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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메가뱅크’의 유혹이 시작됐다. 우리금융지주 민영화가 본격 추진돼서다. 최근 정부는 우리금융을 자회사별로 분리해 팔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지만, 덩치가 가장 큰 우리은행은 국내 다른 금융지주가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초대형 은행, 메가뱅크가 탄생하는 것이다. 메가뱅크는 과연 필요한 것일까? 숱한 우려와 반대를 뚫고 등장할 수 있을까? 

1990년대말부터 은행 대형화 추진
MB정부 ‘민영화 기치’ 본격화
‘메가뱅크 만들라’ 특명 얘기 돌아
국회·노조 등 거센 반대 부딪혀 2001년 주택은행 합병한 국민은행
한때 세계 순위 60위권 올라
현재는 우리·신한에도 총자산 뒤져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규모 효과’ 등 메가뱅크 장점 역설
리스크 증대·모럴 해저드 우려
독과점으로 소매금융 축소될수도
■ 메가뱅크의 역사 메가뱅크는 1990년대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은행들이 합종연횡을 통해 몸집을 불렸고, 일본식 과장 어법이 더해져 ‘메가+뱅크’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규모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일본의 경우 미쓰비시 유에프제이(UFJ) 파이낸셜그룹, 미쓰이 스미모토, 미즈호 파이낸셜그룹이 3대 메가뱅크로 불리는데, 각각 자산이 2조 달러를 훌쩍 넘는다. 현재 세계적으로 자산 1조달러가 넘는 은행은 25곳에 이른다. 지난해 7월 발간된 <더뱅커>지를 보면, 2011년 말 기준 총자산 세계 1위 은행은 독일의 도이치뱅크로, 자산이 2조8000억달러에 달한다. 2위는 미쓰비시 유에프제이 파이낸셜그룹(2조6641억달러), 3위는 영국의 에이치에스비시(HSBC) 홀딩스(2조5555억달러)다. 국내 은행들은 80위권에 몰려 있다. 우리금융지주가 가장 높은 83위로, 자산 규모 2712억달러다. 신한금융지주(86위)와 케이비(KB)금융지주(88위)가 뒤를 잇는다. 자산은 각각 2498억, 2407억달러다. 합병 대상으로 거론되는 우리금융과 케이비금융이 합칠 경우 총자산 5119억달러로, 50위인 캐나다의 뱅크오브몬트리올(5027억달러)을 제치고 세계 50위를 차지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메가뱅크의 출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일본처럼 금융 공급자를 줄이고 은행을 대형화하는 방향으로 금융 구조조정을 추진했고, 2000년 이전 30여곳에 달하던 시중 은행은 현재 10여곳으로 줄었다. 메가뱅크 논의는 민영화 기치를 내건 이명박 정부 들어 본격화했다. 정권 출범 초기에는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우리·기업·산업 등 3곳을 묶어 메가뱅크로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다.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는 투자은행(IB)을 세운다는 구상이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없던 일이 됐다. 그러다 2010년 초,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를 계기로 메가뱅크가 다시 떠올랐다. 당시 아랍에미레이트 정부가 우리 정부에 ‘세계 50위권 이내 은행의 지급보증’을 요구했지만 이 기준에 맞는 국내 은행이 없었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인수·합병을 통해 메가뱅크를 만들라는 특명을 내렸다는 얘기가 나왔다. 핵심 ‘엠비(MB)맨’인 어윤대·강만수씨가 각각 케이비금융과 산은금융지주의 회장을 맡으면서, 우리금융 인수를 통한 메가뱅크 시나리오가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자산 300조원에 달하는 거대 은행을 인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산업자본은 은행 소유에 제한이 있고, 다른 금융지주도 법 규제를 넘지 못했다. 국회와 노조의 반대도 거셌다.



■ 메가뱅크는 존재했다? 국내에서 메가뱅크에 버금가는 은행이 출현한 적이 한 차례 있다. 바로 2001년 주택·국민이 합병해 출범한 신설 국민은행이다. 당시 선도 은행이라는 뜻으로 ‘리딩뱅크’라 불렸다. 2001년 말 국민은행의 총자산은 172조원으로 자산 측면에서 다른 은행을 압도했다. 2위 한빛은행(77조원·현 우리은행) 보다 자산이 2배 이상 많았고, 조흥(56조원), 신한은행(55조원)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세계 은행 순위도 60위권대로 올라갔다. 출범 전후 국민은행은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받았다. 국내 은행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 국외 시장에 진출해 외국은행과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과점 은행의 출현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10여년이 지난 현재 어떤 평가가 나올까? 우선 양적인 면에서 실패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국민은행은 총자산이 다른 은행의 2~3배가 넘는 압도적 규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현재 케이비금융은 우리금융은 물론 신한금융에도 총자산에서 밀리는 신세가 됐다. 국민은행은 합병 이후 예금 금리를 인하하고 수수료를 인상하는 조치를 취했다. 김정태 전 행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왜곡된 금리체계를 바꾸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막강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소비자 후생에 반하는 행보를 취한 것이다. 국외 진출에 대한 기대도 어긋났다. 케이비금융은 국내 4대 금융지주 가운데 전체 수익에서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 비율이 0.25%로 가장 낮다. 최근 사퇴한 어윤대 케이비금융지주 회장은 “13년 전 에스시(SC)은행은 자산 규모 등에서 우리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이제는 2.5배로 커졌고 세계적인 금융기관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제자리에 머물렀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한때 인수·합병으로 ‘스페셜 원’이었던 국민은행은 현재 ‘원 오브 뎀’이 되어 버렸다. ■ 메가뱅크의 긍정, 부정적 기능 메가뱅크는 그 자체로 ‘규모의 경제’ 효과를 낼 수 있다. 은행 영업을 위해서는 직원과 지점, 전산망과 신용평가 기술 등을 갖춰야 하는데, 은행이 커질수록 이런 요소에 드는 비용이 줄어든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은행의 크기에 따라 효율성 제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일정한 규모가 넘을 경우 서로 합치더라도 별 효과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인데, 일부 학자들은 이 기준을 자산 10조원 정도로 보고 있다. 국외 진출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아랍에미리트 원전과 같은 대형 사업의 금융 지원을 외국은행에 맡기지 않고 우리가 직접 실행할 수 있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금융이 실무를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인데, 세계 50위권 이내의 덩치 큰 은행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메가뱅크의 장점은 가변적이지만 단점은 확실해 보인다. 무엇보다 은행의 대형화로 인해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가 증대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한 보고서에서 “은행의 대형화로 개별 은행의 위험은 증가하기도 감소하기도 하지만, 금융 시스템 측면에서는 대형은행의 부실화는 곧바로 시스템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형화의 또 다른 폐해는 ‘대마불사’ 효과다. 부실이 생겨도 덩치가 너무 커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대마불사는 은행 경영진의 ‘모럴 헤저드’로 연결된다. 독과점이 심화되면서 소매금융과 중소기업 금융의 축소 현상도 우려된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 대출은 대체로 은행과 기업 간의 오랜 관계를 통해 이뤄지는데 은행이 커질수록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노조의 반대도 넘기 힘든 산이다. 우리금융과 케이비금융이 합칠 경우 약 750개 점포, 1만여명의 직원이 정리돼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우리금융과 케이비금융 노조는 반대 입장을 넘어 “인수·합병이 추진될 경우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일자리 창출이 대세인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이런 구조조정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조상제한서’. 1980~1990년대 떠돌던 국내 은행의 서열을 표시한 것이다. 각각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을 뜻한다. 20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이 은행들은 현재 1곳도 남아있지 않다. 1997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조흥은 신한에, 상업·한일은 우리로, 제일은 에스시(SC)에, 서울은 하나은행에 흡수되거나 합병됐다. 덩치가 큰 은행이, 알차고 시류 흐름을 잘 쫓는 은행에 먹힌 것이다. 메가뱅크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결과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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