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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


1985년생인 내가 알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은 오직 IMF로 정말 대한민국을 다 말아먹은 썩을 대통령이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박정희빠로...박정희가 그릇을 크게 만들어 놓았더니 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 다 퍼먹기만 하다가 결국 김영삼때 부도난 것이라 이야기하셨다. 어릴적 정치에 대한 관념은 부모를 통해 배우고, 나는 그것이 전부인지 알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을 때 나는 초등학교 ~ 중학교의 꼬꼬마 시절때이니, 더욱이 정치에 관심도 없었다.


내가 철이 들었을때부터 우리집은 소위 좀 산다는 잘나가는 집이었고, 그것이 피부에 와닿게 풍지박산이 된 것이 중학교때 IMF가 와서다.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김영삼 대통령 욕밖에 기억에 없다.



노태우때까지의 군사정권이 드디어 끝이 나고, 이제야 겨우 민주주의를 손에 넣어 처음으로 제대로 된 국민의 투표를 통해 당선되었다는 것이 김영삼 대통령인데, 이상한 놈 뽑아서 이 나라가 망했다는 어른들의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김영삼 대통령 또한 뽑힐만 하니까 뽑힌거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박정희 정권과 대립한 세력중에 제일 인기있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때문에 더더욱 대통령이 될수 있었다.

취임하고 나서 한일은 바로 군부정권 부정과 대한민국의 정통성 확립.


애당초 김영삼은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양쪽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당시 5.16 군사혁명이라 불리우던 것을 전부 5.16 군사정변. 즉, 쿠데타로 정의했다.

덕분에 보수진영의 지지를 잃었다.


또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했던 그는 당시 사회주의에 가까웠던 대한민국의 도로,철도등의 시설을 전부 민영화하였다.


당시 북한과는 달리, 남한은 정통성이 없었다. 희대의 기회주의자 이승만덕분에 어영부영 대한민국이 건설되었다는 것이 표현이 가히 맞다고 할수있겠다. 뭐...이승만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건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지만,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이 애매모호한 점이 많았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로 부터 찾고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부정되기도 하고 박정희를 거치면서 일제에 대항하여 이승만이 일궈놓은 부분들을 다 포기하기에 이르렀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승만 라인의 포기가 제일 안타까운 점인듯...)


실은 일본은 아직도 이걸로 현재 대한민국정부를 까고 있기도 하다.


김영삼은 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명시했다.

이때문에 보수들에게 이승만과 박정희를 건너뛰었다는 반발도 있기도 했다.


이와는 별개로


독도, 위안부나 전쟁보상금문제가 수면위에 떠오르면 일본은 항상 이 대한민국의 정통성.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하는 것은 한국 그 자신들이 맘대로 임시정부를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기 전 단계가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가 임시정부라 부르는 것은 대한민국의 실제 임시정부라고 볼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한국에서도 알려진 이야기인데, 당시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는 하나가 아니었다.

제일 유명하다고 한것이 [상해파]와 [시베리아파],[즉전즉결론파],[민력양성론파],[군력양성론파]라고 한다.

이중에 어디가 정통이라 하는 것 자체가 애매한 부분이 많기는 하다.


덕분에 일본이 변명한 구실만 만들어 준 셈이지만...


아무튼...


김영삼의 행보는 계속 된다.



예술가와 작가들의 반정부성 작품과 사회비판을 허용하였으며, 언론의 사회비판 역시 전면 허용하였다.



당시의 사회상으로 생각해보면 정말 엄청난 사회개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뿐아니다.

김영상을 인기스타의 반열에 올린것은 바로 [하나회]를 날려버린 일이다.


하나회란 전두환~노태우당시 정부와 군부 내 요직을 전부 다 해먹었던 조직이었다.

절대 건들수 없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던 조직을 김영삼이 대통령 취임 11일만에 이 하나회를 소탕했다.



게다가 김영삼을 최고의 평가와 더불어 최고의 인기를 불러모은것이 금융실명제의 실시이다.



사실 한참 이전부터 금융실명제의 필요성은 대두되어 있었지만, 아무도 실시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금융실명제의 실시 또한 김영상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는 데, 그는 제대로 자신의 공약을 지켰다고 말할수 있겠다.

누군가와는 다르게....


평범하게 법안을 발안하다가는 국회의원들이 검은돈의 유통을 못하게 만드는 이 금융실명제를 반대한다.

지하자금을 수면위로 올릴수 있는 이 금융실명제의 실시는 지금으로 치면 서민들을 위한 복지정책에 가까웠다.

가명,차명거래란 부정부패를 장려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저축의 장려를 위해 예금주의 비밀보장, 가명, 차명 혹은 무기명에 의한 금융 거래를 허용해왔다.

아무도 금융실명제를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고 어영부영지냈었는 데...


바로 이 김영삼이 기습작전을 감행했다.


1993년 8월 12일 대통령긴급명령인 긴급재정경제명령 제 16호를 발동하여 당일 오후 8시를 기해 《금융실명제 및 비밀보장을 위한 법률》을 전격적으로 실시하였다. 이는 혼란을 피하고 부작용을 단시일 내에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한다.

실시 후 한동안 경제적 혼란이 있었으나 유연한 통화 공급으로 우려되었던 유동성 과다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시장 유동성은 약 0.3 ~ 0.6%정도 증가하는 데 그쳤다. 대부분의 가명,무기명 자산들이 실명화되어 지하경제의 규모를 억제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정경유착등 각종 부정 부패 사건의 자금 추적에 큰 도움이 되었다. 금융실명제의 후속조치로서 금융소득종합과세 부과가 실시되었다.



북한과의 관계 또한 취임직후부터 통일을 향해 김일성과 대화를 요구하여 호응을 이끌어냈다.

당시가 6.25 전쟁 이후 첫 남북 전상 회담이라고 당시 어린 나도 이제 슬슬 통일이 되나....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을 정도로....

그러나 안타깝게도 1994년 7월.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모든 것은 무산되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때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



또한 일제시대의 잔재. 조선총독부의 철거.



일본이 대한민국을 통치했다는 산물이 바로 이 조선총독부.



이것도 문화재니 후손에 남겨야 한다는 부류들도 있지만, 이런 굴욕의 역사를 청산해야한다는 여론이 더 컸다.

김영삼은 바로 이 조선총독부의 철거도 지시했다.


추가로


일본의 역사 왜곡에 당당히 대항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고 호언하는 등 일본의 야욕에 당당한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초등학교로 개칭하고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쇠말뚝뽑기로 민족의 기틀을 세웠다.


이로 인해 일본과의 관계 또한 나빠진다.




여기까지가 정말 잘했다고 알려진 김영삼의 행보이다.



그렇기때문에 지금의 김영삼의 평가와는 정말 다른, 정말 인기있는 최고의 평가를 받는 대통령이었다.

지지율 또한 80퍼센트를 육박했다고 한다.


다만, 이런 김영삼의 행보는 뇌물을 좋아하는 부유층들에게는 상당히 위협적이어서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금융실명제가 문제라고 발을 잡았다.

안타까운점은 이 금융실명제 덕택에 김영삼은 정권 말기에 늪에 빠지게 된다.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이 뇌물을 받았다는 것.


노태우와 전두환의 비자금과 뇌물을 받은 것을 알려준 금융실명제.

이것이 자신의 아들 또한 금융실명제 덕분에 밝힐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국민사죄도 했다고...




더더욱 안타까운 점은, 자신의 임기때 만든 건물도 아닌 박정희때 만든 건물들이 부실공사로 인해 무너지는 일들이 있었다.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사고

이 모든 것이 김영삼때 이루어 졌다.

(김영삼은 뭔 죄냐...)



그리고 마지막 홈런으로 IMF



마지막까지 정치적으로 적을 너무 많이 만드는 바람에, 임년 말기에는 사방으로 포위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터진 IMF




설상가상으로 그간 일본을 적대시하는 발언을 많이 했던 대통령인지라 그로 인해 국민들의 인기는 얻었지만, 막상 일이 터지니 일본은 전혀 도와주질 않았다.


결국


IMF로 인해 그동안 잘했던 점을 다 날려먹고 깡통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받고 최악의 평가로 김대중 대통령에게 바톤을 넘겨주게 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 정책을 실시한 대통령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유독 평이 안좋은 대통령이라는 것이 이해가 안될 정도로...

아들 김현철비자금 사건, 성수대교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내 개인적으로는 모두 김영삼 탓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들 비자금 사건은 김영삼의 정책 덕분에 잡은것...)


IMF또한 김영삼 탓만 할 수 없는 것이, 그렇게 예상하기 쉬웠다면 당시 내노라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다 쓰러질리 없다고 생각한다.

국제적으로 예상하기 힘든것도 있었는 데, 지금 그것이 모두 김영삼 탓이 되어 너무나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조금 안타까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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