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誰も知らない後藤真希 ~活動休止までの200日~

아무도 모르는 고토마키 ~활동휴지까지의 200일~









뭐...이걸 다 해석할려는 건 시간적 여유와 누가 본다고...하는 마음이 크고-_-


대략의 내용은 아무것도 맘대로 못하고 자유가 없다는 게 문제.

자유를 얻기위해 활동을 쉬는 것을 선택

지금까지의 고토마키의 이미지는 다 만들어진 것. 진짜 자신이 아닌 것이라 힘들다


지쳣다. ..


남들은 학생시절에 알바나 하며 놀고 있을 때 자신은 중학생때부터 모닝구무스메에 발탁되어 일만 하게 되었음

남들이 놀때 일했던 거니까 나는 이제 자신또래 애들이 일하고 있는 지금 그 노는 시간을 만드는 것 뿐이다.

팬들에게는 미안하고...하지만 휴지라는 단어선택에 희망을 남겨놓고 싶다.


자신이 자신을 조종하고 있는 꼭두각시 인형같은 느낌...

자신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고있지만 결국은 자기자신이 조종하고 있는 거야...(궤변이란 생각이...-_-)



네...형의 AV설을 보자마자 알게 된게 있습니다.

[주간실화]라는 잡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주간실화에는 실화가 없습니다-_-


일단 어떤 내용이 적혀있냐 하면 실제섹스를 하면 3억준다는 데 그걸 거절해서

AIV(어덜트 이미지 비디오)가 될듯하답니다.그래서 8천만이라는 싼 가격...


이 사람이 돈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은 당시 모닝구무스메의 인기를 잘 모르는 듯..

현재 고교생에서 60대까지의 일본인이라면 모닝구무스메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실질적으로 모닝구무스메를 당시 최고 인기그룹으로 만들어준게 이 고토마키입니다.

얘가 들어와서 그룹이 감히 일본최고그룹으로 성장하죠.

계약상의 이야기로도 말할 수 있는 데요. 그 전까지의 멤버까지는 아무리 빡세게 일해도..아무리 싱글이나 앨범이 팔려도...한달 급료가 20만엔이라는 계약을 하고 있었답니다.그리고 그걸로도 납득하고 있던 멤버들인데,(제발 데뷔만 시켜달라고 했던 1기 멤버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 고토마키 영입이후 그룹이 뜨고 이후 카고아이나 츠지 노조미를 영입할 때 부터 계약내용이 바뀌죠.

이후 이 그룹이 일본에서 제일 세금을 많이 내는 연예인 집단으로 유명해집니다 (세금많이 낸다는 건 즉, 수입이 많다는 것이죠?)





활동정지전엔 이런 사진집도 내지만...내용은 별로 대담하지 않다는 군요 표지만보면 적어도 세미누드는 될줄 알았는 데ㅠ





참고로 일본인들의 반응은...

뭐...주간실화에 실화가 없는 건 다들 알고 있을 테니..이번경우의 실화는 고토마키의 남동생이 AV의 남자배우로 데뷰하는 것일것이다.


고토마키가 수영복 입고 그냥 달리거나 뒹굴거나하는 내용으로 찍은 거아냐?


주간실화가 네타여선 망상조차 안된다구...ㅠ최소한 동경스코프정도에 나와줬으면 상상정도는 해보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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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2

자전거=2

자동차=4

그럼

전차 +삼륜차=(?)

?의 숫자는 몇이 될까?


힌트는 일본어를 모르면 맞출수 없습니다.


バイク=2
自転車=2
自動車=4

では

電車+三輪車=(  )

(  )内の数字はいくつでしょ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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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S『とびだせ どうぶつの森』 マイキャラの顔チャート 一覧表



네...아내님이 결국 다운로드판을 질렀네요ㅠ

그런 이유로 공략을 찾아다니고 있네요.

이렇게 처음 선택지에 따라 얼굴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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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기원에 대해 조사한 방송입니다.


인류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는 내용인데요..

....제가 생각하는 것도 인류의 기원은 한국인이다 하는 내용이 한단고기의 내용이지만, 이렇듯 인류의 기원이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한국인이 기원이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 한국인도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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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찾다보니 이젠 이런 새로운 종파까지 출현했었군요...ㅎㄷㄷ


과연 그럴듯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라는 표현을 쓰죠.

대체 왜? 하나님은 아버지인가? 아버지만이 존재하는 가?

명쾌한 대답을 이 교회에선 하는 듯 합니다.

창세기에 실린 하나님이 자신을 지칭할 때 '나'란 표현 대신 '우리'란 표현을 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이 한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듯...-_-


<그래봤자 본인은 기독교라면 치를 떠는 사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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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82cook.com/entiz/read.php?bn=16&cn=&num=163280&page=1&searchType=search&search1=4&keys=31418


2008년도에 예언한 말이 정확하게 맞아들어갔군요.

진중권 교수의 말처럼 정말 진보세력이 이기기는 보수세력이 다 돌아가시는 20년후에나 가능한 일일까요..


2008년 8월 9일은 위대하신 휘트니 휴스턴님의 45번째 탄신일이십니다.
이런 경사스러운 날을 맞이하야 이런 재수없는 글을 남기는게 참 아이러니하지만 그래도 4년뒤에 확인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굳이 이 날을 골라서 글을 남깁니다.
이 글은 봉인해뒀다가 4년뒤인 2012년 8월 9일 다시 확인하도록 하지요. 너무나 쪽집게처럼 맞춰서 돗자리 깔아야할겁니다. ㅎㅎㅎ (자게에 안쓰고 여기 올리는건 여기가 4년뒤에 검색하기가 더 좋기 때문입니당~~)



2012년 12월 18대 대선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될것입니다.
득표율은 대략 45%내외 약 1100만표 정도 득표할 것입니다.
수도권(인천제외)에서 500만표 조금 못미치고 그리고 경상도내에서 500만표정도 득표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외 지역에서 100만표정도 더 득표해서 1100만표로 대선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박근혜가 병이나 사고로 쓰러지거나 죽지 않는한 2012년 대선에서 한국 역사상 최초로 여자 대통령이 탄생할 것입니다.

이렇게 당연하게 예언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되돌아보면 됩니다.
과거 총선과 대선의 투표성향을 분석해보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것이라는걸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한국정치에서 가장 중요한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경제? 보수 혹은 진보의 대립? 군대? 돈? 전과?
한국정치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지역]입니다.
한국정치를 경제 보수/진보 이런걸로 백날 분석해봐야 50%도 제대로 분석이 안됩니다.
그럼 지역으로 분석해보면.. 약 90%이상 분석이 가능합니다.

1997년 대선부터 분석을 해봅시다.
이때 한나라당후보(당이 하도 이름을 많이 바꿔서 그냥 한나라당으로 통일)인 이회창씨는 전국적으로 38% 약 1천만표 조금 못미치는 득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민주당후보(역시 당이 하도 이름을 많이 바꿔서 그냥 민주당으로 통일)인 김대중씨는 전국적으로 40% 1천만표 조금 넘치는 득표를 했습니다.
1997년 12월 대선을 한달 앞두고 한국은 imf에 들어섰습니다.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된 것을 이 imf로 인해서 정권교체가 되었다고 분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틀린 것입니다. 정권교체가 된것은 imf때문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언제나 지지하던 경상도가 분열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인제씨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출마해서 약 15%이상 득표했습니다. 15%면 약 400만표 정도 됩니다.
원래 이표의 절반이상은 이회창씨에게로 갈 표들이었습니다. 근데 그것을 이인제씨가 중간에 가로채서 김대중씨가 어부지리로 당선된 것입니다.
1997년 대선은 imf에 들어가고 한달만에 치뤄졌습니다. 근데 imf를 몰고온 한나라당 후보인 이회창씨가 38%나!! 득표했습니다.
이 표들이 다 어디서 온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대부분 경상도에서 온 것들입니다. 절반이상 약 70%가 경상도에서 그리고 수도권에 사는 경상도 출신들이 함께 던진겁니다.
참 웃긴 나라이지요? 나라를 말아먹었다고 하는 imf당시에도 경상도에서는 imf를 몰고온 한나라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2000년 총선을 살펴봅시다.
이때는 imf를 극복한지 얼마 안되던 시기였고 대통령은 김대중씨
한나라당은 이회창총재가 이끌고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한나라당은 39%(7백30만) 득표했습니다.
그럼 민주당은? 35.9%(6백70만) 득표했습니다.
imf를 몰고와주신 고마운 한나라당이 더 많이 득표했습니다.
의석수로 따지면 전체의석 273석중에서 절반에 조금 못미치는 133석(과반은 137석입니다. 4석 모자랍니다)을 차지했습니다.
어이쿠 imf를 몰고온 정당이 많이도 차지했군요. imf가 별로 힘들지 않았나봅니다. ^^

2002년 대선 살펴봅시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48.9% 1천200만표 득표해서 당선되었습니다.
그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46.6% 1천100만표 득표해서 떨어졌습니다.
한나라당 후보에게 46%나 표를 던졌습니다. 1위와의 표차는 1997년처럼 2%밖에 차이가 안났습니다.
1997년에 비해서 득표율이 높아진것은 이인제씨같은 중간에서 표를 가로채는 고마우신(^^)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왜 노무현 후보가 저렇게 많이 득표할 수 있었을까요?
몇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근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노무현이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경상도 출신이기 때문에 경상도에서 특히 경남과 부산에서 30%가까이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2%의 작은 격차로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김대중씨는 imf당시에도 경상도 평균 지지율 15%를 넘지 못했습니다. 민주당의 경상도내 평균 지지율도 마찬가지입니다.

2004년 총선 살펴봅시다.
탄핵때문에 말 많았습니다. 뭐 그때 분위기는 다 아실테니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열린우리당 총 152석
한나라당 총 121석 차지했습니다.
이것만보면 아무런 문제 없는것 같죠?
득표율을 봅시다.
정당지지율 득표에서 우리당은 38.3%
한나라당은 35.7% 득표했습니다.
2000년 총선과 비교해봐도 탄핵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사건이 있었어도 한나라당 지지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겨우 4% 차이납니다.

자 그럼 2007년 총선 살펴봅시다.
한나라당 후보 쥐새끼(헉 오타!)가 48.7%의 득표율로 1천1백만표 득표했습니다.
민주당 후보인 정동영씨는 26.1%인 6백10만표 득표했습니다.
이회창씨는 15.1% 3백50만표를 득표했습니다.

결과를 잘 보시면 뭔가 특이한게 보이지 않는지요?
한나라당 지지율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크게 차이가 없어요.
근데 민주당의 지지율은 엄청나게 떨어졌습니다.
이럼 또 "노무현이 정치를 못했고 민주당이 그래서 망했고 주저리 주저리" 하시는데요.. 그럼 김영삼은 정치를 잘해서 1997년에는 한나라당 뽑았나효? ㅎㅎ
1997년처럼 이인제씨와 같은 누군가가 나와서 민주당의 지지율을 갉아먹었다... 라고 말씀하시겠지만 애석하게도 이회창씨의 득표는 민주당표보다는 오히려 한나라당 표를 갉아먹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과거를 살펴보면 미래가 보인다고 했지요..
지난 총선과 대선을 살펴보면 결론이 뭐냐...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그럼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이제 그걸 분석해봐야 합니다.
여기서 잠시 오늘 생일을 맞으신 위대하신 휘트니 휴스턴님의 1992년 히트곡 i'll always love you를 들어주시고..
위대하신 휘트니 휴스턴님은 1992년 BodyGuard 영화에 캐빈 코스트너와 출연하셔서 초대박 히트를 날리셨지요
그전에도 대단하신 슈퍼스타이셨지만 1992년 보디가드 영화와 사운드트랙의 히트로 인해서 전세계 최고 인기가수로 등극하시고
보디가드 사운드트랙은 그때까지 남아있던 팝 역사의 모든 기록을 다 갈아치웁니다. 딱 하나 마이클잭슨의 스릴러 앨범 판매기록만 제외하고 모든 기록을 다 갈아치우고 팝의 역사를 다시 쓰시지효~~ ㅎㅎ
1963년 8월 9일생이시니 올해로 45세가 되십니다 ^^

각 선거의 지역별 득표율을 알수 있다면 더 확실하겠지만 그건 좀 구하기가 힘든지라
그나마 구할수 있었던 2007년 대선의 지역별 득표율로 분석을 하겠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1천1백만표를 득표했습니다. 한국에서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약 1천 1백만표가 필요합니다.
그럼 이 표를 도대체 어디에서 얻었는가? 그걸 분석해봐야 합니다.

2007년 대선에서 한국의 총 투표인구수는 3천7백만명입니다.
투표인구수를 지역적으로 분석해보면... (아래의 인구수는 모두 만20세 이상 투표인구수입니다)

서울에 800만명 경기도에 820만명 총 1620만명이 수도권에 살고 있습니다.(인천제외)

경상도의 경우
부산 280만명
대구 190만명
울산 80만명
경북 200만명
경남 240만명
약 9백9십만명.. 쉽게 그냥 1천만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전라도의경우
광주 100만명
전북 140만명
전남 150만명
총 390만명.. 그냥 쉽게 400만이라고 하겠습니다.

강원도의 경우 110만명

충청도의 경우
대전 100만명
충남 150만명
충북 110만명
총 360만명입니다.

그외지역은 인천 200만명 제주 41만명입니다.


인구분포를 보면 뭔가 보이지 않으시는지요??
우리는 보통 선거에서 전라도와 경상도를 함께 취급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절대 함께 취급될수 없습니다.
다른 지역 다 합쳐도 다시 말해서 전라도와 강원도 충청도 제주까지 전부 다 합쳐도 경상도의 인구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이게 지금까지 숨겨진 한국 선거의 가장 큰 비밀이고 이게 한국선거에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상도의 인구가 엄청나게 많다! 라는 것입니다. 다른 지역들을 다 합쳐도 상대가 안될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자 이럼
"수도권과 서울이 있지 않느냐?" 라고 하시는데요.. 수도권이 어디있는데효?? 수도권이 뭔가효?
수도권은 지역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수도권은 그 지역에서 오래 살던 사람들이 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도권의 인구가 가장 많은것은 수도권과 서울의 기존 주민들이 죽어라 애들을 만들어서 늘여놓은게 아닙니다.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것입니다. 절반이상이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입니다.
그럼 과연 수도권내에 어느지역 출신 사람들이 가장 많을까요?

위에 적어놓은 인구수를 보세요. 상식적으로 따져봐도 경상도가 가장 많아야 정상일 것입니다.
물론 전라도도 많습니다. 왜냐면 전라도는 산업발전이 늦어져서 수도권으로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습니다. 근데 그건 7-80년대의 얘기입니다.
지금 현재 경상도의 부산은 10년째 인구가 줄고있고 대구도 최근 2년간 인구가 줄었습니다.
그나마 산업이 발전된 경상도의 대도시들에서 인구가 줄고 있습니다. 왜냐? 경상도의 경기가 나쁘거든요.
부산 신문에서 10년째 맨날 떠드는 소리가 "부산이 산업발전 최악이야~~~ 징징징" 이 소리입니다.
경상도가 이전에 잘나가던 때에 비하면 경기가 많이 나빠져서 실제로 많은 인구수가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럼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갔을까요??????
미국으로 가서 위대하신 휘트니 휴스턴님의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에 빠져 있답니다. ㅎㅎㅎㅎㅎ


인구수 분석에 이어 이제 득표율 분석을 하겠습니다.
(씨바~ 논문을 써라... 니가 휘트니에게 이정도의 열정을 쏟았으면 휘트니가 마약 안했어~~~ <====== 이게 뭥미? 나 정말 팬 맞어? ㅎㅎ)
2007년 대선에서 쥐새끼(이궁 오타 죄송)의 득표율을 살펴보면
총 1천1백만표중에서
서울 259만표
경기 258만표
인천 56만표입니다
인천은 빼죠. 인천은 서울/경기를 비롯한 수도권과는 개념이 좀 다르니..
서울과 경기에서만 520만표 득표했습니다.  총 유권자 1600만명중에서 520만표 득표입니다.

자 이제 가장 중요한 경상도 살펴보겠습니다.
부산 101만표
대구  87만표
경북 103만표
경남  83만표
울산  27만표
총 401만표입니다. 총 유권자 1천만에 401만표 득표입니다.

수도권과 경상도만 합쳐도 900만표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필요한 표수는 약 1천만표-11백만표입니다. 수도권과 경상도에서만 900만표가 나옵니다. 헐~~~
다른 지역은 거의 볼 필요도 없어요. 하지만 이해를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다른 지역 보겠습니다.
전라도는 제외하고 충청도와 강원도만 보겠습니다.

충청도
대전  24만표
충남  31만표
충북  29만표
강원도 37만표
다 합치면 121만표입니다. 충청도 전체와 강원도까지 합쳐도 쥐새끼(헉 오타!!)의 득표율은 부산시 하나에서 얻은 표수보다 쫌 더 많습니다.
(뭐 20만표가 쫌이라고 말하냐? 라고 따지시겠지만 지금 우리는 100만 1천만 단위를 논하고 있어요)

이제 쫌 감이 오시나요?
이럼 또 태클 들어오죠..
"그래봤자 경상도는 60%정도 아니냐? 저~기 전라도는 90%이상 민주당만 뽑는다" 라고 태클 들어옵니다.
자 그럼 이제 또 위대하신 휘트니 휴스턴님의 1988년 서울 올림픽 주제곡 one monent in time 라이브버젼을 들으면서(태클 들어오겠군.. ㅎㅎ) 분석을 해보도록 하지요.

전라도 투표수가 400만이라는건 위에 적었고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정동영씨는
광주 52만표
전남 76만표
전북 77만표
총 206만표(약간의 올림이 있습니다) 득표했습니다.
90%이상 지지해도 겨우 200만표입니다. 경상도는 60%만 지지해도 400만표입니다. 2배차이납니다.

이제 뭔가 좀 감이 오시는지요? 전라도에서 아무리 95% 이상 지지해도 인구수가 작기 때문에 선거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민주주의는 대가리수가 많은 쪽이 유리합니다. 그럼 한국에서 가장 대가리수가 많은 곳은? 바로 경상도입니다.
그리고 그 경상도에서 꾸준히 지지해주는 정당이 바로 한나라당입니다.


1997년 대선(김대중씨 당선)과 2007년 대선과의 차이점을 보면 재미있는게
1997년 imf당시에도 한나라당 후보인 이회창씨는 38%나 득표했습니다. 표수로만 따지면 980만표정도 약 1천만표입니다.
2007년 민주당 후보인 정동영씨는 26% 표수로 따지면 6백10만표 득표했습니다.
이 차이가 1천만표와 6백10만표.. 이 차이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거라고 보십니까?
1997년 한나라당은 경제를 말아먹었습니다. 2007년에 민주당도 역시 경제를 말아먹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근데 한나라당은 1천만표나 득표했고 민주당은 700만표도 못넘겼습니다.
경제를 말아먹은 한나라당에게 1천만표를 던지고 민주당에게 700만표를 던진 사람들은 왜 표를 던졌을까요?
정답은 간단합니다 [지역]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역주의의 투표는 그 지지를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이 imf를 가져왔어도 한나라당만 찍은것은 지역주의의 표입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에요. 지역표는 함부로 지지를 바꾸지 않기 때문입니다.(물론 민주당은 그렇게 경제를 말아먹지도 않았지만요. 그건 여기서 따지면 글이 넘 길어져효)
문제는 그 지역주의 성향의 표들이 엄청나게 격차가 나고 특히 한나라당에 많이 쏠려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 경상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경상도에서 한나라당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살펴본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지지층이 거의 바뀌지 않은 것입니다.
경상도내에서 한나라당에게 표를 던지는 인구수만 약 400만에서 500만입니다. 사실 2007년 대선에서는 적게 뽑은겁니다. 왜냐? 이명박이 bbk의혹때문에 경상도 내에서도 사기꾼으로 의심받았거든요.
(실제로 이런 이유로 이회창씨 찍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나오면 400만표 이상 던질겁니다. 왜냐면 이명박보다는 박근혜가 표를 던지기엔 좀 더 마음이 가볍겠지요.
(아마도 경상도의 인구감소와 투표율 하락때문에 400만표 턱걸이할수도 있군요. 그대신 수도권의 득표율이 높아지겠지요. 경상도에서 수도권으로 옮기는것 뿐이니)
근데 경상도에만 경상도 사람들이 사느냐? 아니지요.
수도권에도 많습니다. 수도권에만 약 20%이상 있을겁니다. 그 표수만해도 몇백만입니다.
그걸 다 합치면.. 경상도 출신으로 무조건 한나라당에 표를 던지는 수만 약 700만정도 됩니다. 네네네네네.. 순수 경상도 출신들의 표만 700만 정도로 전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표를 던지고 그리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개념없으신 다른 지역분들(역시 imf때에도 한나라당을 지지하신 용자님들이십니다)이 합쳐지면 1천만표이상 만들어집니다.
그럼 대통령 당선에 필요한 1천1백만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전라도는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왜냐면 인구수가 적기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봤듯이 전라도내에서 200만 그리고 수도권내의 전라도 사람들 다 합치고 다른 지역 전부 다 합쳐도 민주당 지지표 700만을 못만듭니다.
지난 대선에서 겨우 6백10만표 얻었습니다.
하지만 경상도는 경상도 사람들만으로도 700만을 가뿐히 만듭니다.

이런 상황이기에 한나라당이 아무리 정치를 못하고 아니 정치를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고의적으로 말아먹고 나라를 거덜내도 독도를 일본에 팔아먹어도.. 아니 한국을 일본에 팔아먹는다해도..
경상도에서 무조건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하기에 한나라당은 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상도에서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기에 한나라당이 점점 망쳐지는 것입니다.
한나라당 자체가 정상적인 정당이 아니지만 저렇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기에 국민을 좆도 아니게 보는 것입니다.
왜냐? 좆도 아니게 봐도 자기네들이 버림받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거든요. ㅎㅎㅎ 님들은 좆도 아닌 인간들입니다. 한나라당에게는 말이지요..
민주당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에게 버림받을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버림받았지요.
하지만 한나라당은 절대 경상도가 자신들을 버리지 않는다는걸 잘 알기에 개판인 것이지요.

이럼 또
"경상도 때문이 아니라 조중동 때문이다. 경상도에서 조중동을 많이 봐서 그렇다" 라고 하시겠지요.
웃기지 말라 그러세효~~
경상도에서는 조중동따위 안봅니다. 경상도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은 [부산일보]입니다. 부산일보는 부산 경남 내의 중도적인 신문(한국일보 정도)입니다.
조중동을 많이 보는것은 수도권이지 실제로 경상도에서는 조중동 잘 안봅니다. 지국 찾기도 힘듭니다. 한번 지역별 조중동 구독률 살펴보세요. 경상도는 수도권보다 훨씬 낮을겁니다.

조중동때문에 경상도가 저렇게 된게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경상도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경상도의 생각(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을 그대로 조중동이 받아서 쓴다] 이게 오히려 더 맞는 말입니다.
왜냐? 조중동은 잘 알거든요.
한국의 정치를 결정하는건 당연히 선거입니다. 촛불시위가 아닙니다.
선거에서 가장 유리한 정당은? 한나라당입니다. 왜냐?
한나라당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경상도가 가장 인구가 많고 그렇기에 정권창출에 가장 유리합니다.
그렇기에 경상도의 입맞에 맞는 기사를 써대는 것입니다.
조중동이 "좌빨~" "빨갱이" "전교조" "전라도" 어쩌고 씨부리는것들 그거 다 경상도에서 유래한겁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 그걸 그대로 써주시는 겁니다.
경상도에서는 조중동에 나오는 말보다 더 심한말도 서슴치않고 말합니다.다만 경상도인들끼리만 그러지요. (저도 애석하게도 그쪽 지역 사람이라서 그런 듣지 말아야 하는 소리를 너무나 많이 들었습니다)

조중동만 때려잡으면 한국정치가 제대로 돌아갈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조중동의 배후는 경상도입니다. 한나라당이 아닙니다.
경상도가 자신의 투표성향과 정치성향을 바꾸지 않는한 조중동은 영원할 것입니다.
왜냐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구수가 가장 많은 쪽에 붙는게 가장 유리하거든요.

이런 상황이기에 조중동은 언제나 정치에 대한 혐오를 조장합니다.
정치는 더러운것이고 누구를 뽑으나 다 똑같다~ 라는 식의 기사를 냅니다.
왜냐? 지역적인 성향의 표들은 절대 그 지지를 바꾸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기사가 나오던간에 상관없이 특정당만 뽑습니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정치를 혐오할수록 경상도가 지지하는 한나라당에게 유리합니다.
조중동은 그걸 잘 알아요. 경상도의 지지성향을 잘 알기에 계속 정치를 혐오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경상도인들이 imf를 몰고온 한나라당을 또 지지하는것을 정당화 할 수 있습니다. 다 똑같으니까 imf를 몰고온 정당을 또 뽑아도 문제가 안되는겁니다.

물론 인구만 따지면 수도권의 인구가 가장 많지만 수도권은 균질한 집단이 아닙니다.
실제로 수도권에서의 투표성향을 분석해보면 한나라당 지지와 민주당 지지가 비슷하게 나옵니다. 김대중씨가 정치활동을 할때 2000년 전에는 민주당 지지가 좀 더 많았지만 2000년 이후에는 한나라당 지지가 좀 더 많습니다. 이건 2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김대중씨의 영향력때문입니다.  김대중씨가 활동할때 지지자들이 많았지요. 그렇기에 김대중씨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나서는 민주당 지지에 소극적인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수도권내의 경상도 인구의 증가입니다.
위에 언급한적 있지만 경상도의 경기가 90년대 이후부터 좋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인구가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 인구가 과연 어디로 갈까요?
당연히 위대하신 휘트니 휴스턴님을 쫓아서 미국으로 갔답니다. 룰루랄루~~~

이렇듯 수도권 자체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거의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의 다른 지역들은 다 합쳐도 경상도의 인구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한나라당이 유리한 것입니다.




이렇게 길게 적은 글의 결론은..
[역시 휘트니 휴스턴님은 위대하신 가수!! 라는 것입니다. ㅎㅎㅎ] <=== 이 부분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씨바 그 아줌마 마약에 꼴았잖아!!" 라고 속으로 욕하고 있을겁니다. (나 정말 팬맞어? ㅋㅋ)

2012년 대선에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한나라당이 많은표를 차지할 것이고 그렇기에 박근혜씨가 제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입니다.
이유는 위에 길게 적었습니다.

이럼.. 또..
이명박이 경제를 살리지 못할 것이고 물가도 많이 오를것이고 서민들 살기 힘들어서 한나라당을 많이 떠날것이다. 쇠고기문제만 해도 그렇지 않느냐?
그리고 박근혜는 여자이고 보수적인 대구나 경상도에서 여자를 대통령으로 뽑을리없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낮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하나 다 반박해드릴수 있습니다만 글이 넘 길어집니다. 간단하게 반박하죠.
1997년 imf당시에도 한나라당 지지자들 특히 경상도는 이회창씨에게 38%이상 표를 줬고 사실 50%가까이 표를 줄수도 있었는데 이인제가 중간에 400만표를 깎아먹어서 겨우 38% 900만표 이상 득표했습니다.
다시 말하지요. 한국 정치는 무조건 지역! 입니다. 경제따위 중요하지않습니다. 여자냐? 아니냐? 중요하지 않습니다. 병역?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리? 중요하지않습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그딴거 안따집니다. 그딴거 따질려고 했으면 이미 1997년에 따졌겠죠.
아참 박근혜가 박정희 딸인것.. 역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한나라당 후보로 나가도 당선될겁니다. 저 경상도 출신이거든요(본적은 경북 영천임) 누가 나가도 됩니다. 70원 몽준이가 나가도 역시 당선됩니다.
정동영씨가 한나라당 후보로 나가도 당선됩니다. 이명박이 또 선거에 나가도 역시 당선됩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다시 대선에 나가도 역시 뽑아줍니다.
단 한사람 "김대중"씨만 아니면 됩니다. 그게 경상도의 정치 수준입니다.
그렇기에 박근혜가 2012년 대통령이 될거라고 예측하는 것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못한 얘기가 많지만 마지막 한마디만 더하겠습니다.
[위대하신 휘트니 휴스턴님께서 2008년 11월 정규 6집앨범으로 돌아오십니다!!!]  <==== 사실은 이 말을 하려고 이렇게 길게 글 쓴것입니다 :)



한나라당 지지자들.. 많은 수가 경상도사람들인 그 사람들이 2012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아주면서 뭐라고 말할까요?
그네들이 뭐라고 변명하면서 박근혜를 대통령을 만들어줄까요?
그건 1997년을 살펴보면 간단하게 알 수 있습니다.

1997년 imf전(imf는 11월에 시작)에도 경제상황은 나빴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씨와 한나라당 지지율은 10%대였습니다.
그래서 한나라당에서는 대선을 치루기 위해서 김영삼씨를 탈당시킵니다. 그리고 이회창씨 위주로 당을 개편하고 대선을 치룰려고 합니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10%대였지만 막상 대선의 지지율은 40%가까이.. 이회창씨가 병역비리가 터지기 전에는 최고 60%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대선 직전에 imf가 터졌지요.
그러자 사람들은 한나라당을 공격합니다.
"너네들이 여당이었고 이 상황에 책임이 있는거 아니냐!" 라고 말이지요.

근데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뭐라고 변명했는지 아시는지요? 아마도 기억 못하시거나 변명하는걸 거의 못들으셨을겁니다. 왜냐면 경상도인이 아니면 듣기 힘든 얘기이거든요.
그네들도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자신들이 어처구니가 없었겠지만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imf가 온건 김영삼이 잘못해서도 있지만 김대중이 맨날 김영삼 하는짓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어서 기아차도 제대로 처리 못하게 했고 김영삼이 실패하면 김대중에게 유리할것 같으니 나라가 망하건말건 김대중이 사사건건 방해해서 그렇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이없으시지요? 글 쓰는 저도 어이없지만 저런 얘기 경상도 내에서는 많이 했습니다.
저새끼들은(욕먹어도 싸요) 맨날 남 탓만 하는게 일입니다.
참고로 이때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국회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고 날치기도 가능했고 날치기도 많이 했습니다. 근데 어떻게 야당이 사사건건 딴지를 걸 수 있었다는 것인지.. 쩝..

자 그럼 2012년 박근혜를 뽑는 사람들은 뭐라고 변명할까요?
"이명박이 경제를 살릴려고 했는데 맨날 사상이 이상한 좌파와 노빠들이 촛불시위하고 대운하도 못하게 막고 이명박이 경제를 살리고 싶어도 좌파 빨갱이 촛불좀비들 그리고 전라도 애들이 맨날 데모하고 경찰 두들겨 패고 법도 안지키고 공권력에 개기고 길거리 막아서 장사 안되게 하고 부동산 폭락하고 이명박 망하라고 노래를 불러서 그렇다."  라고 변명하면서 당당하게 박근혜를 뽑을겁니다.
님들은 지금 인터넷상에서 좌파/빨갱이 어쩌고 씨부리는 인간들을 알바라고 말씀하시지만요. 그네들 알바 아닙니다.
그네들의 60%이상은 경상도 출신입니다. 경상도 출신의 한나라당만 뽑는 사람들입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는 제가 위에서 적어드렸습니다.
경상도에서는 한나라당이 지금 현재 과반을 훨씬 넘는 다수당임에도 나중에 2012년 대선때 역시나 자신의 잘못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남탓만 할겁니다. 좌파 빨갱이 전라도 어쩌고 씨부리면서
여전히 자기네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변명하고는..
사촌이 받은 푼돈 30억뿐 아니라, 이명박이 직접 수백억 아니 1천억 이상 돈을 받아 먹어도 경상도에서는 역시나 또 한나라당을 뽑을 것입니다.
그게 경상도의 정치 수준입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몇천억씩 삥땅을 쳤지만 여전히 전두환과 노태우의 후예들을 뽑아주고 있지요)
그리고 또 이렇게 변명할겁니다.
"김대중은 전두환으로부터 30억이나 받지 않았느냐?"  <===  30억 받은건 죽일놈이고 각각 수천억 챙긴 전두환과 노태우는 잘못이 없어서 맨날 지지하지요.
"저기 전라도를 봐라~ 또 90%이상 뽑아줬지 않느냐? 무슨 공산주의 빨갱이들이냐? 90% 지지를 하게.. 경상도는 아무런 잘못 없다!!"
그정도로 경상도 사람들은 무식하고 그래서 무섭습니다.

2012년 8월 9일 위대하신 휘트니 휴스턴님의 49번째 생일날 또다시 이 글을 올리도록 하지요. 이 글은 2012년을 위해서 미리 적어놓는 것입니다.
어쩜 이렇게 돈도 안되는 정치예언은 잘 맞추는지.. 차라리 주식이나 부동산을 잘 맞추면 이미 떼부자가 되어있을 것인디..  안타깝습니다. ㅎㅎㅎ
아 근데 2012년 8월이면 아직 대선전인데 어떻게 맞췄는지 아닌지 아냐구요? 그거야 쉽져.. 이미 여론조사로는 박근혜가 다른 후보들보다 지지율이 훨씬 더 앞서나가 있을테니까요 ^^




사족
꼭 이런글쓰면
"그래서 대안이 뭐냐? 대안도 내놓지 못할거면서 백날 떠들어봐야 뭐하느냐?" 라고 정곡을 콕콕콕 찌르시는 분들이 있습니당
그래서 한마디만 하지요.
경상도 패권주의에서 두번째로 피해 많이본 김대중씨 5년간 대통령 했습니다.
그리고 경상도 패권주의에서 가장 피해 많이본 노무현씨 역시 5년간 대통령 했습니다.
노무현씨 화려하죠. 1992년 총선 낙선(부산 동구) 1995년 부산시장 선거 탈락 1996년 총선 낙선(서울 종로. 참고로 이때 당선자가 쥐새끼임) 2000년 총선 낙선(부산 강서을)
10년간 경상도 지역주의에 조낸 피해본 두 사람이 한국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하나도 바뀐게 없습니다.
근데 10년간 두명의 절대 권력자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저보고 해결책을 내 놓으라구요?
제가 신인줄 아십니까? 헐~~~~~~

이런글을 쓰는 이유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이라는 말이 있듯이 적어도 당신들이 싸워야 하는 적의 실체가 뭔지 그걸 알아야 제대로 싸울 수 있는겁니다.
4년뒤에 박근혜가 대선주자 중에서 가장 앞서나간다. 근데 4년동안 한나라당은 경제를 말아먹고 비리로 얼룩졌다!
근데 왜 박근혜가 인기가 있는 것인가? 이걸 여러가지고 분석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대가리 나쁜 인간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 이딴 소리나 지껄이겠죠.
다시 말하지요. 한국 정치는 지역! 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지역에서 경상도의 인구는 다른 지역들 서울 경기를 제외한 충청도 전체 강원도 전체 전라도 전체 그리고 제주의 인구를 합친것보다 더 인구가 많고
그 많은 인구의 경상도 사람들이 뽑는 정당이 한나라당 밖에 없다는게 그게 바로 한국 정치의 핵심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이유도 다 설명할수 있지만 너무 글이 길어지니 생략하도록 하지요.
사실 위에 적은것 다 주석 달아서 세세하게 이유까지 다 설명할수 있는데 글 정말 길어질까봐 일일히 안쓴겁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사랑하는 위대하신 휘트니 휴스턴님의 2008년 45번째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휘트니 휴스턴 당신이 있었기에 16년간 내 젊은날이 행복했습니다. 힘들었을때나 외로웠을때나 괴로웠을때 당신의 노래를 들으면서 힘을 냈고
즐겁고 행복하고 기뻤던 날에는 당신의 노래를 들으면서 감사했습니다.
마약스캔들과 1996년 이후로 목상태가 안좋아져서 전성기때의 완벽한 노래는 이제 더 기대할수 없다는것은 잘 알지만
당신이 남겨준 그 음악만은 영원히 사랑하렵니다.
Happy Birthday To Whitney Houston
peace~~~~


결론은 한국정치는 지역...-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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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이승만 [李承晩]

1875(고종 12)∼1965. 독립운동가·정치가·대한민국 초대대통령.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승룡(承龍). 호는 우남(雩南). 황해도 평산출신. 경선(敬善)의 아들이다.

1894년(고종 31) 배재학당(培材學堂)에 입학, 이듬해 8월 배재학당의 영어교사가 되었다

같은해 10월 일제가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하자, 국모살해한 원수를 갚고 국왕을 구출하여 친일적인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시위운동을 벌이다가 지명수배를 당하였다.

1896 년 서재필(徐載弼)이 미국에서 돌아와 협성회(協成會)·독립협회 등을 조직하자, 이에 가담하여 개화·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서재필이 미국으로 추방당한 뒤 《협성회보》와 《매일신문》의 주필로 활약하고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독립사상 고취와 민중계몽에 앞장섰다.

1933년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하여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으며, 워싱턴·하와이 등지에서 항일투쟁과 외교활동을 계속하였다.

1945 년 광복을 맞아 이해 10월에 귀국,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무투표당선되어 초대국회의장에 선출되고, 내각책임제 헌법초안에 강력히 반대하여 대통령제로 헌법이 제정되도록 하여 그해 7월 초대대통령에 당선되어 대한민국정부 수립과 함께 취임하였다.

그뒤 강력한 반공·배일주의자로서 국내의 공산주의운동을 분쇄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강경외교를 견지하였다.

6·25 때에는 유엔군의 도움을 얻어 공산군을 격퇴하였고, 동란중 국토가 분단된 상태에서의 휴전협상에 강력히 반대하였으며, 1953년 6월 남한 각지에 수용되어 있던 반공 애국포로 2만7000여명을 유엔군의 양해 없이 단독으로 석방하였다.

같은해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자, 한미양국은 휴전 후에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다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하였다.

6·25로 정부가 부산에 피란해 있던 1951년 12월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하여 자유당을 창설하였으며, 다음해 정치파동을 일으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강압적으로 통과시키고 4년임기의 대통령직에 재선되었다.

1954년 국회는 이승만에게 대통령 3선금지를 면제해주는 사사오입(四捨五入)개헌을 통과시켰다.

1956년의 선거에서 민주당 대통령후보 신익희(申翼熙)가 투표 며칠 전에 사망하여 투표권자 56%의 지지를 얻어 세번째 당선되었다.

1960년 3·15정·부통령선거에서는 민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趙炳玉)이 선거 전에 사망하여 4선이 확실해졌으나 자유당의 부통령후보 이기붕(李起鵬)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대대적인 부정이 감행되었다.

이와같이 장기집권을 위하여 여러 차례 불법적인 개헌을 하고, 정적과 야당을 강압함으로써 정치발전에 지장을 주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융통성 없는 강경책으로 일관하였다.

결국 3·15부정선거와 자유당 독재로 4·19를 초래하여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자유당정권이 붕괴되어 그해 5월 하와이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죽었다. 유해는 하와이에서 국내로 옮겨와 가족장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재임 : 1948.7~1960.4
초대 이승만 1948 ~ 1952(간 선=국회에서 선출).

제 2 대;-이승만 1952 ~ 1956(직 선).

제 3 대;-이승만 1956 ~ 1960(직 선).

 

4대 윤보선 [尹潽善]

출생 : 1897년 8월 26일 충남 아산~1990.7.18

정치가. 4·19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붕괴된 후 대통령선거에

민주당후보로 입후보하여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의원내각제 실시로 장면을 내각수반(총리)에 임명.

그러나 혁명 후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적절히 제어하지 못함.

5·16군사정변으로 인하여 1962년 사임하고, 1963년 민정당을 창당하여 그 해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출마, 박정희와 겨루었으나 실패하였다.

제 4 대;-윤보선 재임 : 1960.8~1962.3 (간 선=국회에서 선출).

 

5~9대 박정희 [朴正熙] 

1917∼1979. 군인·정치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제5·6·7·8·9대 대통령. 본관은 고령(高靈 ; 고령박씨는 밀양박씨의 한 분파임). 호는 중수(中樹).

군부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18년5개월간을 집권하였다.

박정희는 1963년의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의 단일후보인 윤보선(尹潽善)을 근소한 표차로 누르고 당선됨으로써 제3공화국의 통치권자가 되었다.

한·일문제를 둘러싼 여야와 정부·국민간의 공방은 ‘6·3사태’ 등 한때 정국의 위기까지 불러일으켰으나 박정희정부는 반대의견을 물리치고 일을 성사시켜 결국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이 정식으로 조인되었다.

한· 일국교정상화에 따른 일본으로부터의 자금도입과 기타 차관 등을 통하여 제3공화국 후반부터는 급속도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 박정희는 고성장·수출드라이브·산업기지건설 등을 통하여 국정에 자신감을 가졌으며, 이와 함께 점차 독재성향을 띠어가기 시작하였다.

한일회담 타결, 월남파병 등으로 미국으로부터도 신임을 얻은 박정희는 강한 권력욕을 드러냈는데, 그 결과는 1968년 3선개헌으로 나타났다.

1972년 10월 박정희는 헌법효력의 일부 정지, 국회해산, 정당활동금지의 담화를 발표하고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정부는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하여 대통령을 선출하는 ‘유신헌법’을 제정,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한 후, 이 헌법에 따라 제8대대통령에 박정희를 선출하였다.

이로써 제4공화국이 시작되었다. 유신체제는 사실상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체제였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을 막강한 것으로 보장해줌으로써 박정희에게 독재체제의 길을 열어주었다.

독재적인 통치에 의해 박정희정부는 이 기간 기록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연간 10%를 넘나드는 고도성장이었고 국민소득도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빈부격차를 가속화시켰고, 황금만능사상으로 사회갈등과 함께 국민정신문화를 크게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한 편, 경제발전을 배경으로 국가안보면에서 빈틈없는 태세를 구축한 것은 박정희의 공으로 기록될만하다. 박정희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대화에 힘써 한동안 남북적십자회담·남북조절위원회회담 등을 열었고, 남북간 밀사교환을 이루었으나 대화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박정희는 1979년 유신체제에 항거하는 ‘부마사태(釜馬事態)’가 절정을 이루던 때, 10월 26일 궁정동 만찬석상에서 측근의 한 사람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金載圭)가 쏜 총탄을 맞고 죽었다. 그와 함께 유신체제도 끝났다.


재임 : 1963.12~1979.10


제 5 대;-박정희 1963 ~ 1967(직 선).

제 6 대;-박정희 1967 ~ 1971(직 선).

제 7 대;-박정희 1971 ~ 1972(직 선).

제 8 대;-박정희 1972 ~ 1978(간 선=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선출).

제 9 대;-박정희 1978 ~ 1979(간 선= 동일.

 

10대 최규하 [崔圭夏] 

출생 : 1919년 7월16일  강원도 원주~2006.10.22

정치가·외교관. 1951년 외무부 통상국장이 되면서 외교관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59년 외무부차관이 되었고 1967년에는 외무부장관에 발탁되었다.

1975년 국무총리에 기용되고 1979년 대통령권한대행을 거쳐 그해

제 10대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8개월만에 사임하였다.

제 10 대;-최규하 재임 : 1979.12~1980. 8 (간 선=동일).

 

11~12대 전두환 [全斗煥]

출생 : 1931년 1월 18일 경남 합천~

군인·정치가.

신군부가 12·12군사정변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쿠데타)

1981년 1월 창당된 민주정의당의 총재가 되어 2월 개정된 새헌법에 따라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재임기간 중 물가안정, 서울올림픽 유치, 무역흑자 등을 이루었으며,

재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하였으나,

군부독재라는 비판을 받았다.

재임 : 1980. 9~1988. 2

제 11 대;-전두환 1980 ~ 1981(간 선=동일).

제 12 대;-전두환 1981 ~ 1988(간 선=대통령 선거인단이 선출).

 

13대 노태우 [盧泰愚]

출생 : 1932년 12월 4일 대구 공산면 ~

군인·정치가. 내무부 장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실시. 제13대 대통령.

88서울올림픽 개최. 5공청문회 개최.

대통령 재직중 북방외교의 성공으로 러시아, 중국과의 국교를 수립하였다.

무궁화대훈장, 보국훈장 국선장, 을지무공훈장 등을 수상하였다.

제 13 대;-노태우 재임 : 1988.2~1993.2 (직 선).

 

14대 김영삼 [金泳三]

출생 : 1927년 12월 20일 경남 거제

한국의 정치가. 9선의원이었으며 1985년 김대중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직을 맡았고,1987년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여 총재가 되었다.

1990년 민주자유당을 창당하고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1992년 14대 대통령선거에 당선되어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 대통령을 부정부패 혐의로 구속.

집권 말기에 아들 김현철의 비자금 사건으로 곤욕.

점점 쓰러져가는 경제난을 바로 잡지 못해 결국 IMF 관리 요청.
제 14 대;-김영삼 재임 : 1993. 2~1998. 2 (직 선).

 

15대 김대중 [金大中]

출생 : 1926년 1월 6일 전남 신안 ~2009.8.18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정치가.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아태평화재단)을 조직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공동 1위에 선정되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성공으로 6.15공동성명 발표.

그 공로로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집권 말기에 아들 3명의 비리 의혹.
제 15 대;-김대중 재임 : 1998. 2~2003. 2 (직 선).

 

16대 노무현 [盧武鉉]

출생 : 1946년 8월 6일(음력) 경남 김해  ~2009.5.23

제16대 대통령.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19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에 입문한 뒤

5공비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하여 민주당 창당에 동참하였고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퇴임 후 고향인 봉하마을에 귀향하였으나 재임중 친인척 비리로 조사받다가

부엉이바위에서 투신, 서거하였다.
제 16 대;-노무현 재임 : 2003. 2 ~ 2008. 2 (직 선).

 

17대 이명박 [李明博]

출생 : 1941년 12월19일 일본 오사카 ~

제17대 대통령. 고려대학교 상과대 학생회장을 지냈으며,

현대건설에 입사해 단기간에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제14·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한나라당 후보로 2002년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되어

서울시장을 지냈으며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되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제 17 대;-이명박 재임 : 2008.2 ~ 2013. 2 (직 선).




18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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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유투브를 보다보면 안전모드로 인해 볼수없다는 글을 볼 수 있지요.


이 경우는 설정을 바꿔주기만 하면 볼 수 있습니다.


유투브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제일 밑으로 내립니다.


그럼


이렇게 안전모드를 사용/사용안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간단하지요?

삭제된 영상이 아닌 경우 바로 볼수있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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