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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대신중학교에 입학은 뺑뺑이였다. 당시 부모님은 대전대신고에 들어갈 확률이 커졌다하여 기뻐했었고 난 단순히 형과 같은 학교에 들어갔다고 좋아라 했었지ㅎ

좀 나중이야기지만 뭐 말나온 김에 써볼까ㅎ
당시 형은 3년차이인지라 내가 중딩이 됨과 동시에 고딩이 됬다.
주변의 평판이 안 좋은 비인문계가 가서 부모님이 크게 실망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중3때 북고와 대신고, 그리고 충남기계공고를 놓고 고민을 했었을 당시, 부모님은 대신고를 가라고 그렇게 성화였다.
형도 나랑 거의 비슷한 점수대였기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북고를 선택했다고 하는 데 그게 그렇게 못마땅했다고 너만은 대신고 보내겠다 성화셨다.


님하 제발...형일은 형대에서 끝내지 왜 나한테 뭐라 그러는 겨...ㅠ

갠적으로 젤 가기 싫었던게 대신고였다.

사실 가고 싶었던 것은 충남기계공고..당시 충기라 불리던 공업고등학교인데, 우리지역에서는 공고중에 제일 쎄다는 소문으로, 인문계 갈 성적의 아이들이 공고를 지향할 때 이 학교를 선택한다 하니 성적면에서는 다른 학교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주변의 평판이었다.

난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공부가 싫어지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4~5학년이 되면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사람이다.
뭐 그렇다고 대놓고 안하고 놀기만 했던 것도 아니고 벼락치기 공부 정도는 했었다.
(시험 직전에 친구들이 공부하는 거 보고 같이 조낸 외우거나 했었다...-_-)
부모님이 시켜주시던 것은 눈높이교육이라는 학습지. 마냥 꼴통만은 아니었는 지 성적은 언제나 그럭저럭. 반에서 중간정도는 했었다. 아니...딱 중간이었다;;

그렇게 초딩생활과 중딩생활을 마치고 나니 돌아온것은 갈림길에서의 망설임.

인문계인 대신고를 가자니 불보듯 뻔하다. 꼴찌다.
대신고에의 턱걸이수준 합격라인은 간신히 맞췄다. 뺑뺑이로 다른 인문계에 떨어질 확률이 조금은 있겠지만 집주소도 정림동에 대신중출신...이것만으로 대신고 넣어서 떨어질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게 당시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선생님도 대신고에 들어가는 것을 추천했었다ㅠ

공부가 싫던 당시엔 너무나 싫었다 다들 대신고 대신고.
대신고간다고 서울대 가는 넘은 가지만 난 아니라구-_-
공부할 맘도 없는 데ㅠ

뭐 암튼 충기가고 싶다는 내 말은 그냥 씹혀졌다. 형이 다니던 북고도 가고 싶은 마음도 1퍼정도 있었지만 정말 열성적으로 반대당했다;;

이론은 좋았다 생각했는 데.

충기를 가면 고딩때부터 돈 벌수 있다. 정식적으로는 고등학교 졸업후에 바로 취직전선에 띄어들 수도 있고, 진학반으로 들어가 대학으로의 진학도 꿈꿀수 있다. 충기라는 이름이 빛날테니 공업쪽 학과라면 문제없겠지 하던 마음도 있었고. 당시의 선택은 충기가 젤 좋다생각했었고.

북고에 들어가면 반에서 일등은 하겠다. 비인문계다 인문계를 떨어진 얘들이 공고나 상고가기는 싫고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성화도 있고 해서 선택하던 게 비인문계다. 허니 턱걸이 수준이라고는 해도 인문계 갈 성적이 되던 내가 북고에 가면 틀림없이 전교10등안에는 들겠지? 하는 마음.
아무리 빡고라 불리며 무시당하는 학교라 해도 전교등수에서 놀면 대학도 충분하겠고..
하는 마음가짐도 있었다.

그리고 대신고를 선택할 시는 꼴찌다 전교꼴찌 레벨일테다.
아무리 우리지역에서 유명한 대전대신고의 이름이 빛나도 전교꼴찌레벨을 누가 좋아라 하겠는 가...나의 이론이었지만, 묵살당했다.
그렇게 부모님과 선생님의 모종의 합의하에 대신고에 넣게되고
난 당당히 합격하게된다ㅠㅠㅠㅠㅠㅠ

 

대신중에서의 기억은 체육복으로 통일된다.
난 항상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내복대신 체육복을 입고 있었지.

요전글에서 밝힌바와 같이 당시의 나는 우리집이 남들보다 잘 산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버지는 노래방 어머니는 비디오대여점을 운영하며 할부로 산거지만 집도 있었지.
집에 차는 없었지만 아버지가 장애인에 색맹이었고 당시 법률로 색맹은 면허를 딸수 없었다.
(현재는 한정승인)

사실 이야기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슬슬 나오는 건데,
학교의 짱이 누구인가 등등
불량써클이 생겨나기 시작하던 나이다.
초등학교때는 이현진과 유흥상이 학교 짱의 대명사였다.
유흥상은 당시 몸집이 남달리 커서 혼자지만 쎄보였다.
이현진은 몸집은 작았지만 빽이 있다는 소문이었다. 시설에 있던 아이였는 데, 같은 시설에 있는 형들이 그 빽이었다.

그들이 하는 것은...그렇다 일명 삥뜯기. 돈을 가지고 약한자는 불행했다.
난 어떻게 항상 평범한 생활을 하고...(사실 부모님도 브랜드는 안사줬지)
현진이랑은 친하게 지냈던 것도 있었지.(짝꿍인 적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운좋게 그 초딩시절 학교짱들의 권력다툼과 세력다툼에서 빗겨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오면 초딩수준의 기싸움이 아니다.
학생들은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패싸움을 시작했다.
초등학교때는 배짱이 큰 자가 싸움을 이겼다.(우리학교는 그랬다)
중학교때는 시다바리를 많이 많들어 패가 많은자, 그리고 싸움으로써 그 정점에 오른자가 짱의 위치에 있었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마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호모 하빌리스로 진화한 느낌이랄까-_-
각목을 들기 시작했다;
아이구 무서워ㅠ


그런 와중에서 난 우리집에 잘 산단하는 것은 숨기고 싶었다. 숨겨야 했다.
아니면 돈을 뺏기기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체육복을 입기 시작했다;;
형에게 물려입은 체육복에 학교가 시작하기 직전에 가서 주워온 체육복.
그리고 형이 주워왔던 체육복
형친구에게 받은 체육복
집에 체육복은 수두룩했다 내 기억엔 6벌이상 있던 걸로 기억한다.
난 어딜가든 체육복을 입었고, 겨울에는 내복대신 체육복을 입어, 가난한 집 아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연출했다.하지만 초딩때의 모습을 알고 있는 자들도 있어, 그렇게 완벽히 숨겨지지만도 않은 것이 결과였나...;;
뭐 아무튼 그렇게 나의 별명이 체육복의 [육복]이 되었다.

중딩때 하두 오락실을 다니던 나와 형이 애속했던지 형의 공부를 위해서 였던지(형은 디자인등 미술에 흥미가 있었다) 부모님은 적금을 깨서 200~300만원정도의 컴퓨터를 사줬었다.
이때부터 컴퓨터의 흥미가 생겼고..
당시 중1때. 아직 한국에 스타크래프트가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피시방도 보급이 안되었던 시절에 그 당시 새로산 컴터에 데모판이 깔려있었다.
멋도 모르고 플레이하던 나. 즐겁게 혼자 놀았는 데 갑자기 중1끝날때쯤에 스타가 보급이 됐다 급작스럽게 작은 동네에 5개나 되는 피시방이 오픈했다;
피시방에선 모두모여 스타를 했다.
당시 내또래에서 스타를 전부 처음하는 아이들뿐이었고, 난 컴터로 데모판을 몇번이나 플레이했었다. 물론, 정식판이니 조금 다른 점은 있었지만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학교 스타짱의 자리를 얻었지-_-;;

당시 친구들의 수준은 조낸 돈 모아서 캐리어를 뽑았는 데 왜 공격을 못하니? 이거 수송기니?
이런 레벨이었으니 할말 다 했지 머.
최고렙을 본것도 있고 우리집에 컴터는 있었지만 인터넷은 안됬다. 스타를 하기위해선 피시방에 가야했지만 나에게 그런 돈은 허락되지 않았다.연습이 되질 않는 거죠~ㅎ
결국 학교스타짱의 자리는 몇달되지않아 저멀리...ㅡㅡ;;지금도 내가 스타를 잘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이른다 개나소나 다 하게되는 중2~3때의 나의 평판은 그냥 그럭저럭하는 얘 정도의 인식.

당시 우리집은 인터넷이 안됬으니 인터넷이 되는 친구집에서 여러가지 부탁할 만한 것이 많았다. 좋은 방향으로는 프로그램.유틸.게임.
조금 나쁜 방향으로는 야동.야사.야겜,야설등등..
중학교때라 워낙 그쪽으로 발달하던 때라...난 친구를 이용하여 나의 성욕을 충족시키려했었다.
허나 그 친구가 공짜론 안된다네..
난 친구 좋다는 게 뭐냐머 친구한테 무슨 돈을 달라그러냐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허나 되려 설득당했다ㅡ,ㅡ
그 친구왈
니가 그런말을 한다면 너도 니네집 비디오 공짜로 빌려줘야하는 것 아니냐-_-
...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말이지만 그당시 어리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결국 나는 그 친구에게 갈때마다 비디오하나씩 공짜로 빌려주고
그 대신 그 친구는 나에게 여러가지 자료들을 공짜로 주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뭐 중학교3년 같이 지내고 저 친구와는 절교했다.
결국 너무나 계산적이고 타산적인 건 나와 맞았다고 생각했는 데
자기중심적인 것은 나와 안맞았기에 절교하게 됬지.
문제는 영웅전설3 하얀마녀의 포스터였다.
당시 게임잡지 부록으로 이런 귀한것이 달려왔다. 당시 이 친구는 나보다 더더더더욱 기대했었고 복사하는 것 뿐이므로 사자마자 바로 하루 빌려주고 다음날 받기로 되어있었다.
허나....게임잡지가 돌아왔을때 포스터는 사라지고 난 후였다.
난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몇일이 지나 또 다른 친구가 왔을때 그 잡지를 보고
자기가 정말 좋아한다고 포스터 달라구 포스터 없냐 말해왔고 난 그렇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선심쓰듯 좋다고 했지만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지. 그 친구가 이미 먹었으니.
결국 또 몇일이 지나 그친구집에 가서 해명을 요구 했다.
그 친구왈 [말할려고 했는 데 타이밍이...]
난 그친구가 말만 했었어도 별 생각없이 줬을 터였지만 아무래도 그 친구는 나에게 말을 안한것이 화근이 되었다 당장 달라고 하고 사과하라며 분위기가 냉랭해졌지.
당시 그 친구가 한 행동은 그 포스터를 찠었다.
우리의 사이가 이렇게 된건 포스터야 그러니 이 화근거리를 없애자..


장난하니? 그거 내 꺼거든??????
그날로 그를 안 보기로 맹세했다
난중에 그 친구는 똑같은 잡지를 사서 나에게 주려고 했지만 당삼 난 안받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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