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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어린 시절 난 참 행복한 아이였던 것 같다. 복에 겨웠지.

어린 시절을 보내던 나날, 내가 7살이 되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을 때, 현재까지 이어지는 터전, 정림동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처음 정림동에 왔을 때 난 마냥 기뻐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고 유치원에도 가고...무엇보다 가게가 컸다 ㅡ,.ㅡ
(당시 어린 눈으로 봤을 때 큰거지. 현실적으로 작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와서 새로이 윤영일이란 사귀게 되는 데 그게 또 나쁜 넘이었네-_-
어렸을 때 일화가 있다.

그와 나는 왠지 모르게 친했다. 항상 붙어 다니며 놀러다녔고, 무엇보다 나이가 같았다;;
어느날 그는 나와 있을 때 집주변에 잘 세워져있던 자전거 바퀴의 바람을 빼기 시작헀다.
뭐하냐 묻자 그는 바람빼놓고 도망가기 놀이라며 재미있어했다. 난 덜컥 겁이 나 어린나이에 도망가야 겠다고 생각했고,
그와 함께 그자리를 빠져나왔다.
몇일이 흘러 부모님이 내가 옆집자전거의 바람을 뺀걸 누가 봤다며 다그쳐왔다. 난 당당했다. 옆집 얘가 헀음 이런 일이 있었음 하고 꼬질렀다 ㅡ.ㅡ 그걸 듣자 부모님은 다시는 그 아이와 놀지 말라고만 하고 얘기를 안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넘이 날 꼬질렀단다...;; 봤다는 사람은 그니까 그 친구였다는 이야기고, 그집어머니가 우리 어머니에게 따졌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 일 이후 나드리집이랑 우리집이랑은 원만하게 생활하진 못한것으로 알고 있다.

약간의 여담일까. 누구나 하는 생일 파티. 우리집은 한번도 내가 기억하는 생일파티를 한적 없을 정도로 빨리 없어졌다. 주범은 형의 친구. 당시 형의 생일 파티에 초대한 친구중 한명이 우리집의 돈을 훔쳤다는 거고 그 이후 우리집은 생일 파티가 없어졌다. 당시 어린 내가 기억하는 건 이것뿐이다.

암튼, 유치원가는 첫날은 나는 마냥 들떠있엇고, 부모님은 형을 한 번 보냈었으니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뭐 형이랑 같은 명화유치원이었고. (형은 한참전에 졸업했지만! ㅋ) 여유를 가지고 차를 놓쳐버려 아버지가 유치원까지 날 데려다 줬다 ㅡ,.ㅡ
뭐 당시 기억에 아버지는 유치원버스를 태우려고 준비는 잘 했었지만 이 버스가 그 버슨지 몰라서 놓쳐다는 거다.

유치원 생활때, 나는 마냥 부끄러운 아이였다. 무엇이 문제냐구? 낯을 가리는 것도 있는 데 여자란 동물이 있네...
역시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싶다. 7세가 되기전에도 여자랑 놀았었다는 데 그 기억은 전혀 없는 데 왜 이 당시는 여러가지로 부끄러운 아이였다는 기억은 있을 것일까.
뭐 그렇다고 해도 좋아했던 건 또래 7살짜리 얘기들이 아니구, 유치원 선생을 좋아했었다;; 기억에 남는 건 유치원선생이 유치원생 모두에게 오늘은 선생님 얼굴에 뽀뽀를 하고 집에 가자~! 란 테마를 진행하신적이 있는 데, 너무나 부끄러워 입도 못 갖다대구 코를 갖다댔다 ㅡ,.ㅡ 멍한 겅미...역시 어릴때는 연상의 여자가 좋은 것일까? (너무 연상이지만 ㅋ)


시간이 흘러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내가 살던 정림동에는 학교가 없는 관계로 옆동네인 복수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지.
난 언제나 항상 거의 혼자서 걸어다녔던 것 같다. 형이랑은 3년 차이가 나니  뭐 학교 시간이 많이 다르다는 거야.어쩔수 없었다.
1학년때 나는 우수한 성적의 아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공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요령도 나빴다. 교과서는 수업이 없어도 전 과목 다들고 다니는 게 당연한 거라고 믿고 있었다.
허나 왠지 모르게 성적은 우수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님한테 칭찬을 받으며 살았던 기억이 있다. 허나 조금씩 삐뚤어져 가는 마음도 있었다. 형은 당시 속셈학원에 피아노학원에 뭐 별에 별거를 다 배우러 다녔었던 것 같다. 난 항상 자습이었다.....
당시 속셈학원에서 진행하던 스키여행에 나도 같이 따라가서 형과 놀았던 추억이 있다.
뭐 공부 할 마음도 없었고 놀고만 있던 기억이 있다.
멀리도 않은 거리를 매일 편도 한시간이 넘게 걸리던 기억이 있다. 뭐 어릴때니 속도가 느린 건 어쩔수 없지..

2학년으로 올라갈때쯤에 드디어 우리동네에도 초등학교가 생겨 갑작스럽게 이동이 되었다. 집이 정림초등학교에 가깝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오게된 정림초. 학년을 지내면서 꼭 한명씩 친한 얘를 만들고 거의 그하고만 놀았던 것같다. 2학년때 윤큰별 3학년때 박재민 4학년때 노승주 5학년때 정상화(이하 메바) 6학년때 수두두룩 ㅋ 4학년때까진 인간관계를 그렇게 깊게 쌓질 않았는 지 아니면 원래 저학년때는 그런건지 학년이 바뀌면 곧 바로 조낸 친했던 인간관계는 해체되었다. 그리고 만났을때는 [아 X학년때 친하던 얘]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되더라. 뭐 지금 생각해도 예전에 뭘 하고 놀았는 지 조차 기억도 안난다.
이 당시 형이랑은 항상 장남감을 가지고 놀았었다. 나의 메일딜러는 항상 여기였다.
당시 유행했던 다간 선가드 등등 학교앞 문방구에서 닥치고 사들였다. 형은 장난감 외에도 만화책을 그렇게 모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당시 유행했던 학종이로 학은 안 접고 장난감을 접었었다;;
레고로 다간을 만들었다고 좋아라 하고 당시 사진도 찍었을 정도 ㅎ
헌데 다 버리셨다. 부모님이 우리가 항상 그렇게 놀고 있었으니 안 좋게 보였겠지. 뭐 형제 둘이 다 성적이 떨어진 것도 한 몫 했을껄.
만화책이 집에서 없어지더니 장난감이 없어지고 한참을 슬퍼하며 이런 곳에 돈을 투자 안하는 게 낮다는 교훈을 얻었다.

4학년때 쯤에 비오는 친구랑 싸우고 맞고 들어온 날이 있었다.
음...쫌 않좋은 가정형편의 아이였는 데 소위 말하는 불량학생. 이름도 기억 안나는 데 이 친구랑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같이 다닌 적이 있었다. 공부를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4학년이 되어서 덧셈뺄셈을 못하는 주제에 컴퓨터를 배우러 다니는 아이였고 난 그를 따라 그의 학원에 살짝 살짝 동반을 한적이 몇번 있었다. 물론 거기 선생님이 안된다 했지만 당시 그의 막무가내는 통했다. 난 그와 함께 그의 컴퓨터 숙제를 돕거나 했다. 덧셈 뺄셈을 셈이 되도록 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컴퓨터로 입력을 하는 문제였는 데 내가 하는 일은 항상 덧셈 뺄셈을 해주는 일이었다. 입력은 그가 했다.
입력이 끝나면 게임을 하며 놀 수 있는 시간이 있어 난 그게 목적으로 따라 다녔다.
그러는 와중에 체육시간에 처음으로 뜀틀연습이 있는 날, 그는 뜀틀을 넘다가 팔이 부러졌다;;
결국 당시 내가 집도 가깝고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나에게 그를 돕도록 부탁했다.
그의 집까지 가게 되고 열심히 했었지만 거기서 문제가 발생되었다. 난 그가 아픈사람이기에 선생님이 부탁하기에 도와줬는 데 그는 그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버린듯하다.
팔이 원상복귀했는 데도 그는 내가 도와주길 원했었고 난 그걸 거절했다.
거기에서 그는 날 자신의 시다바리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고 개긴다고 생각한 모양으로 싸우게 되었는 데, 뭐 싸운적이라곤 한 번도 없는 데 맞고 들어왔지-_- 당연한 거 아님?
나중에 듣기에는 그 집에 위자료를 청구했다나 말았다나 뭐 정확한 정보는 없다.
결국 그 일이 있고 싸재교육은 지금껏 형만의 특권이라고 알고 있었는 데 나도 받게 되었다.
그게 합기도다.

할머니의 생일 잔치가 뭐 화려한게 있다고 난 평생 할머니 얼굴도 못 보고 살았었는 데 할머니 생신잔치에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데리고 간적이 있다. 난생처음보는 친척들. 인사를 시켜주는 데 뭐 누가 누군지 전혀 몰겠고ㅋ
난 당시 무시당한 기억 밖에 없다. 날 바라보는 눈도 차갑고 말을 걸어도 쌩까고 인사시켜줄께는 잘만 인사했었던 사람들이...결국 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었다.

어느쯔음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개명이 있었고, 우리 학교에서 급식을 취급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형은 안타깝게도 급식제도를 못 만났지만 나는 아슬아슬하게 먹었다.또, 아버지가 불법복제의 협의로 교도소에 한달정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어머니는 친척집에 갔다고 했지만, 학교에는 이미 우리 아버지가 잡혔다는 것이 신문에 났다고 다 퍼져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비디오대여점을 어머니에게 완전히 맡기다 시피하고 노래방을 개업한다.

이러한 당시에 5학년이 되어 메바를 만났는 데 이넘이 나랑 비슷한 점이 많았었다. 내가 형이랑 놀던 방식이랑 메바가 자신의 형이랑 놀던 방식이 거의 비슷하여 학교에서 같이 놀수가 있었다는 거지.
당시에 같이 다니던 녀석 한명을 꼬득여 항상 쉬는 시간이 되면 세명이서 게임을 하면서 놀았다.
또 이 당시에 난 오락실에 빠지게 되었고, 역시나 메바와 학교친구들과 오락실에서 살게 되었지.
초등생이 어디서 돈이 있나 모르겠지만 난 항상 부자였다. 우리집이 잘 산다는 것을 난 이쯔음에 알았다. 난 항상 부모님께 받은 용돈이 있었고 또 부족할때는 가게에서 몰래 가지고 나온적도 많았다.
내가 이대로 있으면 안좋은 일이 있으리라 생각을 하셨는 지 부모님은 우리집 옆집에 있던 오락실을 M&A하셨다. 벽을 헐고 오락실은 사라지고 비디오대여점이 커지는 순간이었지. 이후 나의 오락실 버릇은 줄어들었다....(없어졌다는 게 아냐 ㅋ)

이때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할머니가 죽기직전까지 계셨다는 큰고모댁에 가게된다. 대구다. 난 미국에 이민을 갔다는 큰아버지를 보게된다. 평생 처음이라지. 아버지는 남자중 둘째였다는 데. 그당시를 알수있게 해주는 큰아들과 그 외 떨거지라는 스펙의 차이인지. 아버지와 차이가 너무 났다.
난...이때 처음 아버지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ㅡㅡ;;
초등학교 5학년이 되도록 아버지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냈다는 게 어이가 없지. 암.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으니 난 대체 어떤 아이였던 거지 ㄷ
내가 친척들을 본 것은 이것이 마지막인데 정~말 안 좋은 기억밖에 없다.
물론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뭐 분위기 안 좋은 것은 알겠어. 난 할머니라곤 인생에 두번밖에 본적이 없으니 슬프지 않은 것도 당연한 거 아님?
헌데 왜들 그리 차가운 겨. 어린 나는 배가 고팠고 당시 친척이라 소개받은 사람들이 열심히 부엌에서 음식거리를 준비하고 있었을 때이다. 난 배가 고프다 사정을 했을 때 돌아온 말이...
[니 엄마한테 달라구해.] 아. 네. 이게 친척이구나. 난 당시 친구들이 하는 말 성지순례라는 것을 부러워 했었다. 설날에 친척집 한 번돌면 10만원 20만원은 기본이라고 하던. 허나 우리집안은 아니네?
그게 아버지의 장애와 어릴적 아버지가 형제분들에게 왕따를 당한 것이 이유가 있다하니 사람들 참 너무한 것 아님?? 난 그래서 친척이 싫다.

어찌됐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일상 생활로 돌아갔을 때 아버지는 일을 낸다.
난 이 당시까지 어머니는 이산가족이라고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가족은 북에 살고 계시다고 알고 있었다. 허나 진실은 전 글에 쓴 바와 같이 남쪽에 다 살아 계셨다. 사실 이제와서 보면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을 만한 일이지 어머니는 57년생인데 가족이 북쪽에 있다는 것은 앞뒤 안맞는 이야기잖아?
어린 당시는 역사에 대해서도 모르고 당근빠따 그걸 연결시킬 머리는 없었다는 것ㅎ
암튼, 무슨 일이냐. 어머니의 가족을 찾아 준다. 원래 아버지의 프로포즈가 니 가족 내가 찾아줄께 였단다. 바로 찾아줬으면 좋았을지도 모르는 걸, 왜 이리 늙었을때 찾았담?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를 기다려서 돌아가신 다음 찾아줬다고 하는 데 왜 그럴필요가 있는 지 난 이해를 못하고 있다.
당시 생각방식인지 찾으면 어머니가 할머니를 이유로 이혼하려 할까봐 지레 겁먹었나.
아버지는 전글에 밝힌 친하게 지내던 경찰들에게 오랜만에 찾아가 다시 뇌물을 먹였다.
[개인정보를 넘겨라]
*어머니의 친척일 가능성이 있는 개인정보는 대략 4팀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4팀에게 편지를 띄웠다.
그중 하나가 맞아 떨어졌고 어머니는 가족을 찾게 된다. 난 어머니는 친척이 없다고 하던 것이 그동안 숨겨왔던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많이 들 우셨다. 아버지는 의기양양해 했다 약속을 지켰다는 게지
허나 여기서부터 반전이 있었을 줄은 당시 아버지는 생각도 못했다.

5학년때 처음으로 어머니 가족들에게 성지순례의 기쁨을 맞봤다. 당시 15만원정도 내 손에 들어왔던 기억이 있다. 결국 다 저금했고 고스란히 어머님이 가져가 버렸지만-_-
뭐 암튼 그렇게 6학년이 되었고 방학때는 어머님 친척집에서 살게 된다. 뭐 친척과의 교류라나.

사실 아버지 친척이랑도 한 번 있었다. 대구 큰고모댁에서 방학때 한달간 산 적 있었는 데
나 초딩인데 거긴 딸만 3인가 있었는 데 젤 어린 얘가 대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뭐냐구? 난 거기서 뭐하고 놀았는 지 기억이 안나.
하두 답답해서 말해가지고 형이랑 둘이 수영장 갔던 기억이 있는 데.

이쪽은 그게 비해 별 세상이었네. 나보다 두살위에 누나와 한두살 밑의 여동생?
게다가 동갑내기 여자얘도 외숙모쪽 친척이라고 왔네.
옆집사는 여자얘란 얘도 동갑내기네.어이쿠
난 여기서 섹스란 무엇인가 배웠다 -0-;; 나랑은 사돈의 팔촌이니 외숙모가 다리를 놔줄라구 했던 건 기억나는 데 차버렸지;;

큰이모댁은 대구큰고모댁과 마찬가지로 나이차이가 많이 있었다. 작은 형이 30대중반이었나?
그 형은 또 일이 있었으니 우리는 비디오대여점과 친하게 지내며 하루종일 비디오를 시청했었던
기억밖에 없다. 여기서 골드런을 다 봤었지. 비디오 몇개가 없어서 짜증냈던 기억도 있다 ㅋ

초등학교 시절은 대강 이게 다 인듯 싶다. 이어서 난 대전대신중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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