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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이야기에 나오는 레고로 만들어 가지고 놀던 사진 ㅎ
앞줄에 있는 로봇만들었다고 좋아라 했었다.


동아전과 겁나게 그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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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어린 시절 난 참 행복한 아이였던 것 같다. 복에 겨웠지.

어린 시절을 보내던 나날, 내가 7살이 되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을 때, 현재까지 이어지는 터전, 정림동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처음 정림동에 왔을 때 난 마냥 기뻐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고 유치원에도 가고...무엇보다 가게가 컸다 ㅡ,.ㅡ
(당시 어린 눈으로 봤을 때 큰거지. 현실적으로 작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와서 새로이 윤영일이란 사귀게 되는 데 그게 또 나쁜 넘이었네-_-
어렸을 때 일화가 있다.

그와 나는 왠지 모르게 친했다. 항상 붙어 다니며 놀러다녔고, 무엇보다 나이가 같았다;;
어느날 그는 나와 있을 때 집주변에 잘 세워져있던 자전거 바퀴의 바람을 빼기 시작헀다.
뭐하냐 묻자 그는 바람빼놓고 도망가기 놀이라며 재미있어했다. 난 덜컥 겁이 나 어린나이에 도망가야 겠다고 생각했고,
그와 함께 그자리를 빠져나왔다.
몇일이 흘러 부모님이 내가 옆집자전거의 바람을 뺀걸 누가 봤다며 다그쳐왔다. 난 당당했다. 옆집 얘가 헀음 이런 일이 있었음 하고 꼬질렀다 ㅡ.ㅡ 그걸 듣자 부모님은 다시는 그 아이와 놀지 말라고만 하고 얘기를 안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넘이 날 꼬질렀단다...;; 봤다는 사람은 그니까 그 친구였다는 이야기고, 그집어머니가 우리 어머니에게 따졌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 일 이후 나드리집이랑 우리집이랑은 원만하게 생활하진 못한것으로 알고 있다.

약간의 여담일까. 누구나 하는 생일 파티. 우리집은 한번도 내가 기억하는 생일파티를 한적 없을 정도로 빨리 없어졌다. 주범은 형의 친구. 당시 형의 생일 파티에 초대한 친구중 한명이 우리집의 돈을 훔쳤다는 거고 그 이후 우리집은 생일 파티가 없어졌다. 당시 어린 내가 기억하는 건 이것뿐이다.

암튼, 유치원가는 첫날은 나는 마냥 들떠있엇고, 부모님은 형을 한 번 보냈었으니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뭐 형이랑 같은 명화유치원이었고. (형은 한참전에 졸업했지만! ㅋ) 여유를 가지고 차를 놓쳐버려 아버지가 유치원까지 날 데려다 줬다 ㅡ,.ㅡ
뭐 당시 기억에 아버지는 유치원버스를 태우려고 준비는 잘 했었지만 이 버스가 그 버슨지 몰라서 놓쳐다는 거다.

유치원 생활때, 나는 마냥 부끄러운 아이였다. 무엇이 문제냐구? 낯을 가리는 것도 있는 데 여자란 동물이 있네...
역시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싶다. 7세가 되기전에도 여자랑 놀았었다는 데 그 기억은 전혀 없는 데 왜 이 당시는 여러가지로 부끄러운 아이였다는 기억은 있을 것일까.
뭐 그렇다고 해도 좋아했던 건 또래 7살짜리 얘기들이 아니구, 유치원 선생을 좋아했었다;; 기억에 남는 건 유치원선생이 유치원생 모두에게 오늘은 선생님 얼굴에 뽀뽀를 하고 집에 가자~! 란 테마를 진행하신적이 있는 데, 너무나 부끄러워 입도 못 갖다대구 코를 갖다댔다 ㅡ,.ㅡ 멍한 겅미...역시 어릴때는 연상의 여자가 좋은 것일까? (너무 연상이지만 ㅋ)


시간이 흘러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내가 살던 정림동에는 학교가 없는 관계로 옆동네인 복수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지.
난 언제나 항상 거의 혼자서 걸어다녔던 것 같다. 형이랑은 3년 차이가 나니  뭐 학교 시간이 많이 다르다는 거야.어쩔수 없었다.
1학년때 나는 우수한 성적의 아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공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요령도 나빴다. 교과서는 수업이 없어도 전 과목 다들고 다니는 게 당연한 거라고 믿고 있었다.
허나 왠지 모르게 성적은 우수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한테 칭찬을 받으며 살았던 기억이 있다. 허나 조금씩 삐뚤어져 가는 마음도 있었다. 형은 당시 속셈학원에 피아노학원에 뭐 별에 별거를 다 배우러 다녔었던 것 같다. 난 항상 자습이었다.....
당시 속셈학원에서 진행하던 스키여행에 나도 같이 따라가서 형과 놀았던 추억이 있다.
뭐 공부 할 마음도 없었고 놀고만 있던 기억이 있다.
멀리도 않은 거리를 매일 편도 한시간이 넘게 걸리던 기억이 있다. 뭐 어릴때니 속도가 느린 건 어쩔수 없지..

2학년으로 올라갈때쯤에 드디어 우리동네에도 초등학교가 생겨 갑작스럽게 이동이 되었다. 집이 정림초등학교에 가깝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오게된 정림초. 학년을 지내면서 꼭 한명씩 친한 얘를 만들고 거의 그하고만 놀았던 것같다. 2학년때 윤큰별 3학년때 박재민 4학년때 노승주 5학년때 정상화(이하 메바) 6학년때 수두두룩 ㅋ 4학년때까진 인간관계를 그렇게 깊게 쌓질 않았는 지 아니면 원래 저학년때는 그런건지 학년이 바뀌면 곧 바로 조낸 친했던 인간관계는 해체되었다. 그리고 만났을때는 [아 X학년때 친하던 얘]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되더라. 뭐 지금 생각해도 예전에 뭘 하고 놀았는 지 조차 기억도 안난다.
이 당시 형이랑은 항상 장남감을 가지고 놀았었다. 나의 메일딜러는 항상 여기였다.
당시 유행했던 다간 선가드 등등 학교앞 문방구에서 닥치고 사들였다. 형은 장난감 외에도 만화책을 그렇게 모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당시 유행했던 학종이로 학은 안 접고 장난감을 접었었다;;
레고로 다간을 만들었다고 좋아라 하고 당시 사진도 찍었을 정도 ㅎ
헌데 다 버리셨다. 부모님이 우리가 항상 그렇게 놀고 있었으니 안 좋게 보였겠지. 뭐 형제 둘이 다 성적이 떨어진 것도 한 몫 했을껄.
만화책이 집에서 없어지더니 장난감이 없어지고 한참을 슬퍼하며 이런 곳에 돈을 투자 안하는 게 낮다는 교훈을 얻었다.

4학년때 쯤에 비오는 친구랑 싸우고 맞고 들어온 날이 있었다.
음...쫌 않좋은 가정형편의 아이였는 데 소위 말하는 불량학생. 이름도 기억 안나는 데 이 친구랑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같이 다닌 적이 있었다. 공부를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4학년이 되어서 덧셈뺄셈을 못하는 주제에 컴퓨터를 배우러 다니는 아이였고 난 그를 따라 그의 학원에 살짝 살짝 동반을 한적이 몇번 있었다. 물론 거기 선생님이 안된다 했지만 당시 그의 막무가내는 통했다. 난 그와 함께 그의 컴퓨터 숙제를 돕거나 했다. 덧셈 뺄셈을 셈이 되도록 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컴퓨터로 입력을 하는 문제였는 데 내가 하는 일은 항상 덧셈 뺄셈을 해주는 일이었다. 입력은 그가 했다.
입력이 끝나면 게임을 하며 놀 수 있는 시간이 있어 난 그게 목적으로 따라 다녔다.
그러는 와중에 체육시간에 처음으로 뜀틀연습이 있는 날, 그는 뜀틀을 넘다가 팔이 부러졌다;;
결국 당시 내가 집도 가깝고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나에게 그를 돕도록 부탁했다.
그의 집까지 가게 되고 열심히 했었지만 거기서 문제가 발생되었다. 난 그가 아픈사람이기에 선생님이 부탁하기에 도와줬는 데 그는 그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버린듯하다.
팔이 원상복귀했는 데도 그는 내가 도와주길 원했었고 난 그걸 거절했다.
거기에서 그는 날 자신의 시다바리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고 개긴다고 생각한 모양으로 싸우게 되었는 데, 뭐 싸운적이라곤 한 번도 없는 데 맞고 들어왔지-_- 당연한 거 아님?
나중에 듣기에는 그 집에 위자료를 청구했다나 말았다나 뭐 정확한 정보는 없다.
결국 그 일이 있고 싸재교육은 지금껏 형만의 특권이라고 알고 있었는 데 나도 받게 되었다.
그게 합기도다.

할머니의 생일 잔치가 뭐 화려한게 있다고 난 평생 할머니 얼굴도 못 보고 살았었는 데 할머니 생신잔치에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데리고 간적이 있다. 난생처음보는 친척들. 인사를 시켜주는 데 뭐 누가 누군지 전혀 몰겠고ㅋ
난 당시 무시당한 기억 밖에 없다. 날 바라보는 눈도 차갑고 말을 걸어도 쌩까고 인사시켜줄께는 잘만 인사했었던 사람들이...결국 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었다.

어느쯔음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개명이 있었고, 우리 학교에서 급식을 취급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형은 안타깝게도 급식제도를 못 만났지만 나는 아슬아슬하게 먹었다.또, 아버지가 불법복제의 협의로 교도소에 한달정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어머니는 친척집에 갔다고 했지만, 학교에는 이미 우리 아버지가 잡혔다는 것이 신문에 났다고 다 퍼져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비디오대여점을 어머니에게 완전히 맡기다 시피하고 노래방을 개업한다.

이러한 당시에 5학년이 되어 메바를 만났는 데 이넘이 나랑 비슷한 점이 많았었다. 내가 형이랑 놀던 방식이랑 메바가 자신의 형이랑 놀던 방식이 거의 비슷하여 학교에서 같이 놀수가 있었다는 거지.
당시에 같이 다니던 녀석 한명을 꼬득여 항상 쉬는 시간이 되면 세명이서 게임을 하면서 놀았다.
또 이 당시에 난 오락실에 빠지게 되었고, 역시나 메바와 학교친구들과 오락실에서 살게 되었지.
초등생이 어디서 돈이 있나 모르겠지만 난 항상 부자였다. 우리집이 잘 산다는 것을 난 이쯔음에 알았다. 난 항상 부모님께 받은 용돈이 있었고 또 부족할때는 가게에서 몰래 가지고 나온적도 많았다.
내가 이대로 있으면 안좋은 일이 있으리라 생각을 하셨는 지 부모님은 우리집 옆집에 있던 오락실을 M&A하셨다. 벽을 헐고 오락실은 사라지고 비디오대여점이 커지는 순간이었지. 이후 나의 오락실 버릇은 줄어들었다....(없어졌다는 게 아냐 ㅋ)

이때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할머니가 죽기직전까지 계셨다는 큰고모댁에 가게된다. 대구다. 난 미국에 이민을 갔다는 큰아버지를 보게된다. 평생 처음이라지. 아버지는 남자중 둘째였다는 데. 그당시를 알수있게 해주는 큰아들과 그 외 떨거지라는 스펙의 차이인지. 아버지와 차이가 너무 났다.
난...이때 처음 아버지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ㅡㅡ;;
초등학교 5학년이 되도록 아버지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냈다는 게 어이가 없지. 암.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으니 난 대체 어떤 아이였던 거지 ㄷ
내가 친척들을 본 것은 이것이 마지막인데 정~말 안 좋은 기억밖에 없다.
물론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뭐 분위기 안 좋은 것은 알겠어. 난 할머니라곤 인생에 두번밖에 본적이 없으니 슬프지 않은 것도 당연한 거 아님?
헌데 왜들 그리 차가운 겨. 어린 나는 배가 고팠고 당시 친척이라 소개받은 사람들이 열심히 부엌에서 음식거리를 준비하고 있었을 때이다. 난 배가 고프다 사정을 했을 때 돌아온 말이...
[니 엄마한테 달라구해.] 아. 네. 이게 친척이구나. 난 당시 친구들이 하는 말 성지순례라는 것을 부러워 했었다. 설날에 친척집 한 번돌면 10만원 20만원은 기본이라고 하던. 허나 우리집안은 아니네?
그게 아버지의 장애와 어릴적 아버지가 형제분들에게 왕따를 당한 것이 이유가 있다하니 사람들 참 너무한 것 아님?? 난 그래서 친척이 싫다.

어찌됐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일상 생활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는 일을 낸다.
난 이 당시까지 어머니는 이산가족이라고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가족은 북에 살고 계시다고 알고 있었다. 허나 진실은 전 글에 쓴 바와 같이 남쪽에 다 살아 계셨다. 사실 이제와서 보면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을 만한 일이지 어머니는 57년생인데 가족이 북쪽에 있다는 것은 앞뒤 안맞는 이야기잖아?
어린 당시는 역사에 대해서도 모르고 당근빠따 그걸 연결시킬 머리는 없었다는 것ㅎ
암튼, 무슨 일이냐. 어머니의 가족을 찾아 준다. 원래 아버지의 프로포즈가 니 가족 내가 찾아줄께 였단다. 바로 찾아줬으면 좋았을지도 모르는 걸, 왜 이리 늙었을때 찾았담?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를 기다려서 돌아가신 다음 찾아줬다고 하는 데 왜 그럴필요가 있는 지 난 이해를 못하고 있다.
당시 생각방식인지 찾으면 어머니가 할머니를 이유로 이혼하려 할까봐 지레 겁먹었나.
아버지는 전글에 밝힌 친하게 지내던 경찰들에게 오랜만에 찾아가 다시 뇌물을 먹였다.
[개인정보를 넘겨라]
*어머니의 친척일 가능성이 있는 개인정보는 대략 4팀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4팀에게 편지를 띄웠다.
그중 하나가 맞아 떨어졌고 어머니는 가족을 찾게 된다. 난 어머니는 친척이 없다고 하던 것이 그동안 숨겨왔던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많이 들 우셨다. 아버지는 의기양양해 했다 약속을 지켰다는 게지
허나 여기서부터 반전이 있었을 줄은 당시 아버지는 생각도 못했다.

5학년때 처음으로 어머니 가족들에게 성지순례의 기쁨을 맞봤다. 당시 15만원정도 내 손에 들어왔던 기억이 있다. 결국 다 저금했고 고스란히 어머님이 가져가 버렸지만-_-
뭐 암튼 그렇게 6학년이 되었고 방학때는 어머님 친척집에서 살게 된다. 뭐 친척과의 교류라나.

사실 아버지 친척이랑도 한 번 있었다. 대구 큰고모댁에서 방학때 한달간 산 적 있었는 데
나 초딩인데 거긴 딸만 3인가 있었는 데 젤 어린 얘가 대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뭐냐구? 난 거기서 뭐하고 놀았는 지 기억이 안나.
하두 답답해서 말해가지고 형이랑 둘이 수영장 갔던 기억이 있는 데.

이쪽은 그게 비해 별 세상이었네. 나보다 두살위에 누나와 한두살 밑의 여동생?
게다가 동갑내기 여자얘도 외숙모쪽 친척이라고 왔네.
옆집사는 여자얘란 얘도 동갑내기네.어이쿠
난 여기서 섹스란 무엇인가 배웠다 -0-;; 나랑은 사돈의 팔촌이니 외숙모가 다리를 놔줄라구 했던 건 기억나는 데 차버렸지;;

큰이모댁은 대구큰고모댁과 마찬가지로 나이차이가 많이 있었다. 작은 형이 30대중반이었나?
그 형은 또 일이 있었으니 우리는 비디오대여점과 친하게 지내며 하루종일 비디오를 시청했었던
기억밖에 없다. 여기서 골드런을 다 봤었지. 비디오 몇개가 없어서 짜증냈던 기억도 있다 ㅋ

초등학교 시절은 대강 이게 다 인듯 싶다. 이어서 난 대전대신중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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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관계로 나의 집안과 어린 시절에 대해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데 써내려 가볼까 한다 ㅎ

*태어나기 이전*
뭐 물론 태어나기 이전부터 내가 아주 어린시절의 경우는 다 들은 이야기뿐이니 투명한 과거는 아니다.
직접 본게 아니니 뭐 믿을 수가 있어야지....<--난 이래서 하나님을 못 믿는 것 같아 ^^;
참고로 이 정보는 90%가 아버지의 기억일 껄..?

집안은 굉장한 크리스쳔이다 교회를 신봉하는 집안이란다. 게다가...할아버지는 또 굉장한 부자였다는 소문이다.
할아버지는 목수였다. 당시 안동에 있던 학교란 학교는 다 할아버지가 만들었단다. 믿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그런 집에서 태어나셨다. 불과 아장아장거릴 몇개월된 얘기때 소아마비에 걸리셨단다. 당시 의학기술로 충분히 고칠 수 있었다는 데, 물론 이제와서 사실 확인은 불가능하다.
암튼, 소아마비의 걸리신 아버지를 고치고 싶었던 할머니는....
기도하셨다. 주구장창 기도하셨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고쳐주신다. 천국으로 이끌어주신다. 결국....
믿음의 힘으로...소아마비를 안고 사는 사람이 되셨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불신하게된 계기다. 돈도 많은 집안에 태어났는 데 믿음의 힘으로 고치실려다 이렇게 되었다는 전설. 그렇다. 어릴적부터 아버지는 장애인이셨다.

요즘말로 왕따. 예전에는 없었을까? 아니다. 아버지가 산 증인이다. 1960년대에 아버지는 장애인이라는...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신 분이다. 친구들끼리의 왕따만이 있을까? 그당시는 아들딸 힘닿는 데까지 순풍순풍낳던 시절이다.
뭐가 말하고 싶냐구? 형제자매끼리도 왕따 있었단다...충격? 이게 현실이라는 거다.
왕따,이지메. 옛날에는 없었다? 아니다 있었다. 다른점은 요즘엔 언론이 활성화됬다는 거 뿐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힘든 어린 시절은 보내셨단다.

그리하여 당시 국민학교를 마치신 아버지는 취업전선에 뒤어들어 닥치고 일을 하기 시작한다. 돈은 할머니에게 다 드렸단다.
동생들 양육비로 쓰엿다는 소문이다. 정말 원통해하셨다.

그리고 적당한 나이에 어머니를 만나셨다. 어떻게 만나서 결혼했는 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_-
연애 결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부부싸움을 할 때 연애하던 장소나 시간이 두분의 기억이 다르기에 항상 크게 싸웠던 기억이 있다. 누가 옳은지 알게 뭐야..아니 그게 부부싸움을 할 정도로 큰 문제인가?? 내 개인적인 소견이다 ㅎ

어머니는 괴산사람이다. 어머니가 일곱살때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왜 돌아가셨는 지 물론 모른다ㅋ
7살때라는 것은 어머니는 국민학교도 안나온 사람이다.
당연, 돌아가셨으니 어머니를 부양해줄 부양가족이 사라진 것이다. 결론은 무었이냐...
어머니 친척들이 어머니형제자매를 뿜빠이 해서 나눠 키우게 되었단다.
헌데, 그 당시는 남존사상이 크게 자리잡았을 때이다. 우선적으로 남자형제들이 친척들에 갈리게 됬단다. 여성분들은 천대받던 시절이란다. 여자들중 나이순으로 윗부터 친척집으로 가기로 결정이 났다는 데............어머니는 여자중에 막내였다 -_-
형제자매가 다들 친척집으로 갔는 데 유일하게 어머니만이 여자중 막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집에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다. 고작 7살의 나이로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집안 살이를 해야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는 오싱을 보면서 자신과 겹친다고 우셨던 게 기억난다 ㅎ

그렇게 지내시던 와중에 어머니는 역시 남의 집에서 이렇게 사는 게 환멸을 느끼고 가출을 하게 된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거겠지? 헌데 또 그러한 집에 들어가고 또 가출하고 또 들어가고...
이름만 네번을 바꿨덴다. 그렇게 이름을 바꿨으니 나중에 친척들이 어머니를 찾으려고 해도 못 찾는 거지....-_-;;

그렇게 어머니는 가출과 더부살이를 반복하다가 커가면서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닥치고 기술직을 공부하여 여러가지 기술직에 종사하게 된다. 간병인 미용사등등..
어떠한 계기로 만나게 되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둘은 상처를 보듬아 안아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이 당시 아버지는 자신이 고졸이라고 어머니께 구라를 쳤었다 ㅡ.,ㅡ
아버지는 장애인이라는 것. 그리고 형제자매 좋은 학교나왔는 데 자신만이 국졸이라는 것에 상처를 가지고 있던 분이고 어머니는 친척이 없다는 것에 상처를 가지신 분이었다.

당시의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결혼이라 보는 시점이라 번듯한 집안의 자손인 아버지는 아무리 장애인인라고 해도 근본도 모르는 여자랑 어떻게 결혼을 하느냐 반대를 당했다.
허나 우리 아버지 고집은 하늘을 찌른다 막무가내다.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결혼은 크리스천집안 답게 교회에서 행해졌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1978년경이 아닌가 추정한다)
그렇게 우리집안에 들어오게 된 어머니는 근본도 없는 여자라 불리며 아버지식구들에게 천대당하기 시작한다. 불쌍하게도... 그렇게 몇년을 참고 참고 지내셨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가족계획을 가지고 돈이 없어 자식들 먹여살리지도 못하게 할빠엔 안 낳겠다 하고
어느정도 돈을 모은다음 얘들을 낳기로 결정한다. 그러한 와중에도 어머니는 결혼해서 왔는 데 얘를 못본다고 계속 천대받고 있었다. 3년정도 시간이 흘러 슬슬 얘를 낳기로 결심하고 잉태를 했는 데 병원에 갔더니 어라 병이 있네 ㅡ,.ㅡ
이런 왠일 그래서 낙태를 할 수 밖에 없었다구 한다. 자식은 또 낳으면 되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시면 끝이라는 아버지 지론에 그렇게 첫 아이가 하늘나라로 갔다.
어머니의 병을 고치려 노력하고 노력해서 결국 고치는 데 성공하고 슬슬 아이를 또 가져볼까 하고 가진 아이가 나의 형님이 되겠다.
헌데 뭥미 낳아보니 그 병이 유전됐네 ㅠㅠㅠㅠㅠ
돈이면 안되는 게 없다 병은 고쳤다.

자 이제 자식도 낳았고 하니 어머니가 천대받는 건 줄겠지 했는 데 시집살이는 여전했다. 뭐 당연하지 아무래도 고부간의 갈등이 우리사회에 문제가 될 정도로 큰데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스펙은 갈구기게 딱 적절하게 암것도 없지.. 갈굼당하던 현실을 직시한 아버지는 결국 어머니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결심하게 된다. 가족을 버렸지.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서울에 살던 본가를 버리고 대전으로 내려왔다. 모두에게 숨기고.
대전에서의 생활은 순탄한듯 보였다. 형을 기르며 나를 낳았다 ㅎ
구멍가게 슈퍼 오락실을 운영하며 돈을 벌었다.
약간 불법인 일도 많이 했었단다.
그 기억하실려나 옛날 다방같은 데 보면 100원인가 넣고 돌리면 오늘의 운세같은 거 나오고 하던거
뭐 운세재털이 운세자판기등등 요런건부터 시작해서 돈넣고 돈먹기등등...
당시의 경찰들에게는 뇌물을 찔러주면 눈 감아줬다. 지금도 그런가? ㄷㄷ
그리하여 아버지는 경찰들과 친하게 지내며 돈을 긁어모았다.
슬슬 얘들도 커가고....
모아서 모아서 손을 털고 시작한게 비디오대여점이다. 내가 기억을 하는 것은 여기서 부터 시작된다...


당시 도마동에 살았다.어릴적 아버지는 내느낌에 일주일에 한번정도 집에 오셨다. 뭐 내가 자기전에 출근해서 자고나서 들어왔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_- 그렇게 옆동네인 정림동에서 비디오대여점을 운영했었다. 형은 학교를 다녔고 난 혼자 집에서 내 몸만한 개와 함께 매일 빈둥거렸다. 난 학교를 다니던 형이 부러웠다 가끔 몰래 따라간적도 있던 기억이 있다. 한번은 형이 너무 부러운 나머지 형의 학용품중 하나 온도계를 가지고 몰래 놀았다. 아차차차차차차차차차차
어떻게 놀았는 지 온도계가 부서졌다 어린 마음에 나는 원래 있던 장소 고대로 냅두고 나몰라라했었다 ㅡ,.ㅡ
아학 당삼 어머니는 형에게 뭐라하고 형은 몰라몰라 했다ㅠ
..알리가 있나 내가 했는 데..
그런 어머니는 날 가리키며 저 작은 뭐가 관심이 있다구 이런 온도계같은 걸 만질 것같냐. 온도계는 유리도 된거니까 관리 제대로 안하면 이리된다구 관리를 제대로 안한 니가 잘 못한 걸 아직도 몰겠냐 이러면서 형을 사랑의 매로 다스렸다. 난 맞기 싫었다. 죄책감이란 이런 거구나 공부가 되었다.

난 개가 좋았다. 내 몸만한 개가 좋았다. 우리집 개는 온순하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온순한 우리집 개넘이 밥을 먹을 때 난 친구들과 함께 개넘을 건들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말했다. [물것같아 무서워] 그 말에 나는 한순간 영웅이 된듯이 말했다 [괜찮아 우리집 개는 안 물어 자,봐]
난 개에게 얼굴을 물렸다 ㅡ,.ㅡ
빰을 물린 건 기억하는 데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기억안난다. 아팠는 지 안 아팠는 지도 기억이 안난다-_-;;
하지만 저 상황과 대화내용이 기억속에 남아있다..
나중에 커서 이 개가 어떻게 되었는 지 궁금해서 아버지께 여쭤본적이 있다.
그날로 복날의 개가 되었다고 하더라.

어릴때 날 좋다고 따라다니던 동갑내기 동네옆집여자얘가 있었다고 한다.
사진까지 남아있는 데.. 난 안타깝게도 전혀 기억이 안난다ㅠ
사실 대학 막 들어가서 여자들 꽁무니 쫒아다닐때쯤에 이 여자의 존재가 지금 있었었으면 하고 망상&공상을 많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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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공사로 일이 커지게 된듯 하지만..

집. 그래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이 벌어 산거잖아 그러니까 그거 팔아서 생활비하신다면 하라 이거야 어머니께 반액은 줘야하는 건 생각도 안하시겠지?
다 자기혼자 열심히 일해서 산걸로 생각하겠지?

집 팔아 돈 마련해서 어디 셋방으로 갈려고? 어머니에게 있어서 그럼 더 좋을지도 몰라 달달이 20만원 나가는 게 없어지니...앞으로 십오년 더 일하시면 그 집 다시 사겠다

내가 애당초 고모랑 틀어지기 시작한게 이 20만원에서 문제가 된건데..
고모는 아버지의 최소생활비라는 명목으로 삼십만원을 요구했고 난 그 금액이 이해가 안갔음
그래서 그 내역을 말하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내시는 금액과 아버지가 내시는 금액 겹치기에 사실여부를 알아봤더니

어머니가 매달 약 20만에서 30만사이에 금액을 이미 지불하고 계셨던 거고
고모도 그걸 인정함
그럼 아버지가 말하는 최소생활비는 이미 지출되고 있으니 끝임 ㅎ
고모는 일이 잘 안되고 있음을 깨닫고 금액 책정이 애당초 잘못된거라며
어찌된건 아버지생활비를 요구.
현재는 자신과 아버지친구분들이 아버지 핸드폰비와 교통비 술값 담배값을 부담하고 있다고 함.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한다는 사람이 무슨 자기 동생한테 차비를 뜯냐?

대화를 하면 할수록 정보가 틀리다는 이유로 다시 제대로 알아볼것을 요청하고 현재 고모가 금액에 관하여 말한게 잘못됐다는 걸 인정했으니 어머니와 형에게 가서 사과하고 다시 이야기할것을 요청.

그러나 됐다 니들 형제는 왜 그러냐하며 돈 필요없다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음.

현재 아버지는 상당히 용돈을 필요로 할것으로 추정. 대부분 고모가 내고 있을 것으로 추정. 고모라는 봉이 있으니 형에게 꿀릴거 없는 거지.

암튼,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아버지가 일찍돌아가신다면 몰라도 그게 보이지 않는 다면 앞으로 얼마가 더 들어갈지 모르는 상황이라 집 팔고 그 돈 주고 쌩깔려는 게 어머니로 보임

허나 우리의 아버지 불굴의 고집
아마 흥청망청쓰던 빚쟁이들한테 털리던 돈은 금방 없어질 것으로 추정.
그리고 다시 가족을 찾겠지.
아버지는 예로부터 통이 컸음.
친구들 불러다가 술이나 사고 지낼것으로 예상

형은 현재 상황이 너무나 부조리하고 불합리하다고 판단.
당연하지 이게 다 자존심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거고 그게 우선시 되어버리면 사람은 가치판단력이 흐트러짐.
게다가 아버진 자칭 곧 죽을 사람이니
집 가지고 있어봤자 헛것이고 가족이 돈을 안준다니 원래 내꺼인 집을 팔겠다는 거지 그러니 돈 내놔라 아님 집 판다는 협박.

어떤 바보가 수도공사랑 백만원이 없다고 삼천만원짜리 집을 팔아? 돈 없으면 그냥 물 안쓰고 살지
게다가 집을 팔고나면 수도공사 안해도 되는 데 그 돈은 어디다 쓴다고 그래?

누수공사에 대해 찾아보면 집크기와 배관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
우리집같은 소형빌라의 경우는 25만-50만선이 적정가격이라고들 함
집 다 뜯어내고 배관공사 다 하는 데 130만원정도 든다고하는데 유명한 곳 이용하고 계약서 제대로 작성안하면 일년사이에 또 터져서 좇된다고들 하더군

다 양보해서 백만원 들여 집누수공사 하지만 이십년을 산 집이면 이제 슬슬 저런식으로 집이 고장나기 시작할 때라네
보통 집 샀던 가격정도로 공사비용 들기도 한다는 도시전설.

일본에 오면 내가 고생할거 생각해야한다고 했지만 당연 나도 보이지 내거 고생할거
나만 고생하나? 장인어른 장모님에 여친님까지 고생시키게 되는 건 명약관화.
하지만 나도 내가 피해보는거 알지만 이렇게 말한건 그나마 젤 괜찮은 선택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야
만약 일본에 올 경우 난 아버지께 돈 드릴 생각 없고 밥만 드릴것임.
반찬은 물론 김치도 없어 비싸거든
된장찌개라지만 건더기 하나 없는 된장밖에 안 들어간 그런 국이지
이게 내 식단이야 물론 아버지도 이 생활을 하셔야지
어쩌냐 돈이 없는 걸
싫다해도 일단 오면 한국 갈수도 없어
차비가 없는 데 어케가냐ㅋㅋㅋ

허나 이 선택의 좋은 점은 한국에 있는 가족이지.. 일단 아버지로 인한 스트레스는 제껴두어도 금전적으로 집이 비어
어머니는 매달 20만원 절약돼
게다가 세를 내어주면 매달 삼십만원은 수익이 생겨
도합 매달 오십만원이지..
이게 아버지가 한국에 있을 경우 쓰고 있는 안보이는 돈이여
그럴꺼면 차라리 일본보내고 그 돈 50만원을 나에게 부치라 하면 어때? 그래도 플러스마이너스제로의 영역.
아니 안부쳐도 빚갚는 속도는 아마 지금과는 차원이 다르게 빨라지겠지?
그럼 어때 결과적으로 저축금액까지 생기는 상황이 발생되겠지??

난 일본에서 물론 스트레스를 받겠지
게다가 저번에 말했을땐 나 홀몸이니 여기서 같이 살생각으로 말했지만 지금은 여친님이랑 신혼인데 원룸에 살고 있어
아버지 오신다면 최소한 방 두개 있는 곳으로 옮겨야 하고 물론 방세도 지금의 세배정도 더 들어.

그걸 다 감안해도 우리집 전체를 생각하자면 그나마 이게 젤 싸게 먹힌다 판단하는 거지. 스트레스는 물론 생각안한..,단순히 금전적으로만 생각한거야.

감수할수있냐고!? 물론 없지.
할수있다 없다가 아니고 이제 젤 나아보이니 총대 매는 거지 감수해야하는 거야
이런 마음가짐이야

이야기 들어보면 어머니도 형도 돈이 없어서 안주는 게 아니잖아
결국 돈은 있는 데 아버지의 무개념이 문제라 안주는 거잖아
일본에 오면 그 무개념..이 통하지않는..... 말도 안통하고 아무와도 연락도 안되는 상황이 만들어져
이상적이지.

그것뿐이야

카드결제 이상적인데?
고칠려면 잘 알아보고 고치세요 ㅎ

모질지 못하는 성격
뭐 그게 형이지만ㅋ

궁금한게 그럼 법적가족은 형이랑 아버지의 2인 가족이 되는 거임?
나랑 어머니는 빠진 거임? 어케되는거야
형이 어머니쪽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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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상황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몇군데 있지만 그건 제처두더라도..

내가 이 정보만을 보기엔 아버지는 생활비를 부치라는 고집이 안통하니 가족을 위협하고는 있는 것으로 사료됨
그리고 그 위협에 어머니는 넘어가는 듯
간단히 돈 없으니 집 팔겠다는 거잖아?

단순히 어머니는 이거나 먹고떨어져 하는 기분으로 집을 주겠다는 거고 팔아서 삼천만원나온다고 치면 아버진 그 돈을 죽을때까지의 생활비로 쓰겠다는 걸로 들림

그리고 자신은 곧 죽을꺼라고 말하고 있으니 흥청망청쓰는 건 불보듯 뻔함

어머니는 그 집 주면 자신에게 더이상 안오겠지 하는 착각을 하고 있지만 만약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집판돈 다 쓰면 어머니한테 가서 돈 내노라할것임
아버지에게 있어 어머니는 봉임

내 상황에서 말하자면 집을 팔던 말던 나랑은 상관없음 누누히 말하지만 난 일본에서 살 것임 집은 어차피 형꺼라 생각함

생각보다 빠르게 시기가 왔지만.. 집 형꺼로 명의이전했음?

아버지가 돈 달라고 나와도 지금의 난 아버지를 버릴것임 고모한테 가라고 할것임
그게 나에게 고모가 한 말이니까

일본으로 오는 건 난 안 막아
아직도 유효한 선택지라고 생각해도 되지만 어머니가 반대하면 문제가 어렵네


하지만 내가 형 상황이라면 무슨일이 있어도 집을 사수할듯
안되면 최소한 집을 팔아 돈을 마련. 돈은 아버지한테 안드림.
백만원으로 수도를 고쳐? 고쳐도 아버지한테 돈을 줄 필요는 없지. 요즘 은행으로 금액 입금하는 건 당연한 시대잖아?
무슨 수도가 백만원이나 들어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돈 달라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상황을 생각해보자
어머니에게 있어 집음 현재 애물단지여
집세와 전기세 가스등의 세금이 매달 20만원이 넘게 들어가고 있다고함
그걸 어머니는 대신 내고 있으니 오히려 집을 떨구면 생활이 윤택해지고 아버지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할듯

형은 수도가 터져서 그걸 고치기위한 백만원을 위해 삼천만원의 집을 파는 게 이해가 안됨

나는 수도가 어떻게 터지면 백만원이 드는 지 이해가 안됨 그럼 지금 물세 어케되고 있음? 줄줄 새고 있음?ㄷ


형은 아버지한테 뭘 말하고 있는 것임?
뭐가 130만이 들어?
집이 형 명의로 되면 일이 더 쉽네
형 말안들을 꺼면 나가라고 해야지

제 도움 필요없으시면 나가세요
집이 아버지껄로 생각하시나요?
그럼 경찰과 상의하세요



내 의견을 말하자면
어머니와 같다
그집에 어버지가 살고 있음으로 임하여 도대체 앞으로도 얼마가 더 들어갈지 몰라
백만원주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집을 그냥 줬뻐리든지

솔직히 최선은...집을 형이 가지고
말안들을꺼면



아버지를 집에서 내쫓음

이게 내가 생각하는 결론.
아버지도 이런 불효자를 길러냈으니 자식농사 정말 헛짓거리했네


아이폰에서 쓸려니 넘 힘들어
빨리 인터넷을 달아야지ㅠ
쓴글을 보면서 하기 힘드니 글 정리도 잘 안되있는 점 미안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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