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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품 교복의 가격대는 학교에 따라 많이 상이하지만, 일반적으로는 3만엔~6만엔선이라고 합니다.

그런 새제품의 가격이 비싸야 6만엔인데, 지금 중고거래 어플로 유명한 메루카리에선 20만엔~30만엔 정도의 비싼 가격에도 여고생의 교복이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할말을 잃었습니다.

어차피 버릴꺼 판매자는 기쁜 마음에 용돈벌이를 하고 있겠지만, 아무래도 부정적인 견해가 생각나 버리는 군요.

일단 성매매로 이어지는 상황이 오지 않는 이상,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

역시 일본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뉴스입니다.

 

이거 새거 사서 중고라고 뻥치고 팔면 완전 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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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면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

잔업수당.

 

지금까지는 서비스잔업이라는 말로 제대로 된 잔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이제 바뀌려고 하는 움직임이 보이는 군요.

지급하고 있지 않던 잔업수당을 지급한다고 합니다. 현재 대상 7만6천명에게 일단 밀린 잔업수당을 챙겨주고, 앞으로 잔업수당을 제대로 지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움직임이 정말 보기 좋군요.

 

그러나 이 덕분인지 몰라도 야마토는 택배비를 올린다고 발표했습니다 (...)

지금까지는 소비세가 올라서 택배비가 올랐던 적은 있지만, 실제 가격개정은 27년만에 이루어지는 거라고 합니다.

즉, 27년전 가격이 지금 가격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아직 검토중이긴 합니다)

27년 사이에 소비세 5%오른게 전부죠..

(소비세는 1989년 3퍼 도입시작, 야마토의 마지막 가격개정은 1990년)

그렇게 생각하면 1990년에 비해 최저임금도 엄청나게 상승했는 데, 택배비가 안올랐으니 야마토가 이런 블랙회사가 된 배경도 있는 것일까요?

 

얼마나 올릴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제대로 된 잔업수당을 챙겨주기 위한 것을 보이긴 합니다만...

야마토의 노동자의 처우개선으로 사가와등의 다른 택배회사도 개선되길 바라며, 택배업계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들도 바뀌는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특히 제 직장이!)

그와 더불어 제가 하고 있는 부업.

중고물품 거래 중에 개인 소비자 입장으로 택배비가 오른다는 게 제 수익이 낮아진다는 사실 또한 눈물나는 군요.

(물론, 택배회사는 비싸기 때문에 잘 쓰지 않지만)

택배비가 올랐다고 당장 제 중고물품의 가치가 올라가는 게 아니니까 제 수익만 낮아지는 거잖아요ㅠ

당장 제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는 마음과 앞으로 일본이 전체적으로 바뀔 수 있는 그 첫번째 발걸음이란 측면의 마음이 뒤영켜 뒤숭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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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기리 제이슨.

작년쯤부터 [외국인이 보기에는 이상한 일본어]라는 소재로 개그를 선보이는 것을 보고 정말 많이 공감가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R-1에 참가하여 특집방송을 통해 보다가 급 생각나서 하는 포스팅 ㅋㅋ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개그맨 한번 해볼려고 나왔는 데, 순식간에 인기를 몰았다는 그 전설의 외국인.

일본에선 알아주는 타이틀.

매년 R-1이라는 1인 개그로 일본에서 제일 재미있는 개그맨을 뽑는 자리에 얼마 준비도 안하고 나와서 인기몰이.

심사위원이 조금 정경유착이 있는 방송인지라 재미가 없어도 1등이 되고, 재미가 있어도 1등을 못하는 조금 안타까운 점이 있긴하지만, R-1의 우승상금이 500만엔이라는 것때문인지 어쨌든 결론은 흥미롭습니다.



아츠기리 제이슨은 의역을 하자면 [두꺼운 제이슨] 정도가 될까요 ㅋㅋ

제이슨은 13일의 금요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본명입니다.


두껍다는 것은 앞가슴이 두껍다는 것과 일본에 와서 厚木市(아츠키시)에 살기 때문에 예명을 붙였다는 이야기.

앞가슴이 두껍다는 것은 뭐, 갑빠가 있다는 말인지? -_-;;


예전부터 일본어 공부에 매진하던 제이슨은 일본어 공부를 위해서 개그방송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개그방송에 빠지다보니 자신이 개그맨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개그맨을 하고싶다는 이유로는 외국인이 넘어할 장벽은 높기만 했음.

그 이유는 단 하나.

비자가 안나옵니다.

....



그런데 제이슨에게 찬스가 날라옵니다.

그는 IT관련 기업에서, 그것도 상당히 높은 직책을 본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기업으로 일본에 진출을 모색하던 기업이었는 데, 제이슨이 일본에서 필요한 비자가 딱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제이슨은 그 프로젝트에 참가.

2011년도에 일본 입성!



이후, ザブングル (자붕글)이라는 개그맨의 개그를 보러갔다가, 관객중에서 팔씨름 쎈 사람을 뽑아서 승부를 겨루는 기획에서 제이슨이 필사적으로 손을 들어 뽑히고, 이것을 계기로 자붕글과 친해지게 되었다네요.

그 결과, 본직업을 관두지 않아도 개그맨을 겸직으로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개그맨이 되었다는 참 특수한 이야기.


그리고 R-1에서 외국인으로써는 처음으로 결승진출을 하게 되었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와서 저에게 공감대를 형성시켜주면서 재미를 주는 아츠기리 제이슨.



아마도 일본어를 공부하는 모든 이들과 평상시 아무생각없이 일본어를 당연하게 쓰는 일본인들이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조금 안타까운 점은, 올해 소재는 매년 써먹던걸 그대로 써먹었다는 것이었습니다ㅠㅠ












유튜브 링크는 이번 꺼는 아닙니다 -_-



초반 부분에 기억에 남는 것는 일본속담 두개만 포스팅해봅니다.




「鬼に金棒」

[도깨비에게 방망이]


도깨비에게 방망이를 주면 도깨비는 파워업!!!

-아하! 속담이란 쉽구나!!




다음속담





「蛙の子は蛙」

[개구리 새끼는 개구리다]


...개구리 새끼는 올챙이잖아!


와이 재패니스 피플~!



고양이 새끼는 고양이, 개 새끼는 개. 다른 동물들을 속담으로 쓰면 이해가 빠를텐데, 왜 새끼때와 성체에 변형이 일어나는 양서류를 속담으로 쓰는 거냐!!


라고 외치는 제이슨.



재미있군요 ㅋㅋ





ㅋㅋㅋ

당연하지만 일부러 개구리를 쓰는 겁니다. 개그는 개그로 받아들이세요 ㅋㅋ


한국에는 없는 일본속담인지라 살짝 첨부합니다.

개구리새끼는 개구리다는 속담은, 어릴때는 올챙이같이 자신의 아이가 아닌것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은 자식도 개구리가 된다는 말로 흔히 요즘 한국말로 하면 [흙수저 자식은 흙수저다]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니 흙수저 자식은 커서도 금수저가 될수없다는 정말 안타까운 뜻을 담고 있기도 하지요.




보다보면 제이슨은 미국인이라 한국인이 받아들이는 부분들이랑은 조금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만 개그는 개그로 보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제이슨이 소재로 쓰는 부분은 거의 대부분 [그건 중국에 말해야하잖아!] 하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중국과 일본과 한국은 모두 중국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한자 개그나 속담개그등은 중국에서 건너 온 것이고, 중국문화권에 사는 외국인은 그것을 훤히 알지만, 서양쪽은 전혀 모를텐데 말이죠...그래도 일본어를 저렇게나 공부해서 개그맨도 하고 있고 와이프도 일본인이라는 것을 들으면 아마 제이슨은 잘 알고 있겠지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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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쯤 블루레이를 사고 나서는 녹화가 가능해져서 매년 신작을 리얼타임으로 보고 있습니다.

덕택에 현재보는 드라마의 간단한 소개.




언젠가 이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

일본에선 재미있다고 유명하던데, 개인적으로는 별로임.

연애물은 취향이 아닙니다;


제목같이 슬픈 사랑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라 생각되는 군요.

그러나 보고 있으면 정말 지금까지 헌신한 여친을 버리고 마음가는 데로 딴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현여친을 버리는 짓을 하는 것은 공감되지 않고, 남자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일적으로도 속터지는 부분이 많아서 정말 볼게없을때 보고있습니다.




장인어른이라고 부르게 해줘

51살과 23살의 연애끝의 결혼은? 장인어른이 나와 같은 나이인 51세..


내 딸이 이런 남자를 주워오면 일단 반죽음상태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싶지만,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큼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유명인 커플들도 많기에 어이가 없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녀의 집안문제를 그가 활약하여 해결하면서 결국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이 될듯싶습니다만, 아직 드라마 도중이니..ㅎ




별볼일 없는 나를 사랑해주세요


연애물은 취향이 아니지만....[별볼일없는 나]가 얼마나 별볼일 없는 지를 보는 맛이 있는 드라마네요.





프래자일

의료계의 조금 판타스틱한 이야기.

실제로는 좀 애매할것 같지만, 병리과 의사의 중요성을 알게된 것만으로 감사한 드라마.

판타스틱하다보니 판타지정도로 생각하고 보는 중.




히간바나 ~ 여자들의 범죄 파일

특수능력을 가진 주인공. 범죄현장에 남아있는 사념과 싱크로 한다는 것이 판타지지만, 추리물은 대강 좋아하는 편이라 보는 데, 개별 추리는 별로 재미있다는 생각은 안들더군요.

큰 줄거리쪽은 나름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스페셜리스트

소재도 맘에 들고, 스토리도 맘에 드는 추리물인데...초난강의 연기가 개인적으로 맘에 안든다는 게 유일한 단점 -_-;;;

처음봤을때는 동명영화를 떠올렸다는 전설 ㅋ



나오미와 카나코

개인적으로는 이번 분기중 제일 맘에 드는 작품.

조금 특이한 추리물이라 생각이 듭니다. 주로 탐정이나 경찰이 되어 범인을 잡는 추리물이라 아니라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추리물이니..

범인이 되어 궁지로 몰리는 재미를 잘 표현한듯.




머니의 천사 ~ 당신의 돈, 되찾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드라마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음.

일본의 법률을 공부할수 있는 드라마.

변호사도 아닌 일반인들이 다양한 금전문제들을 해결하는 내용.





나를 보내지 마

[나를 보내지마]로 번역되고 있는 데, 일본어 자체는 [나를 놓지마]라고 번역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지만, 사실 이건 영국소설이 원작이라 일본어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조금 우스운 이야기.

복제인간들이 장기이식만을 위해 만들어졌는 데, 그런 클론들의 잡생각등을 재미있게 잘 그린듯.

소설속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묘하게 어딘가에서는 실제로 있을 법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니체선생


30분짜리 짤막한 드라마.

실은 별 재미는 못느낄듯한 편의점 점원이야기인데, 직업상 편의점에 관련된것 봐줘야한다는 생각에 보고 있는 드라마.

좀 안타까운 점은 편의점 점원만 알만한 개그가 조금 들어있는 정도?

기본은 개그드라마가 개그스럽지 못하다는 점이 눈물남.

한국으로 치면 [와라!편의점]이 드라마화되면 이런 느낌일까요..




괴도 야마네코


검은돈을 훔쳐서...?


..서민들에게 나눠준다는 내용은 안보이는 데, 훔친 돈의 행방이 조금 궁금해지는 드라마.

그냥 킬링타임용으로 보는 중.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의 추리

[이 범죄는 아름답지 않아]

....명탐정들의 대사들과는 조금 다른 특이한 말로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것을 암시.

이런 정통 추리물이 취향입니다.





가족의 형태

3포세대라는 말로 유명한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결혼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지요.

덕분에 이런 드라마도 나왔습니다....만, 이미 10년전쯤에 [결혼 못하는 남자]를 본적이 있기에 사실 그 연장선으로 보면 이미 일본도 10여년 전부터 사회문제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합니다.

결혼을 하고 안하고 관계없이 나도 이런 주인공의 마음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번 분기는 대강 이정도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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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는 아내님의 취향덕에 소싯적에 애니메니션 덕후라고 불리우던 제가 군대와 일본유학 크리에 애니라곤 보지도 못한채 일본 생활을 보냈습니다. 꼬꼬마때는 중2병에 빠져서 중학교때 제 꿈은 이세상의 모든 애니메이션을 다 보겠다는 것이었으나, 이미 실현불가능한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볼만한 애니를 봤던 게 [강철의 연금술사] 였으니 할말 다했지요..;


이후 쭉 일본드라마만 섭렵해오다가, 이제야 겨우 아내님의 이 작품은 봐도 된다는 허가가(?) 나와서 보게 된 작품.

나만이 없는 거리.

결혼이 이렇게 사람을 바꾸어 놓는 다는 사실은 뒤로 하고 -_-;;




신기방기한 능력을 가진 20대의 외모를 가진 30대 남자이야기네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살인사건의 진범과 싸우는 내용인데, 추리물이면서 주인공의 성장에 초점이 있는...그런 연애물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다음달에는 실사 영화판도 개봉한다고 하니, 그것도 기대되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둘째의 출산도 있고 첫째도 아직 2살배기 아기인 관계로 영화관에서 보지는 못하겠습니다.

내년에 DVD개봉할때까지 기달려야 한다는 것이 눈물나는 군요.


그때쯤 되면 스토리 다 꿰고 있는 데, 보고 싶은 마음도 안날듯 싶지만, 그정도 시간이 지나면 스토리를 잊어버려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도 ㅎㅎ



방영시간대가 상당히 심야인 관계로 바로 보지는 못하고 다음날 녹화분으로 보는 데, 원작을 안봐서 그런지 더 재미있군요.

원작을 봤으면 아마 진범이 누군지 알기때문에 재미가 반감되지 않을까 싶지만, 문제는 등장인물이 너무 적어서 범인스러운 녀석이 아직 안 나온 새로운 얼굴이 아닌 이상, 오직 딱 한명밖에 없다는 게 안타까우면서 우스운 이야기일지 ;;


앞으로의 전개가 정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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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프레와 모델일을 하시고 계시는 김유리씨라고 합니다.



얼마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분으로 유명하지요










그리고 화보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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뽐뿌게시판 HOT 게시물 근황. 해킹사건에 대한 유저들의 한 맺힌 토로.





2015년 9월 11일 오후 3시 경, 자유게시판을 시작으로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털린 것 같다는 개인정보 해킹 소문이 돌았다.  해킹범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자유게시판에 로그인 정보를 유출 하면서 사건은 더욱 증폭되었다.  더구나 해킹 인증은 훨씬 이전부터 계속되었다는 글도 올라왔다. 오후 4시 30분 경, 관리자는 '계정 탈취 시도'는 시인했지만, 개인정보 유출여부의 은닉과 사과의 부재 때문에 유저들의 원성을 샀다. 또한 뽐뿌의 개인정보 암호화가 취약하다, 뽐뿌와 해킹범 사이에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관련해서 뽐뿌 관리자는 9월 11일 5시 19분, 해킹 의뢰는 유언비어이며, 해킹에 관련된 조사와 탐지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사화까지 되었다.

동일 밤 10시경 올라온 공지에 의하면 "모든 회원님의 ID, 암호화된 password, 생년월일,E-mail, 뽐뿌닉네임, 암호화된 장터password,가입일, 회원점수"가 유출되었다고 하고 암호화된 패스워드 역시 "단방향 암호처리가 진행되었으나, 암호화 알고리즘의 취약점을 이용하여 단순한 비밀번호를 복호화한 것으로"라고 하단에 기술함에 따라 패스워드 자체도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뽐뿌 게시판은 운영자에 대한 비판과, 이제 뽐뿌 망한다라는 글이나 예전의 스르륵 사태를 본다는 글들이 게시판을 점령하고 있는 중이다.






오후 2시경부터 자유게시판에 해킹범이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회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목록





해킹범들은 뽐뿌에서 본인들에게 타사이트 해킹을 의뢰했는데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주장





해킹범 - 약속 안 지키면 198만명 DB 전체 공개한다고 주장








해킹범은 현재 사람들의 동정표를 받으며 활개를 치고 있고, 운영자는 나쁜놈이라는 인식이 하늘을 찌릅니다.









다음은 뽐뿌 공지입니다.



[2015년 9월 11일] 계정 해킹 사건에 대한 보고 및 사과문



계정 해킹 사건으로 인하여 심려끼쳤습니다.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먼저 금일(911) 발생한 계정해킹 사건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최초 제보 후 전수검사를 통해 취약점을 이용한 계정 해킹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것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또한 선조치 후보고를 통해, 유사 시 피해 최소화를 위해 상황 전달 및 소통이 부족했던 점 진심으로 사과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개인정보 유출에 따라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1.    유출된 개인정보의 항목

 모든 회원님의 ID, 암호화된 password, 생년월일,E-mail, 뽐뿌닉네임, 암호화된 장터password,가입일, 회원점수

2.    유출된 시점 및 그 경위

개인정보 유출은 2015911일 새벽 한 시 경, 뽐뿌 서비스 내의 취약점(SQL injection 공격)을 통해 접근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3.    침해 사실에 따라 피해 최소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부탁 드립니다.

l  뽐뿌 로그인의 비밀번호 변경을 부탁 드립니다.

l  임시 대응 조치에 따라 최근 6주간접속 기록이 없는 회원님에 대해서는 임시 조치가 되었습니다. 이 경우 비밀번호 찾기를 통해 비밀번호재설정을 부탁 드립니다.

l  뽐뿌와 타 사이트의 아이디, 비밀번호가 동일한 경우 변경을 부탁 드립니다.

영문 대소문자와 특수문자, 숫자를 혼합하여 8자리 이상으로 변경 부탁 드립니다.

4.    대응조치 및 피해구제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l  금일 의심 신고에 따라 6주간 접속하지 않은 계정에 대해서는, 전부 비밀번호가 변경 되었습니다.

이후 추가적인 로그인 및 악의적인 활동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l  오후 510분부터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제공하고 있는 웹셀 및 악성코드에 대한 탐지 솔루션 휘슬(Whistl)을 구동하여 전수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l  이 과정에서 한국인터넷진흥원과 유선상 연락을 취하며, 상황 공유 및 향후 진행사항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습니다.

l  또한 취약점 파악이 이루어진 금일 2130분부터 즉시 취약점이 발생한 소스 보완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l  이후 약 48만명에 대한 비밀번호 변경 절차를 통해,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될 예정입니다.

l  또한 금일 2130분 취약점 파악 및 조치와 동시에 한국인터넷진흥원에 피해 신고를 접수하였습니다.

  - 팝업을 통한 해킹 사실 공지와 이메일 발송을 통해 접속하지 않으신 회원님들도 모두 인지하실 수 있도록 안내하겠습니다.

l  취약점 파악 후 패스워드 암호화 알고리즘 변경, SQL Injection 공격 차단을 위한 SQL 관련 라이브러리를 변경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l  또한 웹 취약점 분석툴인 Whistl분석 결과를 반영하여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응하겠습니다.

l  아울러 ISMS 인증을 통해 보안수준을 강화하여, 정보보호에 만전을 기할 것 입니다.

 

5.    피해가 발생한 경우 신고 할 수 있는 담당부서와 연락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l  피해 의심이 가는 경우 사이트 하단의 운영참여게시판을 통해 문의하실수 있습니다.

l  유선상 문의가 필요하신 경우 070-5088-2400으로 문의주시면 됩니다.

l  관련 사항에 대한 처리 담당부서는 커뮤니케이션팀입니다.

 

6.      금번 유출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부분에 대해 설명드립니다.

l  뽐뿌의 경우 단방향 암호처리가 진행되었으나, 암호화 알고리즘의 취약점을 이용하여 단순한 비밀번호를 복호화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l  운영자의 해킹 사주에 대한 것은 낭설이며, 사실도 진실도 아닙니다.

l  지난 820일 발생한 문제에 대한 공지는 사실이며, 금번 문제와 관계가 없습니다

뽐뿌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주민번호를 수집한 적이 없습니다.

 

 

뽐뿌 회원님들께.

 

이러한 참담한 결과가 발생한것에 대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모든 결과가 말하듯이 운영을 잘못하였으며, 이 잘못으로 인해 회원님들께 누를 끼친 것에 대해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모든 잘못을 인정하며, 이후 문제 확산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 입니다.

이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해결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겠습니다.

또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ISMS 인증 및 보안을 강화하며 불신을 해소하겠습니다..

 

그 간 뽐뿌 운영자로서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깊은 사랑과 관심 받았습니다.

그 사랑과 관심에 부응하지 못한 부분이 정말 부끄럽습니다.

다시 한번 거듭 사과드립니다.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공지 또한 욕먹고 있는 계기가 되고 있음





그리고 주변 포털사이트에는 뽐뿌에서 이전해온 사람들이 인사하는 내용의 글을이 많이 보이는 데...


여시와 스르륵 사태처럼 이번에는 뽐뿌가 해체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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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창시자.

최고 권력자였던 김일성.


어릴적부터 이넘은 정말 죽일넘이라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교육을 받고 자란 나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정보의 바다에서 넘쳐흐르는 정보를 받아들이다보니, 내가 어릴적에 받은 교육들을 다 부질없는 한순간의 거짓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요즘들어 더 심하게 든다.



그 두 주인공이 바로 김일성과 김구




한국의 위대한 독립운동가. 김구.

어릴적 향간에서는 그가 피살만 안되었어도 통일이 되었을것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이제 역사를 다시 보니 보이는 것은, 그가 피살이 안되었으면 아마도 지금의 대한민국이란 없다.

사실은 기회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 이승만보다도 더한 기회주의자이지 않을까 생각도 들 정도.





김일성.



김일성은 애당초 당시부터 유명한 항일 독립운동가였다.



당시 한국에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는 이승만과 김구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그보다 더 유명한 김좌진 장군이나 유관순 누나나 하는 분들이 있지만, 시대가 조금 다르니 제외하자.

이승만과 김구 이외에도 김일성도 사실은 유명한 독립운동가라니!


미국에서 이승만이, 중국에서 김구가 활동을 했다면, 김일성은 소련에서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라고 한다.
그러나 광복을 맞은 한국에 들어올때는 소련군에 소속된 채 들어왔는 데, 소련의 지지를 얻기위한 방법이었다나 뭐라나..


당시 김일성은 정말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고, 어느정도 나이가 있던 남한 독립운동 투사들과 비교된다.

...그렇다는 것은 나 개인적으로 생각할때, 그만큼 사상이 진보적이었지 않을까....하는 상념에 잠긴다.



광복을 맞은 한국은 단일정부를 만드냐, 남한과 북한으로 나눠서 통치를 하느냐로 싸웠다.

그러나 당시 광복을 맞은 한국은 없었다. 패전국 한국이 있었을 뿐.

일본의 일제감점기 시대가 지나자 소련과 미국의 통치시대로 들어갈 뿐.

우리나라의 의지란 없었다. 누가 이런 나라를 광복을 했다고 하겠는 가.


소련과 미국이 자기들 마음대로 나누기로 작정을 한 것이었으니, 누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던 별차이는 없을것이라는 의견이 크긴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우리나라에서 명망높은 임시정부의 지도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연결되었다는 데...



지금이야 김일성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대표자로 보지만, 당시 대한민국의 지식층은 모두 사회주의자였다.

(당시 일제강점기에 수탈을 심하게 당했던 지라 모두가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자본주의를 공부한 이승만조자 사회주의자적인 발언을 자주했다하니

당연히, 누가 대한민국을 통치하게 되든 대한민국은 공산주의국가가 되는 게 수순에 맞을 터였다.

그러나 결국 남한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탈을 쓴 채 공산주의는 박정희때까지 이어진다.

모든 것은 미국이 문제인지라...남한은 단지 이해관계에 맞는 행동을 한 것뿐.



아무튼, 미국은 남한. 소련이 북한을 점령하고, 신탁통치를 결정하였는 데, 두 나라의 방식이 조금 달랐다.


소련은 애시당초 만주벌판을 얻으려고 전쟁을 했던지라 대한민국에는 흥미가 없었다.

또한, 신생 공산주의 국가를 자주적으로 독립시키는 것이 국제적인 명망을 높이는 데 이득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즉, 자신들은 해방군이 되어 나라를 독립시킬려는 생각을 가진것이 소련이다 보니 북한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국가로 성장할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대한민국사람인 김일성을 지도자로 내세우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나라가 될 준비를 한다.



그에 비해 미국은 식민지를 원했다.

애당초 남한을 신탁통치한다는 것도 경제적 식민지를 얻기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다보니 말잘듣는 사람들을 필요로 했고, 행정적인 부분들도 해봤던 사람들이 더 잘한다고, 주요 요직들을 경험자로 채웠다.

여기서 경험자라는 것은 과거 친일파를 이야기한다.

-0-;;

우리나라에 지금 친일파 청산이 안된 이유는 정말 단순. 미국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어떻게 할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그때 제대로 잘 했었야 하는 데, 우리나라는 정말 힘이 너무 없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과 소련은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각자 통치를 한다고는 했지만, 결국 문제는 우리나라안에서 일어났다.


내부의 우리가 간절히 통일을 원했으면 하나의 국가를 만들었을 테지만, 우리나라의 지도층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데, 여기에 최악의 오보사건이 터진다.


신탁통치 오보사건이라가 불리우는 데,

당시 본래의 신탁통치는 한반도의 단일정부를 만드는 데, 최대5년까지 미국,소련,중국,영국의 4개국이 신탁통치를 하되, 기본주체는 임시정부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동아일보가 오보를 터트린다.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은 즉시 독립시킬것을 주장한다]는 내용.

본래 미국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소련이 즉시 독립을 주장했었는 데, 그조차 반대로 발표해버린것이다.




우리나라는 불과 4개월전만해도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던 나라인지라 더더욱 신탁통치에 대한 반발이 컸다.

단일정부 수립이나 임시정부수립에 대한 생각은 어딘가로 날라가고 반탁운동만이 전개되는 일이 벌어지는 데...

애당초 오보라는 것이 문제.


이럴때 오보의 장본인,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가 김구와 접촉하는 데, 김구는 반탁운동에 송진우도 참여하도록 설득하지만,

애당초 오보였으니 거절하게 되는 데, 이를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것이라고 본 김구. 혹은 김구의 추종자들이 암살해버린다.

(김구야 말로 암살의 귀재다)


한편 북한에서도 신탁통치 오보사건의 소식이 전해졌는 데, 이것은 오히려 김일성의 권력을 크게 확장시켜준다.

김일성은 오보소식을 정정하여 제대로 된 사실을 알리는 바람에 미국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매국노라 고무시키게 된다.

그에 비해 남한의 지도층은 오보소식을 자신의 권력 확장에 이용하여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것이 지금 분단된 국가가 된 배경.


당시는 북한뿐 아니라 남한도 공산당이 강세였는 데, 지지도가 열세였던 김구가 오보사건을 이용하여 반탁운동을 펼치는 것으로 자신의 지지도를 올리려고 했던 것이 건널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것이다.


덕분에 이전까지는 좌우대립이 심하지 않던 나라였는 데, 오보사건을 계기로 좌우대립이 심한 나라로 성장한다.

반공과 반탁운동을 하는 사람은 애국자라고 알려지고, 수많은 친일파들은 이 시점에서 과거를 씼었다.

애국자로.


그렇다고해도 아직까지 북한과 남한은 공산당이 강세였다.

그렇기에 이승만과 김구가 힘을 합쳐 우익단체를 만들어 움직이려고 하자, 김일성도 그에 반하여 조직을 결성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김구는 김일성의 암살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암살의 대가. 김구)



이후 소련과 미국의 협상으로 대한민국의 단일 임시정부 수립을 눈 앞에 두고도 우익의 거두인 이승만과 김구의 반대로 결국 미국과 소련도 합의점을 못찾고 결렬된다.

이승만과 김구가 반대한 이유는 단 하나.

지금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선거를 하게되면 절대적으로 불리하기에...


그만큼 공산당의 힘은 컸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도 어느정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결국 단일정부가 아니라 반쪽짜리 정부를 만들기로 합의본다.


남북한 선거를 하게되면 김일성이 대통령이 되고말지만, 남한만 선거를 하게되면 자신들이 대통령이 되리라는 자신이 있었던 것.


그렇게 남한의 단독정부를 세우기로 하지만, 이미 미국에게 미운털이 박힌 이승만과 김구라 섣불리 움직일수가 없었고,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려 이승만은 미국행을 택한다.


홀로 남은 김구가 이승만이 없는 틈을 타서 단독정부를 세우려고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기밀은 누설되고 남들의 조롱거리가 되고만다.


이때쯤에 미국의 정책도 대대적으로 바뀌었다. 애당초 시간이 걸려도 한국에 단일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 데, 한반도를 공산주의 진출에 대한 방파제정도로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빠른 시일내에 반공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


이것이 이승만이 원하던 것과 일치하여 이승만의 미국행은 정말 성공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전달받지 못한 주한미군 하지장군은 그 뒤로도 이승만을 감시하고, 그뒤로 고립을 피하기위해 김구의 설득대로 우익계를 통합하기로 한다.


이때, 둘간에는 거래가 있었는 데, 북한의 의석을 남겨놓고 반쪽정부를 만들자는 김구의 의견에 이승만은 찬성한다.

김구와 이승만의 결합이다.

김구는 이승만과 결합하고 나서 한민당도 접수하려고 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우익이 모여야 한다는 것을 피력하던 김구의 의도를 알고 있던 한민당의 장덕수는 반발을 하다가 결국 누군가에게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된다. (암살의 귀재. 김구)


덕분에 김구는 장덕수 암살사건의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까지 서게 된다.

김구는 이승만에게 자신이 법정에 서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이승만은 거절을 하고 결국 둘은 결별하게 된다.


이때부터 김구는 반쪽짜리 정부를 만드는 방침에서 생각을 바꿔 남북협상론을 주장한다.

이것이 남북한의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것이라 김구는 후일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김구가 살아있었다면 통일정부가 수립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 많지만, 그도 그렇지 않다는 것.



김구는 먼저 미소양군이 한반도를 떠나면 그뒤에 선거를 통해 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주장을 관철했다.

그러나 미국은 단일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주둔군이 떠난다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이야기만 하고 있을 뿐, 진전은 없었다.

결국 김구는 북한에 서신을 보내 김일설을 설득하려고 하고, 남한 선거가 있기 한달전에야 간신히 방북을 허용받는다.


그러나 북한은 구심점이 여러개인 남한과는 달리, 김일성이라는 하나의 구심점을 가지고 남한보다 훨씬 빠르게 정부수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치권을 허용한 소련의 영향으로 이미 자체적인 화폐와 군대, 헌법까지 가지고 있는 상태.

정부수립공포라는 형식적인 절차만 남겨놓고 있는 상황.


결국 북한이 김구를 부른 이유는 북한 정권수립의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목적외에는 없었다.

우리가 김구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적인 애국자로 소리높여 이야기하고 있지만, 철저히 자신이 대한민국의 탑이 되기 위해서 움직인것. 그외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김구는 선거에 불참하고, 이승만의 몰표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후 남한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던 김구가 피살됨으로 대한민국도 이승만이라는 구심점 하나로 움직일수 있게된다.




김구의 존재로 인해 결국 대한민국은 우왕좌왕하게 되는 데, 지금까지 우리의 인식은 그게 아니다.

내가 학창시절에는 김구만 살아있었어도 통일 정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 데, 그것은 박정희때 조작된 일이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을 깍아 내리기 위해 김구를 영웅적인 존재로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쿠테타로 대통령이 된 박정희이기에 누구보다도 절실히 정통성을 필요로 했고, 그러기 위해서 이승만을 깍아내리고 김구의 존재를 부각시킨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배경이라고 한다.




해방후 1970년대까지는 남한보다 북한이 훨씬 잘 살았다.

북한은 김일성을 구심점으로 자치권을 가지고 친일파를 처단하고 토지개혁을 이룬다.

북한에서는 국민들에게 토지를 무상을 나눠어주고 있다는 소문이 남한까지 퍼져 결국 지식층은 대부분 북한으로 가버리는 사태.

남한에는 그에 반발한 북한의 지주나 부유층이 모였다.


북한이 훨씬 잘 살았던 이유는 해방후 지하자원과 공장들이 대부분 북한에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남한에는 논과 밭밖에 없었을 정도.

그러한 상황이니 남한은 개차반이고 북한은 엄청나게 잘 살은 것은 당연한 일.

거기다 북한은 남한 인구의 절반도 안됬다.

남한은 한정된 자원으로 대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당시로 따지자면 농촌.

북한은 잉여자원도 많은 데, 핵가족인 도시였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좌익이 뭉친탓에 텃세를 느낀 우익들은 모두 남한으로 넘어왔다는 것도 한 몫했으리라.

남한이 좌우대립으로 우왕자왕할때, 북한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데 뭉쳐 대대적인 개혁을 한다.

노동법을 실시하여 하루에 8시간만 일한다는 내용등, 당시로는 정말 획기적이었다.

개혁은 친일파의 토지는 모두 몰수. 지주들은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면 모두 몰수. 자신이 농사를 지어도 극히 제한된 토지이외에는 전부 몰수한다. 그렇게 몰수한 토지는 노동이 가능한 사람수에 따라 공짜로 분배해 버린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당시의 북한은 사유재산이 인정되었다. (1950년대 중반에 결국 모두 국유화해버린다)


그와는 비교되게 남한은 친일파의 청산도 안되었고, 추가로 자본주의를 표방하면서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고 모두 미국이 관리하여 토지를 빌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6.25는 남침이냐 북침이냐 말들이 많지만, 정부수립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할때까지 남한과 북한은 누가 먼저라고 할것까지 없이 전쟁을 통해 통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두 정부는 서로 자신이 정통성이 있는 정부이며, 서로 다른정부는 정부가 아니라 외면하고 있던 때였다.


정부가 수립되자 원래 약속되로 소련군이 먼저 철수하고, 미국군도 철수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철수하면 상대적으로 엄청한 열세였던 남한은 북한에게 공격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이승만은 남한 내부로의 단결을 꾀했다.


그것이 더더욱 문제였던 것이...


지금 연평도니 하는 것처럼 북한이 가끔 남한을 공격하는 것과 똑같았다.

38도선 주변에 국지적인 도발을 행한 것.

지금 한국이 공격당하면서도 북한에게 큰소리못하는 이유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북한이라는 주적을 토대로 남한의 하나로 뭉치게하려한다.

이때문에 외교의 귀재라고 칭송받던 이승만은 결국 전쟁도발자라는 이미지가 찍히게 된다.

향간에서는 이승만이 나이를 너무 먹어 판단력에 장애가 생겼었다고 말할 정도...


사실 북한은 이승만의 도발이 있기전에는 남한 내부로서의 붕괴를 꾀하고 있었다. 현상황에서도 알아서 민중봉기 해주겠지 하는 마음.

그러나 이승만의 도발이 거세지자, 통일전략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게 된다.


그러나 김일성이 착각을 하고 있던 점은, 남한 내부로써의 붕괴를 꾀하며 빨치산을 파견한 것부터 시작이다.

이승만은 빨치산을 파악하고 그들을 소탕하는 데, 남한 내부에 있던 좌익들을 전부 소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김일성이 남한을 침략하면 민중들이 알아서 봉기해 주겠지 하고 한국전쟁을 벌였지만, 이미 김일성 추종자들은 전부 소탕된 바람에 민중은 봉기하지 않았다.


남한에게 도발당해 이를 갈고 있던 김일성이었지만, 쉽사리 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이, 미군의 존재였다.

그러나 국제적인 정세는 북한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군의 철수에 이어 소련의 핵실험 성공.

중국의 공산당 통일

중국의 공산당 통일에 의해 미국의 아시아권에 소극적인 자세로 바뀐다.

그리고 결정타. 애치슨 선언.

소련과 중국의 공산주의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이 반드시 지키겠다는 라인에서 남한은 철저히 배제된다.


그 원인은 이승만에게 있었다.

평소 북한에 도발을 하던 것을 알고 있던 미국은 그것을 저지하고자 일부로 빠뜨렸다는 것이다.

애치슨 선언과는 별개로 남한은 지켜줄 속셈으로 있었던 미국이었지만, 김일성은 그런 사정까지는 알 수가 없고, 애치슨 선언만을 보고 사기가 상승했던 것은 틀림없다.


1950년2월에는 중국과 소련이 우호동맹을 체결하자, 김일성은 이제 중국과 소련에게 남한을 침략한다는 허가를 받는 일만이 남아있을 따름이었다.


소련의 스탈린에게 연막작전을 펼치라는 조언을 받은 김일성은 그 가르침대로 평화적으로 통일을 할것처럼 대화를 시도하면서 기습공격을 생각하고 있었다. 6월7일. 김일성은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여 평화통일을 하자고 주장한다.

원래 김일성이 생각하고 있던 침략예정일은 8월15일로, 일제로부터의 광복절이다.

남한을 해방시키겠다는 야심찬 날짜였다.

그러나 6월 25일 남한의 군대가 방심한 틈을 타서 기습공격을 강행.


한국전쟁의 발발이다.



애시당초 6.25를 북한이 침략했다고 북한 나쁜놈! 이라고만 외치는 것은 역사의 왜곡이 아닐까 싶다.

만약 남한에도 북한과 같은 상황으로 군사력이 2배정도 되었다면 북한을 침략했을 터이다.

6.25의 발발원인조차 이승만에게도 있으니, 남한이 가만히 있는 데 침략해 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시의 정의는 김일성에게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전쟁으로 인해 우리는 더이상 통일을 바라보기는 힘들게 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통일정부를 지향하던 당시 국민들도 남한 단일정부를 지향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정통성이 부족했던 이승만의 입지가 확고하게 되었다.

또한 전쟁 후 미국의 막대한 원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김일성도 비슷한 이유로 정통성을 찾고 유일체제의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전쟁책임을 빌미로 당시 눈엣가시였던 존재들을 모두 소탕한다.

북한 역시 전쟁후 소련과 중국에게 막대한 원조를 받는다.


중국은 우리에게 있어선 고래부터 있었던 나라같은 느낌이지만 당시 중국은 이제 막 창건한 신생국가였다.

국민은 많았지만 경제,군사 모두 처참했다. 소련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공산주의 국가인 만큼 반미감정이 쩔었는 데, 한국전쟁 참전은 중국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고 한다.

전후, 전쟁 참전을 빌미로 소련의 도움을 자연스럽게 받는다.



일본은 정말 한국에게 수백번 감사를 해도 모자랄 정도로 특혜를 받았다.

미국은 대부분의 전쟁물자를 일본에서 조달을 했고, 그것은 곧 경제적인 부흥으로 이루어졌다.

흔히들 알다시피 세계경제대국이라는 일본은 당시 전후 빈곤국중 하나였다.

전쟁에게 패하고 전 세계에 있던 일본 국민이 돈 한푼없이 입국한다.

전쟁보상금으로 엄청나게 털린 일본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거지였다.

그런데 일본인이라고 입국해 오는 자들 또한 거지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어난 전쟁에 물자를 팔아먹으니 이것이 바로 한국전쟁 특수.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적자였던 국제수지는 흑자로 전환된다.

뿐만 아니라 무기를 일본에서 조달했던 미국은 전문 기술자를 파견하여 일본에 생산노하우를 지도하기까지 한다.

일본에게 있어선 절호의 기회였다.




남한은 빨리빨리문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느릿느릿문화가 기본적인 한국인의 삶이었는 데, 조선선비,양반들을 생각하면 된다.

그것이 전쟁을 통해 대충대충,빨리빨리 피난을 가야 산다는 관념이 지배적이 되었다.




여차저차 휴전을 하고 남한도 북한도 초토화 되었다.

그렇지만 북한은 쭈욱 잘았고, 남한은 쭈욱 못 살았다.

전후 북한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복구를 우선시한다. 이것을 박정희가 뒤늦게 따라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북한의 집단농장체제의 변환.

전쟁은 북한에게 있어서도 절호의 기회였다.

사유재산을 허용하던 북한은 복구를 위해 모든것을 국유화하고 궁핍한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주장했다.

전쟁으로 인해 모두가 가난하게 된 국민들도 한마음이 되어 일을 했기에 효과는 극대화되었다.

북한이 잘살게 된 원동력이다.


남한은 박정희가 쿠테타를 일으키고 제일 먼저 한일은 쌀가게를 털어서 강제로 쌀을 몰수하여 서민들에게 나눠준 일이라고 하니, 얼마나 궁핍하게 살았는 지 상상이 간다. 여기서도 알 수 있는 이야기다.

남한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공산주의였다. 공산주의를 택한 북한이 저렇게 잘 살다, 우리도 따라하자는 것이다.



남북한의 처지가 바뀌게 된 것이 1970년대.


사실 그렇기때문에 이전까지 일본에 있던 재일교포들은 모두 북한에 살고 싶어 했다.

덕분에 일본의 남아있던 한국인은 아직까지 북한을 국적을 택할 정도 였다.



1970년대까지 김일성은 단 하나를 목표로 삼아왔는 데, 바로 모두가 쌀밥을 먹는 풍족한 사회였다.

그리고 가능하리가 생각되었던 그것이 불가능해진것이 소련의 원조가 끊긴것이다.

소련군의 철수.


아직까지 미군이 주둔하던 남한과 달리, 이후 북한은 군비에 엄청나게 돈을 투자해야 했다.

남한은 군비에 돈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차이가 발생한다.


결국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김일성은 우상화 작업까지 실시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지도자 수령 김일성의 이미지는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다같이 잘 살자고 일어섰는 데, 이때부터 대부분의 돈은 군비로 흘러들어가고 결국 서민들의 삶은 여기에서 멈춰버렸다.

열심히 일해서 다 같이 잘 살때 공산주의는 정말 힘이 되는 것같은 것이, 다들 힘냈다는 소문이다.

그러나 열심히 일해도 다 같이 못 살때, 공산주의는 결국 파멸하게 되는 것. 다 같이 일을 안하는 것이다.

1970년전 김일성의 활약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했지만, 무너지기 시작한 나라의 김일성은 최악의 지도자였지 않을까 싶다.


북한은 결국 소련의 해체 더불어 고난의 행군에 들어서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구심점을 잃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일파와 김일성추종자들의 파로 둘로 나누어져 마치 광복후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내부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학창시절 학교에서 배우던 내용과는 정말 상이한 부분들도 많고, 알려주지 않는 내용도 많지만, 그것이 어쩔수 없는 것이, 대부분 1995년이후 비밀문서들이 세간에 개방되면서 알려진 내용이니, 내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지 모르겠다.



남한은 1970년대 이후 운에 운을 거듭하고 일본에게 전쟁보상금을 받아 위안부와 피해자, 독립운동가에게 보상을 해주지 않고 나라경제를 발전시켰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지금까지 까이고 있는 내용이지만, 우리가 지금 북한보다 잘 살고 있는 것은 그래도 전쟁때 피해를 보신 분들 덕택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안타까운점은, 잘살던 북한이 못 살게 된 계기는 애당초 군비의 지출에 있다. 만약 통일이 되면 다 같이 못산다고 반대하는 분들이 많지만, 난 그렇게 생각안한다.

1970년까지만 해도 잘 살던 남한보다 북한이었다. 그말은, 통일이 되어 군비의 지출이 없어지면 북한도 예전의 위상을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통일이 되면 잘 살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한때 잘 살었던 만큼, 기반만 마련되면 북한 국민들도 다시 일어설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향간에는 북한이 먼저 최소 GDP 1만불은 달성해줘야 통일을 할때 타격이 줄것이라는 것을 보면서, 과연 지금의 고립된 북한이 제대로 일어설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물론 그렇다면 통일은 불가능하겠지만.



또한 만약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일본에게 전쟁보상금을 다시 한번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통일축하금]이라는 명목이 될지도 모르지만.

남한은 이미 박정희가 싸바싸바해서 돈을 받아먹었다지만, 북한은 받지 못했다.

그렇다는 것은 북한의 분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물론 당시 고생했던 분들,혹은 그 후손들에게 재분배해야할 금액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옛날 박정희가 그렇던 것 처럼 지금의 우리도 분배보다는 북한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대한민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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