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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3DS에는 게임코인이라는 것이 있더군요.

처음엔 이게 뭐지? 하고 있다보니 저절로 쌓이는 것 같고..특별히 한것도 없는 데 늘어나있고 하길래 그냥 쓰기만 하고 있었는 데

게임기를 슬립상태로 내비두고 (전원을 끄지않은 상태)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즐기시면 저절도 쌓인다네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00걸음당 1개씩 쌓이고, 하루에 얻을 수 있는 코인은 10개가 한계라는 것.

코인은 최대 300개까지 쌓을 수 있습니다.


이 게임코인은 해당 게임기에서 플레이하는 모든 게임에 통합되어 사용하는 시스템이라는 것.

즉, 지금 하고있는 게임에서 게임코인을 다 쓰고 다른 게임에 들어가서 쓸려고 하면 없다는 것. (이게 더 어려운 설명인가-_-?)




걸어다니면 쌓인다고...그렇다고 손으로 흔들면 되지 않냐?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고.

물론 손으로 흔들어도 됩니다.

1000번 흔들 자신 있다면요-_-

그냥 오고다니시는 길에 슬립모드로 내비두시면 천걸음정도는 걷지 않을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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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에서 MP3를 추출해보자~!

추출법또한 간단합니다.

이 프로그램으로 동영상을 열어서 다른이름으로 저장 - MP3로 저장하시면 끝...

MP3이외에도 wav등 다른 확장자로도 저장이 가능합니다^^*


gwave558.exe




골드웨이브란 프로그램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주로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추출하여 이 프로그램으로 MP3로 변환시켜 이용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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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을 다운로드하고 싶다~~!

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아는 데요...

물론 저작권문제등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허나....프리웨어임으로 공짜인 프로그램으로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




정말 간단합니다.

다운로드 - 설치후

Video URL에 다운로드하고 싶은 동영상의 주소를 붙여넣기 후 다운로드 누르는 것만으로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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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고기에 대한 주저리


한단고기가 우리나라 역사란 말 많지만...내 생각에는 우리나라 역사라는 표현보다는

저 중에 우리나라가 있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

판게모니아 대륙에서부터의 이야기를 가지고 아시아가 전부 우리나라다 하는 생각은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ㅋ


뭐 그건 그렇다치고 


왜 이렇게 학계에서 인정을 못받냐하면 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며 사대주의가 싹트고..

이런 주체성을 가진 서적이 있으면 사대주의란 통용이 안되니 지도층은 이런 서적들을 전부 불태우게 유도한 게 문제.

그러나 이런 시대를 격으면서도 잘 숨겨오던 책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또 일본이 불태워버리네.

당연하지 이런 주체성이 있는 서적이 있으면 일본사대주의가 통용이 안되잖아.

그 상황에서도 잘 숨겨온 독립투사에게는 감사해야됨.

허나 그 넘이 그걸 그대로 공개했으면 그나마 학계에서도 인정받았을 지도 모르는 데

수정을 했다는 게 인정을 못 받는 가장 큰 이유..

이런 X독립투사-_-

당시 시대적 상황으론 그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걸로 인해 오는 후폭풍은 잔인하다는 거...ㅠ

그나마 있던 자료조차 전부 불살라 없애고 남은 게 저거 밖에 없는 데 그것도 독립투사가 울나라 좋은나라라는 취지로 가미하고 수정한 서적을 교과서로 만들 수 있냐? 우리 역사로 만들 수 있냐? 없지.


허나 실제로 러시아 몽골등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건국신화와 유사한...혹은 똑같은 신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환국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해. 이걸 해결하기 앞서서 그 뒤를 이어주는 북부여는 대체 어느나라이며

어디에 있었던 나라인지를 먼저 파악해야하지 않을까-_- 하는 생각도 들고..


이걸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권하는 건 사해성경이야.

사해성경을 조사해보면 난 이런 점들과 유사한 점들이 많다고 생각함.

말하자면 비슷한 신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예전에 같은 문화를 가지고 생활했을 것이다는 게지...

들리는 소문에 일본에는 예전 조선시대때 이런 고학서를 불태우기도 했지만 강탈한것도 있다고 하는 데

그렇다면 일본에 한단고기 시대의 자료가 있을 테고 그게 세상의 빛을 보면 학계에서도 인정할지도 모르지만.....

사해성경의 예를 보면 그렇다고해도 한단고기는 우리 역사서로 평생 인정받지 못한다는 거 ㅋㅋㅋ

절대 인정 안하는 사해성경과 절대 인정 못하는 한단고기.


사실 한반도를 신라가 통일한 게 젤 맘에 안드는 거지...

이런 사실들이 있으니까 중국이 자꾸 발해나 고구려를 자기역사로 편입시킬려고 하는 거고

동북공정이 왠 말이냐구-_-

백제는 일본꺼고 고구려는 중국꺼고 우리역사는 신라-_- 젝일

그나마 이성계가 국호를 조선으로 한게 이렇게 도움이 될지는 몰랐겠지.

당시엔 고조선이 당연히 우리나라라는 생각이 있었으니 나라이름을 조선으로 지은거 아니겠어?

쿠테타로 왕위찬탈했다고 안좋게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성계가 잘한건 국호를 조선으로 지은 겨...ㅋㅋ

당시엔 그걸 뒷받침할 서적이 많았겠지...그게 한이여..ㅠ

우리나라 국호는 지금 대한민국 즉 한국인 것조차 사실 그 계념으로 국호 정했다고 발표했으면 정말 좋았을 껄 백성의 나라라나 뭐라나-_- 그 시대적배경에는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건어때?

신라 망하고 왕건이 국호 고려로 정하면서 우린 고구려의 유지를 받드는 나라다~!

고려 망하고 이성계가 국호 조선으로 정하면서 우린 조선의 유지를 받드는 나라다~!

조선 망하고 국호 한국으로 만들면서 우린 환국의 유지를 받는 나라다~!

점점 역사속으로 빠져드는 생각안들어?


물론 한국과 환국의 한자가 다르다는 게 문제ㅋㅋㅋ 

할 짓 없어서 형 블로그보고 오랜만에 한단고기 생각나서

젝일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고


암튼...

내가 고딩때 당시 선생의 추천으로 한단고기를 처음 접했는 데

처음부분은 그럴듯하기에 오옷~이러면서 읽었는 데

어찌 중간에 예수조차 우리나라사람이다...하는 내용을 읽고 황당했던 것은 기억함 ㅋㅋㅋㅋ

그 책아직도 아버지가 점거하시는 우리집에 남아있을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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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플래인 노트 (Plain Knot)

· 가장 기본적인 넥타이 매는 방법으로 넥타이를 뒤로 돌려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려 감아 끼워 내린다.
· 매듭부에서 짧게 감기므로, 넥타이를 간단히 맬 때나 길게 맬 수 있어서 키가 큰 사람에게 권할 수 있다.
· 포인트 : 역삼각형 매듭 아래로 내려오는 큰 날의 시작부분을 자연스럽게 처리한다.

2.윈저 노트 (Windsor Knot)

· 넥타이를 단단하고 두껍게 착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넥타이를 뒤로하여 오른쪽 목끈에 돌려 감는다.
· 뒤로 돌리면서 왼쪽 목끈에 돌려 감아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려 끼워 내린다.
· 매듭 자체가 너무 커지면 품위가 떨어지므로 두꺼운 원단의 넥타이를 매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3하프 윈저 노트 (Half Windsor Knot)

· 일반적으로 가장 안정되게 넥타이를 착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 넥타이를 뒤로 돌리면서 왼쪽 목끈에 한 번 감아서 오른쪽으로 돌려 감아 끼워 내린다.
· 윈저 노트가 연출하는 정갈함이 좋긴 해도 매듭이 너무 크다고 생각될 경우에 적합한 매듭법이다.


3.크로스 노트 (Cross Knot)

· 격조 높고 중후한 분위기를 선호는 유럽 신사들이 애용하는 방법이다.
· 두꺼운 감의 타이는 피해야 하며, 무늬가 없는 부드러운 실크 타이가 자연스러운 매듭을 연출할 수 있다.
· 와이드 칼라 셔츠나 깃을 높이 세운 드레스 셔츠에 연출하면 그 중후함이 한껏 강조된다.


4.더블 노트 (Double Knot)

· 좁은 넥타이의 매듭에 플레인 노트보다 좀 더 큰 볼륨감을 주고 싶을 때나 부드럽고 힘이 없는 넥타이를 멋진 모양으로 묶고 싶을 때
시도해 볼만한 방법으로, 플레인 노트의 경우보다 대검을 한 번 더 돌려 두번째 매듭이 보이도록 매는 것이 포인트이다.
· 약간 좁은 듯한 롱칼라 셔츠에 잘 어울리며 개성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연출하고 싶을 때 적합한 매듭법이다.


5.블라인드 폴드 노트 (Blind fold Knot)

· 파티 등의 공식적인 석상에서 멋스럽게 연출하면 효과적인 매듭법이다.
· 스포티한 복장에 어울리지 않으며 비즈니스 수트와 잘 어울린다. 너무 넓은 타이는 이 방법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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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5월의 어느 봄날. 한 베드윈(Bedouin) 소년이 염소떼를 돌보다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염소를 찾고 있었다. 사해 서쪽 해안의 절벽 지대의 한 동굴 속에 돌멩이를 던졌다가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를 듣고는, 친구를 불러 동굴 속으로 들어 가 보았다. 입구는 좁았지만 굴은 들어갈수록 넓어졌다. 안은 길이 8.5 m, 너비 3 m, 높이가 3 m 나 되는 꽤 큰 굴이었다

그 곳의 한쪽 구석에는 깨진 질그릇 조각들 사이로 항아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높이가 60 ㎝ 가량되는 큰 항아리들이었다. 무하마드와 아메드는 조심조심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보았다. 뭔가 시커먼 덩어리들이 드러났고, 꺼내보니 얇은 양가죽을 꿰매서 이은 두루마리였다.

 

너비 44 ㎝에 길이 1 m ~ 8 m 나 되는 그 두루마리들에는 뭔지 모를 글자들이 깨알처럼 적혀 있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 보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골동품상에 가져가면 몇 푼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소년은 그것들을 꺼내 들고 동굴을 나왔다. 무하마드가 다섯 개, 아메드가 세 개.

두 소년은 베두윈 족장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갔다. 아메드는 골동상 한 군데에서 싼값으로 두루마리 세 개를 팔고 돌아갔다. 무하마드와 족장은 돈을 더 받을 욕심에 몇 군데를 더 기웃거렸다. 아주 귀한 것이라고 우기는 족장의 말에, 골동품 상인은 알아보고 나서 값을 매기겠다고 하였다. 족장과 무하마드는 그 상점에 두루마리 다섯 개를 맡기고 천막으로 돌아갔다.

 

골동상 주인은 그 길로 이스라엘의 성 마르코 수도원으로 사무엘 대사교를 찾아갔다. 한동안 두루마리를 살펴보던 대사교는 할 말을 잊은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의 눈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사교는 두루마리에 씌어진 글은 히브리 글일 것이라는 말과 함께 5파운드에 사겠다고 했다.

사무엘은 이 두루마리가 어쩌면 구약성서 원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구약은 유태인들의 가장 성스러운 경전이다. 이것은 야훼 하나님이 당신께서 선택한 민족 이스라엘과 맺은 약속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야훼의 계시를 담고 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구약은 그때까지도 그 원본이 발견되지 않고 있어서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었다. 사무엘의 가슴은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만약 히브리 글자로 씌어진 이 두루마리가 구약의 원본이라면?

 

그는 서둘러 예루살렘에 있는 아메리카 동방 연구소의 트레버 박사를 찾아갔다. 확대경으로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던 트레버는 어지러운지 잠시 일손을 놓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때까지 서기 1008년에 기록된 레닌그라드 사본(Leningrad Codex)이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의 사본이었는데 이 ‘사해 사본’은 그보다 무려 1100여년이나 앞선 서기 전 100년을 전후하여 기록된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트레버는 한참을 더 살핀 뒤 두루마리 가운데에서 구약성서의 이사야 서를 찾아냈다. 두 사람은 너무나 기뻐 어찌 할 바를 몰랐다

 

1949 년 중동전쟁이 끝나자 사해 지방은 요르단의 땅이 되었다. 그때 예루살렘에 있던 프랑스 신부 드 브오 (R. De Vaux)가 사해 일대 탐험에 나섰다. 브오 신부는 무하마드와 아메드, 그리고 그곳 베두윈들을 데리고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던 벼랑으로 갔다.

 

브오 신부는 그곳에 에세네 교파가 살았던 자취가 반드시 남아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런 엄청난 보물이 단 한 군데의 동굴에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귀중한 것일수록 만일을 대비하여 여기 저기 흩어 놓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과 연 브오 신부의 짐작은 틀림없었다. 탐험대는 동굴을 열 개나 더 찾아 내었고, 그 안에서는 두루마리가 수백 개나 쏟아져 나왔다. 탐험이 계속 될수록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바위 아래 깊은 땅속에는 옛 도시 흔적이 나타났던 것이다. 두 겹으로 된 성벽 안에는 저수지와 급수시설, 공동묘지가 있었다.

이곳이 요세프스를 비롯한 고대의 역사가들이 언급하고 있는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엣세네(Essene) 공동체의 수도원임이 밝혀진 것이다. 수도원은 원래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으며, 이 보다 높은 지점의 계곡에 댐을 건설하여 겨울철의 우기에 흘러내려 오는 빗물이 수로를 따라 수도원의 물 탱크에 자동적으로 저장되었다.

 

한 주간 중 평일에는 근처의 수많은 동굴 속에서 기거하던 엣세네 수도자들이 안식일에는 이곳으로 내려와 물로 씻는 정결 예식과 성서 연구를 하였고 공동의 식사를 위한 대형 식당과 주방, 성서를 베끼는 필사실 등이 이곳에 갖추어져 있었다.

 

또 키르바트 쿰란 (Khirbat Qumran)이라고 불리는 수도원 건물도 있었다. 수도원 방 안에는 나무로 만든 큰 책상과 걸상이 먼지에 덮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잉크병과 붓까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동안 발견된 문서들은 모두 그 방에서 쓰여졌음이 분명했다. 뒷날 실험하여 보니, 잉크병의 잉크와 두루마리 글씨의 잉크는 같다고 밝혀졌다.

 

브오 신부의 탐험으로 밝혀진 사해 동굴의 옛 유적에 얽힌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이 사해 바닷가를 거닐기 전에 이미 이곳 동굴들에서는 에세네 (Essenes)파로 불리는 한 무리가 종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들은 바리새파나 사두개파와 마찬가지로 유태교의 한 갈래였다. 이 무리는 '정의의 스승'(Teacher of Righteousness) 이라 불리는 사람이 이끌었으며,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율법과 제사 등 형식과 권위에 치우친데 비해, 신비주의와 금욕 생활을 내세웠다.

 

에세네파 신자들은 재산과 예배, 독서와 식사따위를 모두 함께 했다. 결혼은 거의 하지 않았고, 오로지 세상의 종말에  대비하여 하나님과 한 몸이 되기를 기도했다. 그들은 세상이 마지막에 이르면, 그들 '빛의 아들들'이 '어두움의 아들들'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꿈을 가지고 있었다. 200년 동안 에세네파 교인들은 금욕, 기도, 하나님의 말씀 읽기를 계속해 왔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리던 세상의 종말은 끝내 오지 않았다. 서기 68년이 되자 그들은 '어두움의 아들들' 이 아닌 로마군의 침략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무참히 짓밟고, 끝까지 항거하는 마사다 요새를 무너뜨린 뒤 유태인들을 수천년 방랑의 길로 내몰았다. 사해동굴의 문서들은 이때 로마 10군단을 피해 동굴 속에 감추어진 듯하다.

 

'쿰란 공동체'에서 찾아낸 두루마리들에서 '에스더서 (Esther)를 뺀 구약성서가 모두 들어있다. (에스더서에는 야훼 하나님에 대한 말이 한 마디도 없다.)  또 에세네파가 지켜야 할 '공동체 계율' 같은 기록들도 많이 있다.  이곳에서 나온 구약성서는 오늘날의 구약과 거의 다름이 없다.

 

단 '쿰란 공동체'를 처음 만든 '정의의 스승'이 누구인지는 아직까지 수수께끼다. 어떤 이는 그가 예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가 인류 전체의 구원을 바랐던 데 비해 에세네파는 자기들만의 구원을 빌었으므로, 정의의 스승을 예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 떤 사람은 '정의의 스승'은 세례 요한 일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꽤 설득력 있는 말이지만 뚜렷한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유대 광야에서 선교하던 세례 요한이나 근처의 요단 강에서 그로부터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했던 예수도 이 공동체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쿰란 주변 11개의 동굴에서는 발견된 사해 사본들 가운데 두루마리(scroll)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불과 10개 뿐이며 나머지는 수천 개의 조각들로 발굴되었다. 이들 중 약 1/4은 구약 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 주석, 신학서, 쿰란 공동체의 규율집 등으로써, 대부분 양피 가죽이나 파피루스 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 놓은 것들이다.

 

'사해 두루마리'는 그 뒤로 수케닉 박사의 아들이자 1963년에 마사다 요새를 찾아낸 야딘(Yadin)이 사무엘 대사교의 두루마리를 25만 달러에 사들여, 모두를 이스라엘 정부에 기증했다.

 



쿰란에서 발견된 구약성경 사본 수

모세오경 : 창세기(19), 출애굽기(17), 레위기(13), 민수기(8), 신명기(33)

역사서 : 여호수아(2), 사사기(3), 사무엘기(4), 열왕기(3), 역대기(1), 이사야(21), 예레미야(6), 에스겔(6), 다니엘(8), 소선지문서(8)

성문서집 : 에스라-느헤미야(1), 시편(34), 욥기(4), 잠언(3), 룻기(4), 아가(4), 전도서(2), 애가(4), 집회서(1)




사해성경은 그리스도교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죠.

이것은 외경을 인정하냐 안하냐하는 문제로 카톨릭과 갈라진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해사본은 어느쪽이나 다 인정하는 '구약성서'의 내용이기 때문.

문제는 신약성서의 내용도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고...간단히 말하자면 이게 시대가 너무 앞서 있었다는 겁니다.

유명한 이야기니까 다들 알것 같지만, 구약성서는 예수 탄생이전을 기록하고 있고, 신약성서는 예수탄생이후죠.

헌데 예수의 언행을 기록했다고 하는 신약성서의 내용이 예수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정립된 사상이었다면?

이전부터 정립되었던 사상을 예수는 짜집기하여 좋은 부분들만 간추려서 자신의 사상인 것처럼 내세웠다는 뜻이 되죠.

즉 반그리스도들에게 일컬여지는 [세계 최고 희대의 사기꾼 예수]라는 것을 뒷받침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교인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를 부정할수 있겠는가?

아니죠. 그러니 사해사본을 부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전인류를 구제한다는 내용이 성경이지만, 이 사해성경은 자신들만을 구제해주기를 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당시 사회상을 알아보는 데는 정말 중요한 자료는 되지만....이런 이유로 성경취급을 받기는 무리.



문제는 사해성경을 교리로서 기독교의 한 종파가 새로 나왔다는 소문....ㅎㄷㄷ

가지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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