있더라.

여기서부터 우송대학의 교수에게 들었던 내용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데, 도착하면 플랫카드같은 걸 들고 하고로모대학교수가 나와있을 것이라 하며, 도착과 동시에 인사을 부탁받았었지.

허나 현실은 아무것도 없었고, 05학번 얘들도 대학직원도 아무도 모르는 나는 꼴에 선솔자 - 반장같은 것 - 라고 그 비스끄므리한 것이라도 찾으러 나가봄.

...이 때부터 난 소외감을 느끼지 시작함. 당시 일본어도 개중에서 제일 잘한다는 자신감도 있었고 (자만) 유학과 1기생이란 최고 선배의 명함을 가지고 있으니 활기찬 마음을 가지고 일본에 왔음.

헌데 마중을 나온 05학번...04학번중 당시 유학을 온 사람은 칼복학을 했다는 것이고 그건 곧 05학번얘들이 입학하기전...혹은 입학과 동시에 군대를 입대했다는 것을 의미함.

즉, 우린 05학번얘들을 거의 대부분 모른다는 것이야. 복학해서 몇명보기는 했지만 유학온 애들을 볼 기회는 없었지.

그에 비해 같이 유학 온 06학번 얘들은 05학번과 1년간같이 공부한 사이야. 즉, 그들은 알만큼 알 사이이고, 06얘들은 하고로모에 오기로결정한 순간부터 네이트온등을 통해 이미 유학 와있는 05학번얘들과 연락을 했었다고 하더라...또 휴학했던 05학번얘가 있어 같이 유학을 오게 되었는 데 이는 곧 친구가 왔다는 이야기잖아.

그런 의미로 군대라는 명목으로 유학시기가 늦은 우리 남자들은 오사카에 대해선 햇병아리니 허울만 좋은 선배였음

한국의 이런 사장을 모르는 대학직원분은 우리에서 니들이 후배잖아 어쩌구저쩌구....[우리가 선배라구-_-]

아 당황스러웠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이었으니 말 다했지.

그리고 학교에 가서 이런 저런 서류들을 받아 들고 기숙사로 안내받게 되는 데, 남자들과 여자들은 기숙사가 틀리다고 하더군.

이것은 우송대의 청운숙시스템인가~! 하고 별 생각없이 끄덕끄덕.

여자기숙사쪽이 가깝고, 여자들 짐을 남자들이 좀 들어줬으면 한다는 말에 여자기숙사에 가보게 되고..우왓^^* 이런 원룸 우왕 굳!

감탄을 하고 남자기숙사로 갔은 데...........

이건 왠 거지소굴.

게다가 남자기숙사인 줄 알았었는 데 여자들도 있었어....2층까지가 남자고 3.4층이 여자.

어라? 들었던 이야기는 이게 아닌데....하고 물어보니 우송대출신 남자/여자기숙사라는 이야기로, 기숙사자체가 남자라는 의미가 아니라더군.어이상실.

여자기숙사 좋았는 데 왜 같은 돈 내고 우린 이곳임? ㅠ

나중에 듣고 보니 완전 계약 자체가 다르더군

우린 방세 2만5천엔/전기세 7천엔으로 한달 방세가 총 3만2천엔이야. 이 기숙사는 방 하나하나에 얼마나 전기를 쓰고 있는 지 계산할 수 없는 곳이라 전기세는 조금쓰던 많이 쓰던 7천엔.

2인실의 경우는 방하나에 둘이 쓰는 데 전기세는 반값이 아니고 둘다 7천엔씩 걷더군ㅡ.ㅡ또 다시 어이상실

덕분에 여름은 시원하게 외출시에도 냉방틀고 겨울은 한 여름같이 온풍틀어놓고 살았음-_- 지구 온난화는 이래서 일어나는 거임.

그에 비해 여자기숙사는 쓴만큼 내야하는 시스템이야. 결국 그녀들은 절약술에 통달했다는 소문이야ㅋ

난중에 기숙사나와서 혼자 방빌려서 살때보니 이 기숙사가 완전 바가지라는 것을 알게됨.

방세는 여자기숙사정도 레벨이 보통 2만엔 후반에서 3만엔 초반대/전기세는 하루에 14시간정도 냉방돌리고 해도 결국 7천엔~8천엔정도 나오더라

뭐 암튼 그렇게 비를 피할 판자집을 구했으니 다음은 먹을 것이지.

초반 알바도 못하고 집에서 가져온 돈만으로 살아야하는 현실에서 제일 싼 음식으로 해결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고 뭐가 제일 싼가 알아보게 됨.

그게 쌀-_-이라는 것을 알게되기까지 몇일을 고생하고...뭐 슈퍼가 어디붙어있는지조차 모르는 현실에서 사실 뭘 알아보기도 힘들었음.

그러기에 처음와서 몇일을 그냥 돈을 버리고 살았음ㅋㅋㅋ

그리고 수업을 들어가고 교과서 구입에 돈이 또 나간다는 사실이 참 날 슬프게 만들더라.

그렇게 평범한 일상수업을 듣게되고 이쯔음부터 이 대학이 썩은 대학이라는 것을 느끼게 됨.

한국인/중국인이 제일 앞줄을 앉아 공부를 할라는 마음가짐을 보이나 딱히 공부를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일본인들은 그냥 놀러온 학교란 느낌. 제일 뒷줄을 잠식하고 씨끌벅적 떠들거나 잠을 자거나.

난 일단 공부한다고 제일 앞줄에 앉아있었는 데 이게 세월이 흘러감에 까지 점점 뒤로 가더라ㅡ.,ㅡ

컴퓨터수업때는 다들 싸이월드한다고 정신없더라. 하긴 당시 싸이월드는 쵝오였음. 지금은 완전 죽었더라;;

아직 일본어를 잘 못하는 얘들은 뭐 수업을 못 따라가겠다고 징징대었던 기억이 있음

사실 수업을 적당히 짜는 것조차 힘들었다.

*보통 대학은 자신이 직접 수업짜지만, 우린 2년유학이라는 시스템덕에 수업이 빡세게 짜져 있었다.

정해진 수업외엔 들어선 안되고 들을 수도 없는 시스템.

지금껏 수업을 짜본적이 없는 데, 갑자기 수업을 니들이 꼴리는 데로 짜렴...이러니 왼쪽오른쪽도 모르는 데 뭘 짜라고 하는 건지..

게다가 듣고 싶은 수업중에 이미 이수완료된 수업도 있는 바람에 수업짜는 것조차 힘들었다. - 설명서조차 해석이 필요한 수준이니 머.


학기초엔 건강검진을 하는 데, 꼭 1년에 한번씩 검진이 의무화되어있다. 역시 일본...한국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복지수준이라 생각.

에피소드로 06학번후배얘중 한명이 실수한 이야기.

검진 마지막에 의사가 청진기로 심장소리를 듣고, 가벼운 면담이 있다.

그때 의사가 청진기를 델라구 윗도리와 브라를 치워보렴...하고 말했는 데 여차저차하다가 가슴을 그냥 젓꼭지까지 다 공개했다는 이야기. 다른 후배얘들은 윗도리도 그대로 브라위쪽으로 넣어서 심장소리를 들었다는 데, 그 아이만 특출났었음-_-;;

하긴 이쁘장하게 생긴얘로 (잘은 모르지만 06후배중 제일 인기있었다는 소문) 의사선생님이 맘에 들어서 꼭 가슴을 보고 싶다는 욕망을 분출해버린 것일지도 몰라ㅋ

나중에 나와서 이런말을 하면서 니들은 어땠냐니 머니 말하는 데 참...머리속으로 상상되어 버리니 주체할수 없더군ㅠ

여자얘는 마지막에 의사는 할아버지였음으로 머 죽을 때 다된거 함 좋으거 보여줬다 생각하지 머 이러는 데..

나도 좀 보여줘-_-하고 말이 헛나올 뻔 했음ㅋㅋ


평범한 일상생활중 노종이 혼자 유학을 왔다(?)

뭔소린가 하면 이녀석은 같이 유학을 올려고 했었는 데 여권이 문제였는 지 비자가 문제였었는 지 잘 기억안나는데, 지금껏 자신의 한자이름을 잘못알고 자라온 아이인듯.

암튼, 지금껏 자신의 이름이라 알고 지내던 한자로 신청을 한 것이고 본인확인이 안된다는 것으로 불가판정이 났다.

그리고 알아보니 자신의 한자이름은 사실 이거였다....하는 내용.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신청하고 그러느라 이녀석 혼자 한달쯤 늦게왔던 게지.


당시 하고로모에 온 한국인은 우리 우송대만이 아니었다. 호서대에서 1년짜리 교환학생도 와있었고, 고등학교에서 제휴가 되있어,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하고로모에 1학년입학을 한 얘도 있었다.

당시 그 1학년입학한 얘와 사귀었었지ㅡ.ㅡ 참 어린아이였다.

한두달? 사귀고 한달쯤뒤에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한국간다고 떠났고

나는 나대로 바쁘게 살고 그녀는 돌아왔고 바로 헤어짐....;;

특히 어딜 놀러간 적도 없고 항상 하마데라공원에서 산책하는 게 다 였음. 그것도 나름 운치있었던 것같은 기분도 들고.

사귄 기간도 짧고 그래서그런지 나도 사실 그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채 시간이 지났음.

미안-_- 나도 사실 얘랑 왜 사귀었는 지 모르겠다. 내 기억속엔 사귀기 전엔 재미있었는 데, 사귀고나서 같이 있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는 느낌이....ㄷㄷ


일본에 와서 2~3달쯤 뒤부터 자격외활동허가서를 얻어 알바가 가능해졌다.

지금은 공항에 입국과 동시에 신청이 가능해졌지만, 당시는 입국후 입국관리국에 가야함으로 시간도 걸리고,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님으로 이정도 걸리는 건 당연한 것이었음. 물론 우린 단체로 왔기에 학교에다 신청하기만 하는 되는 것이었음-_-

일본에서 알바를 찾는 건 사실 간단하다.

주변에 프리페이퍼가 널려있다. 제일 유명한 타운워크를 필두로 파도등등 여러가지.

매주발매하는 그 프리페이퍼를 들고 기숙사에 와서 전화를 거는 것만으로 끝.

그리고 면접 후 합격/불합격

이런 느낌인데 보통 외국인은 잘 채용 안해주기에 보통 20~30번 면접보는 건 당연한 이야기.

허나 난바나 신사이바시등의 번화가에 나가면 외국인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마음의 가게가 많기에 잘 채용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난바등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기에 외국인 채용을 하는 쪽이 좋다는 말도 있다)

허나 가게 잘못걸리면 [내가 널 채용해준거다] 이런 사장이 외국인이라고 일본인들과 차별대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난 당시 주변 패밀리마트에 알바채용이 결정되고 처음에는 주1~2회정도의 시프트였다.

실수도 많았고, 역시 일본인들과 비교하여 일본어가 제일 문제였지. 지금도 ???이런 느낌의 신조어들이 많은 데, 그땐 신조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자체가 잘 안통하는 느낌도 많음ㅠ

얼마전에도 '[유키코]사러 왔음. 님 어딧음?' 이런 손님이 왔길래 유키코가 뭐지ㅠ 이러고 알바생에게 물어보니 [雪印コーヒー牛乳 = 유키지루시 커피우유]를 지칭하는 신조어라 그러더군.

암튼, 일단 내가 왜 채용이 되었냐는 건데, 당시 알바모집광고를 내고 물론 필요한 만큼만 알바생을 뽑았는 데, 그 일주일후 갑작스럽게 한명이 관둔다고 해서 결원이 생겼는 데, 한명때문에 다시 알바모집을 하는 것은 가게에도 부담이 된다. 그러기에 나에게 전화를 해서 당장 일하러 오라는 전화를 하게 된거고 난 사실 운이 좋았던 것 뿐이다.

게다가 난 면접때 주1회라도 ㄳ하고 일하겠음ㅋㅋ 물론 7회들어가도 급료ㄳㄳ 이랬기에 가게입장에선 사람있으면 다른사람쓰고 없으면 나 쓰고 하는 느낌이겠지.

그게 바뀐 사건이 알바생의 절도사건이다. 당시 우리가게에선 폐기상품을 집에 가지고가서 먹는게 ㅇㅋ였는 데, 그 폐기상품봉지에 담배를 훔쳐서 집에 가지간 사건이다. 매번 한두갑씩 하니 3달뒤엔 어마어마...

편의점은 계약상 3개월에 한번씩 재고조사를 한다. 업자가 와서 해주기에 꼼수를 쓰기엔 힘들고, (*없는 건 아니지만 ㅋ)

훔친게 탄로난건 정말 단순하다. 첨엔 한달에 한갑정도 했다.....안걸린다.

횟수를 점점 늘리게되고....금액도 3개월에 한번하는 게 만엔- 다음 5만엔- 그다음 10만엔??? 어라???

마지막은 30만엔...이건 회사 시스템에 관련되어 있는 데, 재고조사때 20만엔이상 마이너스가되면 그 초과금액은 급료에서 까인다.

그리기에 20만엔이하때는 별 생각없던 당시 점장이 30만엔 마이너스뜨자 바로 감시카메라를 조사...

알바생들에게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범인을 밝혀내려 하고 그런 일련의 상황에서 감시카메라를 볼때 제일 정직하고 잘 일하던 게 나였다고 한다.

그 이후 시프트는 내 맘대로 ㅋ

방학동안 알바삼매경에 빠져 있다보니 정말 너무 바빴음. 여친은 무슨 돈이 쵝오-_- 내 마음이 이때부터 이랬음 ㅋ

한달 30일 중 쉬는 날은 보통 1일에서 2일ㅎ


중국인과 대학동기/후배얘의 재미있는 삼각관계 이야기도 있지만, 후배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넘어가겠음.


다들 노트북을 들고왔다는 것 같은 데 나같은 경우는 공부를 한다는 생각도 있고, 컴터 있어봤자 게임만 할터이고하니 (사실 노트북 살 돈도 없었음 ㅋ) 안들고 왔었는 데 같이 방쓰는 경수가 컴터로 놀고 있다는 것도 있었고, 내가 가져온것은 형이 줏어온 윈95가 겨우 돌아가는 노트북이 전부였다. 

난 이걸로 인터넷이라도 연결해서 웹서핑이라도 즐겨....아니아니, 공부를 위해 자료검색을 해야할 일이 많이 있음으로 인터넷을 달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사비를 털어 경수/노종/나 3명이서 돈을 모아 인터넷을 달기로 함.

인터넷을 단 것까진 좋았는 데 거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난 컴터에 인터넷을 연결을 해도 인터넷을 잡지 못해 쓰질 못했다-_-원래 셋이 나눠쓰자는 말을 했음으로 일단 돈은 내야하는 데 인터넷 이용을 못하는 것이 문제.

그렇다고 빠진다고 하기엔 내 명의로 개통했다는 것도 있고 얘들 컴퓨터를 빌려 인터넷을 쓰지 못하면 난 과제를 아예 못할 정도에 이르럿으니...결국 형에서 부탁을 하게 되고, 형에게 컴터를 한대 받는 다.

어떻게 오긴 왔으니 하루만에 모니터가 박살난 관계로 모니터는 주변 죠신에 가서 한대 뽑음ㅠ

경수는 파워다운로더. 노종은 게임폐인. 이 둘이 공유기를 이용하여 인터넷을 쓰니 파워다운로더는 하루종일 그냥 컴켜놓고 다운받기만 하다가 다운완료되면 감상....물론 학교갈때도 쭈욱 다운다운.

노종은 경수가 다운받을 때 게임진행이 원활하지 못해 화를 낸다.

한쪽에서 루트를 계속 쓰고 있으니 이쪽이 원활하지 못한 건 이미 당연지사.

나도 처음엔 공부를 위해서...이랬던게 시간이 흘러 알바를 하게되고 돈의 참맛을 알게 된 후, 공부를 관두고 알바삼매경에 게임훼인짓을 다시 시작한다.

처음마음과는 다르게 2년 뒤, 한국에 갈꺼고 2년간 게임해서 모은거 한번에 현으로 바꾸면 꽤나 만질수 있겠지 하는 마음.

이후 경수와는 뷁뷁뷁 이런 관계가 됨 - 게임이 끊기거나 하는 것은 전부 이녀석 탓이었다는 후문-_-



대략 이런정도 느낌일까?

사실 2년유학이라고 하지만 3개월~6개월정도는 일본생활에 적응하고 주변지리익히고 그냥 의식주 문제없이 해결할려고 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1년짜리 교환학생은 제일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뭐 이제 적응되어 딱 잼있을려고 하는 시기에 돌아가게 되니ㄷㄷ

하지만 2년의 괴로룸도 있는 데 친구도 없이 집에서 방콕생활을 하자면 마치 여긴 한국-_-이라는 것이라 유학을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함. 그치만 나가자면 돈이다. 가까운 곳에 자전거로 산책을 나가거나 하는 건 그나마 돈이 안들지만 저 멀리 시내에 가자고 하자면 일단 차비는 깨지고...

사실 신사이바시까지 자전거로 편도 2~3시간정도 걸리는 거리를 간적있다. 그넘의 돈은 없지 그렇다고 막상 일본에 왔는 데 계속 방콕이라는 생활이...그럴꺼면 비싼돈 내고 일본에 왜 왔는 지 고찰을 하는 시기를 격고 나가게 되는 데,사람이 할짓이 못 된다.

운동이나 자전거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몰라.

그렇다 돈의 문제가 절실하고, 그 다음에 오는 게 친구의 문제이다.

이곳에 오게되면 한국에 있던 친구들과 헤어지고 부모님과도 떨어져서 생활해야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이곳에서 친구사귀기는 하늘의 별따기.

남 들은 이미 그룹만들어서 친한친구들끼리 놀러다니기도 하는 것 같은 데, 난 왜 혼자지? 하는 느낌에 사람은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 혼자 삽질하는 느낌이 정말 싫었다. 그래서 난 이당시만 해도 유학이 끝나면 바로 한국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걸 쉽게 보는 사람들도 많고, 유학정도 할라면 친구없이 공부하는 건 당연한 거다 하는 사람들 많지만, 나같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나, 혼자 소외감을 느끼며 공부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겐 정말 힘들다.

그런 의미로 난 한국가서 무슨 일을 할까...하는 생각이 머리속에 가득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4학년때 자세히 다루어보자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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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주저리 주저리.

군대를 3월30일에 전역을 하게되는 나는 당시 2월말부터 휴가를 나오게 되는 데,
당시 25일의 휴가가 남아있어서 사실상 3월달은 군인이지만 한달내내 휴가라는 느낌이었어.
난 당연하지만 칼복학을 하려고 준비중이었지.

사실 그렇잖아? 1년쉬고 다음해에 복학을 하면 그만큼 사회에 나가는 게 1년 늦어져.
전역을 하는 군인이라는 게 누구나 그렇듯이 왠지모를 자신감.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열심히만 하면 다 잘 될것같은 느낌.
이런 느낌에 휩싸이게 되는 데, 당시의 난 취직활동이고 뭐고 해본적도 없으면서
빨리 졸업하고 취직하여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이 컸어.

물론 집안 사정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 당시의 난 우리집의 사정에 대해서도 몰랐고.
암튼, 난 당연하게 복학을 할 심산으로 교수한테 가서 복학을 하고싶다 애걸을 하지.
왜냐구? 학기는 3월에 시작인데 난 전역증이 3월 30일날 나오니 복학서류는 그 이후에 신청을 할 수 있는 게 현행학교측의 입장이었어. 그리고 복학신청이 마감되는 건 3월 29일이었고.

하루차이로 복학을 할 수 없다는 건 충격이었고 학과장을 찾아가서 부탁을 하고 간신히 승낙을 얻어서 부모님께 복학을 한다고 말하게 되는 데..

거기서 부모님이 안된다는 거야. 난 꿈에도 생각 못했지. 설마 어머니가 반대를 할 줄이야.
절대적으로 일년 알바하는 것보다 칼복학해서 하루빨리 정사원으로 취직하는 게 이득이라 생각했거든. 근데 1년동안 알바를 하라네? 그렇다고 집 빚을 갚는 데 도와라 하는 내용도 아니었어. 니가 쓸돈 니가 벌어라 하는 거야. 난 당시 나름 우리집에서 낭비벽이 심한 아이로 찍혀있었지.

낭비벽이 심하다기보단 평소 알뜰살뜰한 형님이 계시고 그와 비교되는 나는 평범한 지출생활(?)을 즐기며 학창생활을 지내왔던게 문제지.  <- 순전 내 생각 ㅋ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평범하게 연애라든지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다거나 하는...
뭐랄까 나로썬 지극히 평범한 인간관계를 쌓고 있었고. 그에 비해 형님은 술자리싫어라하고
연애는 도통 관심이 없어보이는 데다.. 친구는 과연 있는 건지? 할 정도로 인간관계과 폐쇄적으로 보였어.당시의 나는
[형은 인생이 재미있을까? 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있을 정도이니 할 말다했지ㅋ
유일하게 형이 정을 붙이고 있는 건 컴퓨터와 애니메이션정도랄까.

난 형의 영향을 받아 애니를 주로 봤지만, 드라마나 영화, 예능프로그램등도 섬렵했지.
당시 우타방의 모닝구 무스메는 정말 대박!!
..암튼 난 이러한 여러가지 재미있는 걸 형에게 추천해도 애니이외에는 도통 보질 않는 게 더 황당할 정도...ㄷㄷ


암튼, 이러한 상황이었으니 나에게 줄 용돈은 없으니 니가 알아서 벌어서 쓰라는 게 당시 어머님의 취지였어.
내 인생을 위해 절대적으로 칼복학하는 게 좋다는 게 내 취지였으니, 난 당시 어머님에게 제안을 하나하지.
돈은 필요없다. 일단 등록금은 학자금대출로 어떻게 하자. 용돈은 학교생활을 하면서 알바해서 내가 쓸돈 정도는 벌겠다. 군대에서 150만원 저축해왔으니까 일단은 이걸로 어떻게 하겠음.
하고 말하게 되지.

군대에서 남들 풍속점에 월급을 쏟아부을때 난 당시 전역후의 생활에 불안을 느끼고 혼자 외박도 안나가고(사실 못 나가고) 돈을 모았지. 당시 후임들에게도 안 쏘는 선임으로 이름을 날렸다니 뭐 할말 다했지ㅋㅋㅋㅋㅋㅋ

그게 도움이 되었는 지 어머니는 승낙을 하고 난 칼복학을 하게되는 데, 집에서 다니자니 교통비가 드는 거야. 사실 집에서 다니기도 싫었고.. 돈 계산해보니 참 답안나오고.
그러한 찰나에 당시 나와 같이 복학했던 동기여학생이 한명있었지. 대 1때 문제가 된 주인공이었지. 나와 같은 시기에 복학을 한것도 놀랐지만 뭐..
대 1때 안좋게 끝냈기에 대화를 하긴 할까 이러고 있는 데 저쪽에선 아무런 신경도 안쓰고 인사를 해오길래 그때부터 다시 말을 트게 됐지.
헌데 얘길 들어보니 학교 주변에서 자취를 한다네? 게다가 방이 하나 남아서 창고로 쓰고 있다니, 방 하나 남는 데 어쩌지 하는 말을 해오더라구..

그래. 난 덥썩 물었어. 그 방을 달라 했다.
흔쾌히 승낙한 그녀는 원래 방세가 10만원이니 5만원 달라고 하더라
알다시피 교통비를 생각하면 거기서 거기이고, 당시의 난 알바란 생각보다는 학교도서실에 남아서 공부를 할 마음이 컸지. 그러자니 역시 늦게까지 공부할수 있는 자취방의 유혹은 컸다.
물론 난 부모님께 보고했지-_- 자식 이길 부모 없기에 반대를 당해도 뭐 들을 생각은 첨부터 없었으니 별 생각없이 보고했는 데 오히려 기뻐하더라;;
이렇게 그얘와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되는 데, 참...결혼이 싫어지더군-_-
여자에 대한 환상이란 환상은 여기서 다 깨졌어.
가슴은 작아도 얼굴을 그나마 이쁘다 생각했는 데 화장빨이라는 것도 나름 충격이었고.

뭐 같이 살다보니 빈번히 술자리도 가졌는 데 1학년때 이야기를 물어보니 솔직담백하게 답해주는 그녀였지. 어차피 준석이랑도 깨졌다 이건가 ㅡ.ㅡ
충격적인 이야기도 몇가지 들었지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같이 살자고 했을때도 나름 여자혼자있는 집에, 나도 남잔데 승낙해준것도 나에게 호감이 있는 것도 있었겠지만, 과거가 있으니 가능한건가. 뭐 그런생각도 들었지만ㅎ
사실 거절당할 가능성이 컸기에 거절당하면 어찌하나 나름 고민 많이했었지ㅋ

동기들은 물론 1학년때 사건이 있었으니 나를 욕하더라도 난 내 인생이 중요하다 생각했기에!
내가 결정한 거고.

그렇게 대학교 2학년 생활이 시작되는 데, 자취를 하니까 뭐 혹시나가 역시나 겠지만
슬금슬금 돈을 쓰게 되드라. 슬슬 돈을 벌어야되나 고민을 하던 찰나에 형 친구인 손형에게
알바할 생각없냐구 연락이 오게되서 손형이 일하는 곳에 대타로 알바를 하러가는 데,
거기 사장맘에 들었는 지 아님 원래하던 알바생이 갑자기 관두었는 지 얼마뒤에 전속으로 알바해달라고 하더라구.

감사합니다 하고 일을 하게되지. 그게 여름방학때까지의 계약이었으니 여름방학이 되어 나는 직장을 잃게되-_-
그쯔음하여 군대동기놈한테 연락이 와서 서울에 알바자리가 있으니 할맘있으면 오라고 하더라구
전부터 가끔 연락이 와서 내가 돈돈돈돈돈 하고 고민상담을 하던것도 있었고 여름방학이 되어 자기네도 한자리 났다고 하더라구

고것도 덥썩 물었지ㅋㅋㅋ 근데 가보니까 다단계네-_-
첨에 가면 입사전 연수라고 하면서 공부를 시키드라고. 난 다단계인줄도 모르고 공부를 하게되.
딱 일주일이 지나고 이게 다단계라는 걸 알게 돼.
거 기서 난 고민을 하게 되는 데, 물론 다단계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대체 이 다단계가 뭐길래 사람들이 돈을 말아먹는 다고 하고 대전고모가 다단계에 빠져 울 집 카드를 가져다가 정수기를 두대를 사서 천만원을 말아먹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기에 더욱이 그렇게 까지 하는 게 궁금해서 그 자리에 남게돼.

이론은 참 맘에 들더군.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는 데 지출을 하게 돼. 옷은 물론이요. 치약 칫솔 하다못해 샴푸라도. 당연한이야기지만.. 여기에 다단계가 접목되는 거야.

예를 들자면 이 필수불가결한 치약을 사는 데 내가 천원을 지불하지. 그럼 이 천원의 일부분이 상위회원에게 환원되는 거야. 퍼센테이지는 회원의 등급에 따라 달라.
10퍼환원된다고 치면 내가 천원주고 치약을 샀는 데 상위회원에게 백원이 입금되는 형식.

이 다단계이론은 사실 우리의 생활주변 어디에서나 찾을 수가 있어.
특히 인터넷으로 돈 벌기등은 회원의 모집부분에서 뗄레야 뗄수 없지.
추천회원이 있으면 포인트드립니다 뭐 이런것도 다 다단계니까.

이론은 무지하게 맘에 들었지. 누이좋고 매부좋고 난 어차피 써야하는 거 사는 거구
내 친구는 그로 인해 돈을 벌어. 마찬가지로 내 친구가 사서 난 돈을 벌지.

그리고 이 사업방식은 물건을 파는 걸 주로 내세우는 게 아니구 친구를 소개시키는 데 중점을 두더군. 회원에 가입하는 건 물건을 산 시점에서 가입이 되니 내가 거기에 남았다고 해도 물건을 사지 않는 이상 회원이 되는 건 아니야. 그리고 나에게 강매를 하는 게 아니고 내 친구를 소개시켜달라고 하더라구. 간단한거지 내 친구가 나에게 강매를 시키진 않아. 근데? 친구의 친구의 친구정도 되면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버리지. 그렇다는 거야.
난 거기에 한명의 친구를 소개하게 돼. 뭐 사실 소개시키고 싶은 마음은 쥐꼬리도 없었는 데 참...안타깝더라.
거기에선 친구를 소개시키는 법이라는 느낌으로 나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더라. 뭐 간단하지. 전화를 해서 친구를 다단계하는 곳까지 불러내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그리고 전화는 도청당하고.
말하라는 대로 말을 해야돼. 물론 안해도 돼. 중요한건 내 의지니까. 근데 난 다단계의 시스템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 하라는 대로 했어.

결과는? 그 친구가 서울로 상경해 오더군.
암담하지. 내가 이렇게 당한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 친구는 연수도중 다단계라는 걸 깨닫고 부모님께 전화해서 자기혼자 빠져나가더군.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참 저렇게 혼자살자고 나가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

뭐 암튼 대강 이렇게 다단계에 대해 공부해봤어. 빠져나가는 것은 의지지만 나가려고 하면 물론 여러사람이 설득하러 오더라. 물론 그에 다시 설득되면 남는 거고 아니면 가는 거고.
그 친구가 가고 한 이주일뒤쯤에 나는 여기서 배울건 없다고 판단하고 나가기로 결심해.
나가는 데 3일걸리더라. 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 다 날 설득하러 오더군ㅋㅋㅋㅋ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암튼 다단계의 이론은 참 맘에 들었는 데 맹점은 [가격]이었지.
위 이야기에 이어지지만 저 말대로만 하면 다단계를 안하는 게 병신이여.그치?


근데 처음부터 저 인센티브가 가격에 포함이 되어있는 거야.
예를 들자면 딴데서 다 저 치약을 천원에 팔고 있는 데 이 다단계회사에서는 천백원에 파는 거야. 그리고 그 백원을 상위회원에게 환원하는 형식이지.

물론 인센티브는 회원의 등급에 따라 다르니 실제 물건 값은 천오백원정도 놓고
천원이 원가여 오백원중 몇퍼를 환원하냐 하는 문제지. 회원등급이 낮으면 덜 환원하는 것도 있고 상위회원이 한명이면 좋지만 보통 다섯명은 있어. 그럼 그 회원들한테 다 환원해야돼.
그렇게 생각하면 천원짜리가 천 오백원이 되는 것도 알겠지? 회원단계수가 적으면 적을 수록 회사는 이익을 남기게 되고 그렇게 사장은 돈을 벌더라.

그래. 간단히 말하자면 저 회사에 바가지를 쓰고 물건을 사는 사람이 병신이지.

안타깝게도 날 불러온 군대동기의 친구는 저 회사에서 백만원가량 물건을 사서 등급을 올렸다더라.

병....-_-
세상에 꽁짜는 없다는 거지ㅋㅋㅋ

 

그 친구넘탓에 난 여름방학동안 목표로 했던 금액은 물론...한푼도 벌지 못하게 되었지.
뭐 내가 선택한 길이었으니 원망은 안하기로 했어. 믿었던 내가 병신이지.
마지막에 그 친구가 헤어질때 다 좋으니 첨에 말했던 돈을 달라고 떼를 쓸까하다가
그냥 말았다. 그래봤자 변할 건 아무것도 없기에.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 생활을 보내. 다신 손형이 일하던 사장이 나에게 연락해 학기중에 알바할 수 있냐하길래 돈에 궁하던 나는 바로 콜 했지.
당시 이동수단으로 집에 있던 스쿠터를 선택하지.
대망의 스쿠터.

이 스쿠터로 인해 나는 또 친구한명을 버려ㅋㅋㅋ

사실 2학기내내 학교생활에 알바를 병행해서 남아 있는 추억이라곤 이 스쿠터로 인해 버린 친구이야기 밖에 없어.

당시 스쿠터를 운전하는 나를 부러워하던 친구는 태워달라구 애원을 하지. 물론 난 안된다고 안된다고 거절을 하지만 계속 고집을 부리고 결국 나는 학교운동장에 한에서 허락을 하게되지.
물론 설마 운동장에서 사고나겠어? 하는 마음이 컸는 데 그게 문제였네.

운동장에서 사고가 났어. 그녀석 커브에서 속도를 내더군.
내가 생각을 못했던게 여기에 있는 데, 바닥이 모래밭이여. 뭐냐구? 커브에서 속도낸다고해도 위험하지만 아스팔트에서 넘어지는 건 생각하기 힘들지만 모래밭에선 그게 당연하지. 마찰력이 다르고.
그렇게 그는 넘어지고. 천만다행으로 그는 다치지않았어. 만약 제대로 다쳤으면 병원비부터 시작해서 암담한 미래가 펼쳐졌겠지만.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선 태우기전에 친구에서 말했었지만 사고나고 사람이 달라지는 건 흔한이야기지.
그 친구도 사람이 달라졌으니 진짜 사람 믿을 게 안된다니까.

다치진 않았는 데, 문제는 스쿠터였지. 고장이 난거야. 앞바퀴는 완전히 돌아가고 일단 시동은 걸었는 데 잘 걸리지 않고 걸려도 상태가 이상하고.

일단 알바도 있고 그 친구도 당황했었고 나도 당황했고 일단 헤어지게됨.
수리를 맡기고 아버지와 상담을 하고 그 친구에게 가서 담판을 지어.
아버지는 금액이 얼마가 나오던 돈문제면 친구랑 절교하기 쉬우니 친구라 생각하면
그냥 없던 일이라 생각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구
근데 난 절대 그렇게 생각안해. 친구꺼면 고장내켜도 보상안해줘도 된다는 거야?

그래서 난 내 생각과 아버지 생각을 접목했어.
간단해. 금액으로 결정하는 거지. 만약 수리비용이 20만원이하로 나오면 술을 한잔 사라.
20만원 이상으로 나오면 돈을 달라. 이거야. 뭐 보통 술자리 한번 가지면 싸게 먹어도 5만원
비싸게 먹으면 10만원도 나오니까 사실 타당한 계산이었고 그 친구도 당삼 좋아라 하며
그렇게 하자고 했지. 쌍방 합의. 그것도 얼굴 붉히는 일도 없었어.

문제는 수리비용을 청구했더니 20만원이 넘는 데 있었어.
25만원인가 그랬고, 난 친구에게 그 사실을 통보했지. 그랬더니 그러더라.
지금도 생생해.

[그래서? 돈 달라구?]

....그럼 안줄라구? 도대체 이녀석 머리엔 뭐가 들어있는 거야.

정말 맘에 안들더라. 똥씹은 표정.
점심시간이 되어 그친구와 또 다른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고 그 친구는 ATM에서 돈을 뽑아 나에게 건네주지. 그리고 그 친구는 짜증을 내면서 밥을 안 먹고 나가버려.

난 어이가 없었고 뭐 이런 넘이 다 있어. 지가 잘못을 해놓고 좋게 좋게 봐줬더니 이건 무슨 심보여.이러고 있었지.
다음날와서 그 25만원에 대한 견적서를 달라고 하더라.
냉큼 가서 뽑아줬지.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이거에 대해선 별 생각없었는 데.

이에 이어진 사건이 문제였어.
또다른 친구가 있었어. 그 친구도 이 친구도 다 같이 친했지.
근데 이 다른친구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하는 말.

[스쿠터사고건으로 니 종성이한테 돈 받아서 셋다면서?]

이건 또 뭔소리여.

[암튼 니 완전쓰레기 만들었더라]

이에 황당한 나는 돈 세지 않았다고만 말했지 뭐 내가 이 친구에서 변명할 필요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어. 그찮아? 그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날 병신만들어논걸 변명하거나 다시 그넘을 병신만드는 것도 뭣 같고 그냥 이대로 얼굴 안 보고 살라고 했지.

근데 그 친구가 중재에 나섰어. 이대로 니들이 그러면 자기가 힘들다고 풀자고 하더라.
그래. 난 여기에 마지막 승부에 나섰지.
사실 우리가 이렇게 되기까지 제대로 대화를 나누질 않았으니 제대로 대화를 나누고 서로 잘못한게 있으면 용서를 빌고 재스타트하자고 마음을 먹었어.
만약 이 친구가 내가 화난 부분에 대해 나에게 미안한다고 한다면 난 용서할 마음을 먹은거지.

근데 끝까지 안하더라.
자긴 돈 뜯겼다 이거지 뭐.

그 친구가 나에게 화난 건 돈을 세었다는 데에 있었어. 그 외에 나에게 화난 건 없다는 거야.
내가 느낀건 돈을 청구하는 시점부터 나에게 불만이 가득했고.
제일 중요한건 난 돈을 안세었다는 데 있었지. 그리고 글을 잘 읽었으면 알다시피
돈을 받는 자리는 나 외에 친구 2명이 있었어.뭐냐구? 증인이 있다는 거야.
나와 종성이 외에 2명의 친구.
간단해. 내가 돈을 안세었다고 주장하고.
친구는 돈을 세었다고 주장해. 그 자리에 있던 또 다른 친구2명은?


돈을 안세었다고 말하지.

돈을 안세었다고 말하지.


...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그 친구는 말하더군.

[난 내눈으로 본 걸 믿어. 난 봤어]

...잘났다. 난 더이상 그 친구와 끝내려고 마지막 말으로 여러가지 말하고 잘 살으라고 했다.

그 친구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중재로 나온 친구에서 묻었다.
지금까지 내가 말을 안했지만 너라면 어떻게 할래? 라고..

그 친구가 말하더군

[내가 너라면 평생 저넘 안본다. 근데 지금은 나를 봐서 그냥 화해해주면 안되겠냐. 중간에 끼인 내가 힘들다]

그래 그 친구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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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전역증 하나 받기 위해 나의 인생중

2년을........군대에서 썩었다는 건....

정말 어려운 말이다....

 

누군가는 말을 했다...

군대에서 2년 썩는다는 말을 하지말고

뭔가 배워나가라고.

썩는 다는 말은 틀렸다고...무한한 인내심과 자제력...

절제된 생활을 배워나가지 않냐고...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군생활에 대해 그나마 자기위안을 가지려는 말이거나 혹은 군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로 밖에 생각이 안된다.......

뭔가 배울수 있는....그런 군대....

그래...사람 죽이는 방법 배우겠지....하지만 그게 사회나오면 필요한가? 전혀....필요없다... 괜히 총어떻게 빼돌린다해도 쏘면

그걸로 인생 끝이다-_-;;

인내심? 자제력? 절제된 생활?

어이없다....제일 쉬운 예로....

규칙적인 생활이 제일 불가능 곳이 바로 군대이다...

왜냐구? 야간근무가 수없이 들어가 있기때문이지...

옛날이라면 그나마 괜찮았다고 한다...

허나 상병이 되면서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신병이 안온다...전역자들은 줄줄히 빠져나간다...-_-;;

근무인원이 없다....결국 빡쎄게 근무선다ㅡㅡ;;

자다가 깨운다...이거 사회에서 이러면 싸움난다-_-;;;

거기에 더 열받는 건....

근무가 2시간이면 준비하는 데 30분...

철수해서 잠자는 데 30분....2시간근무가 실상 3시간 깨어있는 건데

2시간만 근무로 쳐서...결국 3시간 이상 야간근무를 서야

취하는 오침을 안시켜준다는 거...-_-;;

에유...한가지 생각했을 뿐인데 벌써 이런 자증이 밀려오기 시작하다니....-_-;;;

인생 참....

 

아...전역하고 나오니까...정말 모두 부질없이 느껴진다..

난 왜 공부를 하고 있지?

난 뭘 위해 이렇게 살고 있지?

난 왜..............

 

차라리 대학 나온거나 안나온거 비스므리한데...

돈버리지말고 그냥 취업전선에 뛰어들까...

달160-180정도 벌만한 곳은 알지만...

문제는 월급인상이 안된다는 거라..ㅡㅡ;;

그래도 대학나와봤자 취업안되면....

난 대학있는 3년을 또 버리게 되는 거 아닌가...-_-;;

이런....

또 이런 생각을 하니 암울하다....헐...-_-

 

아...이런 저런 잡생각속에서 전역을 하게 되었다...

결국 아무 결론도 못 내린채............

대학에 복학하도록하는 게 되어.......

 

말년휴가 복귀전에 생각했다...

군대가 편했지...

아무걱정없었고...

밥주고...

돈주고...

아...

지금이라도 부사관지원할까?

-_-

하지만 복귀 후....

이곳은 아니구나...다시 한번 느끼고..ㅡㅡ;;

집에 가야겠구나 생각했다.

수많은 검열들과....짜증나는 대빵과 주임원사...

5중....8쭝...동원...뷁-_-;;담당관...ㅡㅡ;; 병기관....;;

연대 의무행보관;;;

아...나오길 잘했다 하는 생각이..;;;;;;;

 

 

아...역시 사회랑 군대의 차이....

별거 없는 거 같다.

자유.

그거 하나만으로 스트레스의 차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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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곳에서 적당히 살다가

우연찮은 기회에 일본유학과에 대해 알게 되어 입학.

엄청난 유흥비와 함께 즐거운 대학 1학년생활을 보내고.

당연한 이야기로 군대에 입대.

입대일에는 누가 왔었지?

성헌이와 종호와 동인이가 왔었나?

이것도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역시 추억을 위해 그냥 매일 다이어리를 써둘껄......-_-

그리고 이어지는

정말 아기자기한 훈련소 생활

하지만 그곳에서 나름대로 힘들었다 생각했다.

5주의 훈련을 마치고 나는 생각은.

이런 생활의 연속이라면 2년 충분히 버티겠다.

하는 생각.....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정말 빨리 자대배치받고 싶었던 토나오는 대기 생활.

그때는 몰랐다.

대기가 제일 편했다는 것을.

그리고 자대배치.

첫날부터 개갈굼-_-;;

정말 이곳에서 생활을 어떻게 해야하나 두려웠었지.

그러나 취사병이 없다고 하라길래

난 '예 알겠습니다'

할수있습니다.

하고싶습니다.

하고 말했던 것이 계기로 바로 취사병이 되었다.

몇번의 위기를 격고 나서 혼자 요리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했지.

오징어볶음 한번 태우고 돈까스 한번태우고

이길이 아닌가?

난 요리에 정말 재능이 없는 건가?

나랑 요리랑은 안맞나?

별별 생각을 다했지.

하지만. 남들도 다 똑같더라고.

그래도. 난 남들과 틀렸다.

난 내 보직에 만족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만들수 있을까

고민했지.

결국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남들은 맛있다.어떻다 말하지만.

인사치례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니라고 해도 군인이라 선후임이라 그리 말해줄지도...

하는 생각도 들게 되고.

내가 잘한다고는 생각해본적없지만.

최소한 맛없게 하진 않는 다 생각한다.

나 자신이 먹을 만하군.

뭐. 그거면 된거 아냐?

 

전역하면 다 까먹는 다지만.

군표준요리지침서가 있는 이상-_-;;;;

나에게 다행인것은 내가 소초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대대에서는 솔직히 집에서 해먹는 요리는 배우는 게 불가능이다.

스팀기. 다단계취사셋이라는 것이.

화로는 그래도 응용할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소초는 집과 다를바 없다.

똑같다.

그런면에서 좋은 것 같다.

대량과 소량 모든 면에 경험을 하게된 나는.........

 

 

음식점을 하나 차려도 되겠어!

-_-;;

배달은 반합으로!

''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

 

군인에게 편지라는 의미가 정말 큰것같다.

별 내용이 없어도.

자기얘기만 막 써놔도.

좋다.

그냥 좋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도 별로 없었다.

군인친구들도 짬되면서 안오더라-_-;;;;

 

군대에서 알게된 인연들.

하지만 연락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다.

또 한편으론 전역하고 어찌 지내나 한번 전화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나마 많이 이야기도 하고 하던 사람들.

꾸선이는 뺀다치고.

준태형 성진이 원배 궁이 ...........그리고 유영이.

우리 취사장 사람들.

대현이 상민이형 진환이 홍우.........그리고 요찬이.

 

꼽자면 얼마 안되는 구나.

나머진 이야기도 별로 안했고.

나도 그들에 대해 잘 모르고.

그들도 나에 대해 잘 모르겠지.

선임이라고. 후임이라고 하지만.

 

다른얘들이야 그렇게 내가 지랄한건 별 생각안나지만.

진환이나 홍우는 보고 싶기도 하다.

그치만. 날 보고 싶은 마음을 없겠지.

내가 막상 갈구고 때리며 키운 아이들이라

더 생각난다.

날............싫어하겠지..............

홍우야 악마가 되었으니 나를 조금은 이해할지 모르지만.

진환이는 천사가 되었으니 죽었다 깨어나도 나를 이해 못하겠지.

상민이형과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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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군인이란 무엇일까.

나라를 지키는 이?

북한군이 침투해올지 모르는 이 대한민국을 지키는 곳?

과연 그런가.

 

하지만 어쨌든. 나의 군인정신이란.

북한군이여. 제발 좀 쳐들어 와라.

전면전까지는 아니고, 그냥 적당히 침투 좀 하라고.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게 되었는 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되겠지...

 

쳐들어 오지 않고.

그렇다고 언젠가 올지모르니.

막상 훈련은 해야겠고.

하지만 10년 20년 안오다보니 결국 헤이해지고

쓸잘데기 없는 규칙에 얽매이게 된다.

2년밖에 병상활하지 않는 우리 기간병들은

2년만 오지 않아도 정말 헤이해진다.

그렇다는 것이다.

 

정말 싫다. 현재의 군대. 현재의 군인.

지금의 군대가 과연 군대인가.

이등병이 쉬고 있고 병장이 뼈빠지게 일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하지만, 내가 입대한 처음부터 그런 군인생활을 했다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겠지.

하지만.

너무 급변하다보니 그 바뀌어 가는 군대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처음들어올 때만 해도 이등병이 일하는 것은 당연했다.

말을 안들으면 맞는 것도 당연했다.

아니, 물론 규제는 있었지만,

나를 포함하여 모두가 생각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내가 욕을 먹는 게 당연하다고.

내가 말을 안들었으니. 맞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신병의 생각자체가 바뀌어 있다.

내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구타는 안된다. 욕을 먹어도 힘들다.

그럼 무엇인가.

그냥 안하겠다는 건가.

군대가 사회화되는 것이다.

사회처럼, 못하겠으면 때려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그 즉시.

나도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또 그건 안된다.

이등병. 그리고 일병 꺽이지 전까지 자동으로 배리어가 작동된다.

이 쉴드는 짬이 되면서 자동적으로 깨진다.

물론 처음에도 어느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정말 어느정도였다.

지금처럼 이렇게 심하게.. 된것은 아니었다.

쉴드...

부럽다.

 

이등병이 되어

맘에 안드는 넘들 다 찔러 버리고 맘에 드는 넘들만 남기면...

 

이런 생각도 가끔 했었다.

형이 군대를 입대했다.

구타가 존재했다.

형이 전역했다.

구타가 존재했다.

내가 입대를 했다.

구타가 존재했다.

내가 상병이 되었다.

구타가 없어졌다.

내가 병장이 되었다.

욕설이 없어졌다.

 

급변.

실로 그로밖에 설명을 못하겠다.

 

내가 입대를 했을때.

병장들은 정말 산처럼 커보였다.

진짜 날아가는 새도 눈짓으로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말도 못 붙였다.

상병들은 거대했다.

간신히 어렵게. 정말 말 조심하며 지냈다.

일병들은 실질적으로 우리를 '관리'했다.

그런 의미로 정말 다들 말 하나 꺼내기도 힘들었다.

이등병. 이등병끼리는 이야기도 못하게 했었다.

몰래몰래 이야기했었다.

 

지금 들어오는 신병의 눈으로 보아도 내가 그렇게 보일까.

그건 아닐것같다.

 

나의 생각으로 군인이란.

나라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것같다.

물론 전방이나 다른 곳은 정말 나라를 지키고 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곳.

타부대 아저씨들(-_-;;)에게 들어도

다들 똑같다.

가라라는 말.

군대에서 배운 말.

어디나 군대는 똑같다.

결국 그거다.

 

답은 하나다.

 

전역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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