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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서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의 가족은 부모님과 형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가게를 하시는 부모님께서는 조용한 성격을 지니셨습니다. 저희 두 형제도 부모님의 영향으로 모두가 조용한 편입니다. 형은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이 강해서 항상 저에게 모범이 되는 행동을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과 다름없이 살아오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장애인이라는 것 때문인지 왠지 사회봉사에도 관심이 있어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도 단지 학교에서 하라는 봉사시간을 채우려는 목적이 아니라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와 시간 받았다는 증명서를 받지 않은 채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에 올라온 지금도 봉사활동시간은 전혀 상관없는 일본유학과에 와 있는 데도 적어도 한 달에 두 번씩 가까이에 있는 사회복지관에 가서 4~5시간정도 봉사활동을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1등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형은 가게 일로 바쁘신 부모님의 역할까지도 하는 의젓한 편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잔정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여자 형제가 없어서 어머니께서 혼자 집안일을 다 하시는 것이 마음아파 초등학교 때부터 설거지 등을 종종 하였습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녀를 떠나 집안일은 분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음식을 하거나 청소도 합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부모님께서 직장을 바꾸셔서 대전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린나이에 혼자서 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코피도 쏟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기도 했지만, 한 학기가 지나고 부터는 익숙해졌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의 자취 생활은 대학 입학 후의 기숙사생활로까지 이어졌으니 꽤 오랜 시간을 혼자 보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취 생활에서 자립심을 길렀고 혼자 있는 시간에 많은 사색을 할 수 있어 저에게 많은 보람을 주었던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평소에는 조용한 성격이면서도 친구들과 놀 때는 밤을 새기도 할 정도로 노는 것에 열심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특별활동으로 일본어 반에 들게 되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어가 저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어로 제작된 영화나 만화책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지다가 차츰 혼자서 일본어를 말해보기도 하고, 일본어 작문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 진학 때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일본유학과를 선택했습니다.





문광희 : 내가 왜 이런 걸 쓰고 있지? 거짓말 투성인데;; (2004.07.12 13:11) 댓글버튼 수정버튼 삭제버튼
송은선 : 문짱 이거 감동인데? (2004.07.12 19:11) 댓글버튼 삭제버튼
김주영 : 오~문짱!! 멋쟁이다~~~~ (2004.07.13 00:09) 댓글버튼 삭제버튼
문광희 : 감동은 얼어죽을-0-;; (2004.07.13 12:22) 댓글버튼 수정버튼 삭제버튼
변정수 : ......? (2004.07.13 23:26) 댓글버튼 삭제버튼
변정수 : ...내꺼가 더 거짓말 같은데;; (2004.07.13 23:27) 댓글버튼 삭제버튼
문광희 : 원래 이런 건 다 거짓말로 쓰는 거야-_- (2004.07.14 02:57) 댓글버튼 수정버튼 삭제버튼
노종성군 : 광8아!! (2004.07.15 19:23) 댓글버튼 삭제버튼
문광희 : 초등학교 때부터 1등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형은 <=== 찔리는 말이다.. (2004.09.13 12:07) 댓글버튼 삭제버튼





지금보면 재미있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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