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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역시나 다를까 꼴찌다 꼴찌다 꼴찌
그러나 생각과 달리 나와 같은 아이들도 꽤 있었는 지 40명중에 35등...
그렇다 내 밑에 5명있었다.-_-
전교등수는 더 좋았다 밑에 200명정도 있던 기억이 있다.

허나 반에서 꼴찌계열에 들어간건 생각대로 였고 혹시나 역시나 공부가 싫었고 하질 않았다.
고2가 될때 인문반이나 실업반이냐를 고를 수가 있었다.
주로 실업반을 가면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고 소위 취직이 잘되는 쪽 대학학과를 가게 된다.
인문반을 가면 주고 국어와 사회를 공부해서 소위 취직이 어려운 쪽 대학학과를 가게 된다.

난 고민할 가치도 없이 인문반을 택했다. 이때는 특별히 부모님은 나오지 않으셨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IMF터지고 부모님도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인문반에서의 좋은 점은 일본어였지.

(중간중간이야기가 빠지네..-_-)

내가 일본어를 처음 접한 건
중학교때다. 당시 고등하교를 진학한 형이 그림질을 한다고 할때 애니메이션 선진국인 일본의 문물을 많이 가져왔었다. 공부를 목적으로.
난 그걸 그냥 단순 취미 생활삼아 보게된 게 계기다. 일본어를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노래였다.그 애니메이션의 주제곡.
노래가 너무 좋았고, 난 단순히 따라부르게 된것이다.
단순히 좋아서... 노래의 한국어번역가서를 찾아 외우고 노래를 외우고.
그러나 아이우에오 쓸줄을 아직 모르고..
내 느낌은 놀고 있는 건데 이게 나중에 공부로 이어지더라.
고등학교에서 제 2외국어로 일본어와 독일어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당시 대세는 독일어였다.
왜냐구? 그때까진 아직 일본보단 독일이었거든
게다가 제2외국어로 점수딸라구 하는 것 뿐이니 영어가 되는 친구들은 당삼 독일어지
비슷한게 많으니 점수따기 쉽거든.
뭐 자기가 배우고 싶으니...라던지 앞으로 어느나라가 잘 될것 같으니...하는 마음은 없어.
오로지 점수. 이것이 고등학교의 방식이야.

간단하게 당시 나의 상태를 설명하자면.
2학년때 반선택시

공부잘하는 녀석들은 실업반
공부못하는 녀석들은 인문반 <- 나

인문반에서도
공부잘하는 녀석들은 독일어반
공부못하는 녀석들은 일본어반 <- 나

그래...대전대신고의 최하 클래스에 들어갔어
그렇게 들어가자 반에서 중간정도하는 아이로 성장했다-_-
난 그대로였는 데 주변아이들이 변했다고 밖에 말이 안되지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 난 자칭 일본어특기생으로 활약한다.
교내일본어대회에서 1등상을 탔으니 뭐 대신고에서 나보다 일본어 잘하는 녀석이 없었다는 거고
수능도 당당히 만점.

어떻게 공부했냐고? 공부안했어.
그냥 놀았는 데 되드라-_-;
사실 이렇게 했으면 난 서울대도 가능했을꺼야...-_-
그래 중학교때부터 그냥 애니메이션 주제곡이 좋아 외웠던 것이 고등학교2학년때 히라가나 아이우에오를 배우면서 특출하게 변했다.
딱 히라가나랑 가타가나만 외우니까 교과서에 있는 단어 다 아는 단어더라;;
평소 노래에서 나오던 구절이 왜 이런 방식으로 연결이 되는 지에 대해
선생님이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고. 남들은 문법이다 뭐다 하며 외우고 있을때

난 그냥 문장을 한번 읽어보는 것만으로 어느 문장이 맞는 문장이고 어느 문장이 틀린 문장인지가 보였다. 그래. 그냥 보였다.

하지만 당시엔 왜 맞는 지 틀렸는 지 설명하라 그러면 좀 어려워했지만
알다시피 객관식의 문제가 주류고. 학교시험도 어렵지 않잖아? 어차피 범위 다 알려주고 그 범위밖에 안나오는 데 단어는 다 알고 있겠다 문법도 쉽겠다
외울꺼라곤 한자밖에 없지.
근데 그런 주관식은 선생님이 힌트많이 주잖아??

그리고 당시 일본플스게임[유희왕]에 빠진적이 있다.
카드게임이지. 플스로 있었다. 난 이 화면을 프린트해가서 야자시간에 해석했다.
야자시간은 참 억지로 붙잡고 있지만 공부하긴 싫고 시간때우고 하던 시간.
나에겐 참 도움이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유일하게 이거 해석할때는 시간 잘갔다.
좋은 킬링타임이었지.
헌데 이게 또 나중에 도움이 되었네ㅎ 그냥 난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던 거였어.
마음은 놀았을 뿐인데.

 

중3때쯤에 IMF가 터졌다.
당시 내가 기억하던 것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노래방 건물에서 살인사건이 났다.
아버지가 3층인가 했는 데 2층에서 살인사건이 났다나?
결국 원래 보증금이나 물건값받고 나와야 할 수순인데 한푼도 못 받고 쫒겨나왔단다.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비디오대여점은 경영상황이 나빠졌다.
당시 한개 1500원~2000원에 빌려주던 비디오가 500원으로 거품가격이 없어지고 폭락했다.
협회의 결정은 따를수 밖에 없는 설정이었나?
암튼. 매출과 영업이익은 약 6분의1정도로 떨어졌다.
하루매출이 약30~50만원의 가게였는 데 약5만원으로 떨어졌다.
당시엔 어려서 잘 몰랐다 가게를 보고, 매출을 내눈으로 확인하고 있었지만
하루매출 5만원으로 떨어진것을 보고 진짜 장사 안되는 구나
생각은 했지만 사실 5만원씩이면 한달에 150만원.전기세 집세 내고보면 손에 남는 건 쥐꼬리.
하지만 있긴 있었다는 거지? 신작비디오도 사서 놔줘야 했지만 완전히 죽은 사업은 아니었는 데

문제는 어머니였다.노이로제다.
비디오대여점이 알다시피 손님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이다.접객은 필수다.
어머니는 그것에서 오는 노이로제로 더이상 비디오대여점을 운영할수 없는 상황에 빠지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 싸우셨다.
어머니입장에서 최소매출액 30만원이면 한달에 900만원이다.물론 전기세 집세등이 빠지면 영업이익이 어떨지 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매출액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
매달 매출액이 1000만원인 가게.
어머니는 이걸위해 버티신거지만 매출액이 줄었는 데 버티고 싶냐고? 아니올시다.
그럴꺼면 전부터 자기가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싶단다.

그게 정육점이다.외삼촌을 만나 눈독을 들이던 정육점.
어머니는 왜그런지 정말 하고 싶어 했다.
약 1년여 공방끝에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으로...집으로 데려온다고 말하며 따라나갔다.
형은 이쯔음하여 군대를 갔다.
난 집에 혼자남았다.고등학교2학년과 3학년은 그렇게 혼자 집에서 지냈다.
어머니는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20~30만원정도 부쳐주시던 기억이 있다.
사실 학비와 급식비가 큰 명목으로 군것질은 조금 할수있을 정도의 넉넉함도 있었다.
난....급식비를 내지 않고 학교에선 굶었다.
이 돈으로는 시디를 사서 구웠다;;;;;;;
2~3주에 한번씩 아버지가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냉장고에 넣어주셨고 난 그 음식을 먹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나의 고등학교는 생활은 형이 군대에서 돌아오면서 끝이 난다.


아 형이 궁금할 것 같은 건.
우리집 매출액일까?
저 돈이 어디에 갔는 지?ㅋㅋ

사실 아무리 발로 운영을 한다고 해도 알바생도 없이 어머니와 우리형제가 가게를 돌렸잖여?
근데 영업이익이 낮을 턱이 없지?
그 돈은 아버지가 개인적인 일에 쓰셨어
친구들 결혼한다 자식 낳았다 축하금을 기본 백만원씩 부쳤단다.
자기 잘된거 자랑하고 싶었겠지. 니들한테 이렇게 뿌릴 정도로 벌고 있다 자랑하고 싶었겠지

그리고 대박

아버지의 절친분이 암에 걸리렸대.
헌데 아버지 옛날이 어땠는 지 내 전글을 보면 유추할 수 있겠지만
친구들은 대부분 공장일같이 하던 때 잘 못 사는 사람들이 많어
돈없는 분들이지.
결국 돈없이 치료도 못 받고 돌아가실분을 보고 측은지심을 느끼신 건지


아버니는 그 친구분의 치료비를 전액 지급했다.

금액은 약 3억정도 된다더라.(이건 입소문이니 정확한 금액은 모름)

-_-
그 친구분의 자식은 우리아버지를 친아버지보듯한다던데..

참 통크신 분이여.존경스럽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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