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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관계로 나의 집안과 어린 시절에 대해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데 써내려 가볼까 한다 ㅎ

*태어나기 이전*
뭐 물론 태어나기 이전부터 내가 아주 어린시절의 경우는 다 들은 이야기뿐이니 투명한 과거는 아니다.
직접 본게 아니니 뭐 믿을 수가 있어야지....<--난 이래서 하나님을 못 믿는 것 같아 ^^;
참고로 이 정보는 90%가 아버지의 기억일 껄..?

집안은 굉장한 크리스쳔이다 교회를 신봉하는 집안이란다. 게다가...할아버지는 또 굉장한 부자였다는 소문이다.
할아버지는 목수였다. 당시 안동에 있던 학교란 학교는 다 할아버지가 만들었단다. 믿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그런 집에서 태어나셨다. 불과 아장아장거릴 몇개월된 얘기때 소아마비에 걸리셨단다. 당시 의학기술로 충분히 고칠 수 있었다는 데, 물론 이제와서 사실 확인은 불가능하다.
암튼, 소아마비의 걸리신 아버지를 고치고 싶었던 할머니는....
기도하셨다. 주구장창 기도하셨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고쳐주신다. 천국으로 이끌어주신다. 결국....
믿음의 힘으로...소아마비를 안고 사는 사람이 되셨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불신하게된 계기다. 돈도 많은 집안에 태어났는 데 믿음의 힘으로 고치실려다 이렇게 되었다는 전설. 그렇다. 어릴적부터 아버지는 장애인이셨다.

요즘말로 왕따. 예전에는 없었을까? 아니다. 아버지가 산 증인이다. 1960년대에 아버지는 장애인이라는...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신 분이다. 친구들끼리의 왕따만이 있을까? 그당시는 아들딸 힘닿는 데까지 순풍순풍낳던 시절이다.
뭐가 말하고 싶냐구? 형제자매끼리도 왕따 있었단다...충격? 이게 현실이라는 거다.
왕따,이지메. 옛날에는 없었다? 아니다 있었다. 다른점은 요즘엔 언론이 활성화됬다는 거 뿐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힘든 어린 시절은 보내셨단다.

그리하여 당시 국민학교를 마치신 아버지는 취업전선에 뒤어들어 닥치고 일을 하기 시작한다. 돈은 할머니에게 다 드렸단다.
동생들 양육비로 쓰엿다는 소문이다. 정말 원통해하셨다.

그리고 적당한 나이에 어머니를 만나셨다. 어떻게 만나서 결혼했는 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_-
연애 결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부부싸움을 할 때 연애하던 장소나 시간이 두분의 기억이 다르기에 항상 크게 싸웠던 기억이 있다. 누가 옳은지 알게 뭐야..아니 그게 부부싸움을 할 정도로 큰 문제인가?? 내 개인적인 소견이다 ㅎ

어머니는 괴산사람이다. 어머니가 일곱살때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왜 돌아가셨는 지 물론 모른다ㅋ
7살때라는 것은 어머니는 국민학교도 안나온 사람이다.
당연, 돌아가셨으니 어머니를 부양해줄 부양가족이 사라진 것이다. 결론은 무었이냐...
어머니 친척들이 어머니형제자매를 뿜빠이 해서 나눠 키우게 되었단다.
헌데, 그 당시는 남존사상이 크게 자리잡았을 때이다. 우선적으로 남자형제들이 친척들에 갈리게 됬단다. 여성분들은 천대받던 시절이란다. 여자들중 나이순으로 윗부터 친척집으로 가기로 결정이 났다는 데............어머니는 여자중에 막내였다 -_-
형제자매가 다들 친척집으로 갔는 데 유일하게 어머니만이 여자중 막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집에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다. 고작 7살의 나이로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집안 살이를 해야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는 오싱을 보면서 자신과 겹친다고 우셨던 게 기억난다 ㅎ

그렇게 지내시던 와중에 어머니는 역시 남의 집에서 이렇게 사는 게 환멸을 느끼고 가출을 하게 된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거겠지? 헌데 또 그러한 집에 들어가고 또 가출하고 또 들어가고...
이름만 네번을 바꿨덴다. 그렇게 이름을 바꿨으니 나중에 친척들이 어머니를 찾으려고 해도 못 찾는 거지....-_-;;

그렇게 어머니는 가출과 더부살이를 반복하다가 커가면서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닥치고 기술직을 공부하여 여러가지 기술직에 종사하게 된다. 간병인 미용사등등..
어떠한 계기로 만나게 되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둘은 상처를 보듬아 안아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이 당시 아버지는 자신이 고졸이라고 어머니께 구라를 쳤었다 ㅡ.,ㅡ
아버지는 장애인이라는 것. 그리고 형제자매 좋은 학교나왔는 데 자신만이 국졸이라는 것에 상처를 가지고 있던 분이고 어머니는 친척이 없다는 것에 상처를 가지신 분이었다.

당시의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결혼이라 보는 시점이라 번듯한 집안의 자손인 아버지는 아무리 장애인인라고 해도 근본도 모르는 여자랑 어떻게 결혼을 하느냐 반대를 당했다.
허나 우리 아버지 고집은 하늘을 찌른다 막무가내다.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결혼은 크리스천집안 답게 교회에서 행해졌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1978년경이 아닌가 추정한다)
그렇게 우리집안에 들어오게 된 어머니는 근본도 없는 여자라 불리며 아버지식구들에게 천대당하기 시작한다. 불쌍하게도... 그렇게 몇년을 참고 참고 지내셨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가족계획을 가지고 돈이 없어 자식들 먹여살리지도 못하게 할빠엔 안 낳겠다 하고
어느정도 돈을 모은다음 얘들을 낳기로 결정한다. 그러한 와중에도 어머니는 결혼해서 왔는 데 얘를 못본다고 계속 천대받고 있었다. 3년정도 시간이 흘러 슬슬 얘를 낳기로 결심하고 잉태를 했는 데 병원에 갔더니 어라 병이 있네 ㅡ,.ㅡ
이런 왠일 그래서 낙태를 할 수 밖에 없었다구 한다. 자식은 또 낳으면 되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시면 끝이라는 아버지 지론에 그렇게 첫 아이가 하늘나라로 갔다.
어머니의 병을 고치려 노력하고 노력해서 결국 고치는 데 성공하고 슬슬 아이를 또 가져볼까 하고 가진 아이가 나의 형님이 되겠다.
헌데 뭥미 낳아보니 그 병이 유전됐네 ㅠㅠㅠㅠㅠ
돈이면 안되는 게 없다 병은 고쳤다.

자 이제 자식도 낳았고 하니 어머니가 천대받는 건 줄겠지 했는 데 시집살이는 여전했다. 뭐 당연하지 아무래도 고부간의 갈등이 우리사회에 문제가 될 정도로 큰데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스펙은 갈구기게 딱 적절하게 암것도 없지.. 갈굼당하던 현실을 직시한 아버지는 결국 어머니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결심하게 된다. 가족을 버렸지.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서울에 살던 본가를 버리고 대전으로 내려왔다. 모두에게 숨기고.
대전에서의 생활은 순탄한듯 보였다. 형을 기르며 나를 낳았다 ㅎ
구멍가게 슈퍼 오락실을 운영하며 돈을 벌었다.
약간 불법인 일도 많이 했었단다.
그 기억하실려나 옛날 다방같은 데 보면 100원인가 넣고 돌리면 오늘의 운세같은 거 나오고 하던거
뭐 운세재털이 운세자판기등등 요런건부터 시작해서 돈넣고 돈먹기등등...
당시의 경찰들에게는 뇌물을 찔러주면 눈 감아줬다. 지금도 그런가? ㄷㄷ
그리하여 아버지는 경찰들과 친하게 지내며 돈을 긁어모았다.
슬슬 얘들도 커가고....
모아서 모아서 손을 털고 시작한게 비디오대여점이다. 내가 기억을 하는 것은 여기서 부터 시작된다...


당시 도마동에 살았다.어릴적 아버지는 내느낌에 일주일에 한번정도 집에 오셨다. 뭐 내가 자기전에 출근해서 자고나서 들어왔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_- 그렇게 옆동네인 정림동에서 비디오대여점을 운영했었다. 형은 학교를 다녔고 난 혼자 집에서 내 몸만한 개와 함께 매일 빈둥거렸다. 난 학교를 다니던 형이 부러웠다 가끔 몰래 따라간적도 있던 기억이 있다. 한번은 형이 너무 부러운 나머지 형의 학용품중 하나 온도계를 가지고 몰래 놀았다. 아차차차차차차차차차차
어떻게 놀았는 지 온도계가 부서졌다 어린 마음에 나는 원래 있던 장소 고대로 냅두고 나몰라라했었다 ㅡ,.ㅡ
아학 당삼 어머니는 형에게 뭐라하고 형은 몰라몰라 했다ㅠ
..알리가 있나 내가 했는 데..
그런 어머니는 날 가리키며 저 작은 뭐가 관심이 있다구 이런 온도계같은 걸 만질 것같냐. 온도계는 유리도 된거니까 관리 제대로 안하면 이리된다구 관리를 제대로 안한 니가 잘 못한 걸 아직도 몰겠냐 이러면서 형을 사랑의 매로 다스렸다. 난 맞기 싫었다. 죄책감이란 이런 거구나 공부가 되었다.

난 개가 좋았다. 내 몸만한 개가 좋았다. 우리집 개는 온순하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온순한 우리집 개넘이 밥을 먹을 때 난 친구들과 함께 개넘을 건들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말했다. [물것같아 무서워] 그 말에 나는 한순간 영웅이 된듯이 말했다 [괜찮아 우리집 개는 안 물어 자,봐]
난 개에게 얼굴을 물렸다 ㅡ,.ㅡ
빰을 물린 건 기억하는 데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기억안난다. 아팠는 지 안 아팠는 지도 기억이 안난다-_-;;
하지만 저 상황과 대화내용이 기억속에 남아있다..
나중에 커서 이 개가 어떻게 되었는 지 궁금해서 아버지께 여쭤본적이 있다.
그날로 복날의 개가 되었다고 하더라.

어릴때 날 좋다고 따라다니던 동갑내기 동네옆집여자얘가 있었다고 한다.
사진까지 남아있는 데.. 난 안타깝게도 전혀 기억이 안난다ㅠ
사실 대학 막 들어가서 여자들 꽁무니 쫒아다닐때쯤에 이 여자의 존재가 지금 있었었으면 하고 망상&공상을 많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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