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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하마데라 공원에서만 놀다가 지쳐서 딴 공원도 좀 가보자 싶어 큰 걸음하고 나온 자비에루 공원입니다.



공원 설명...


흠흠하고 보다가...!!





한국어도 있군요.

프란시스코 자비엘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걸 보고 자비엘인가 싶었는 데,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자비에르가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듯...-0-;;


그러나 사실 제대로 된 이름은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라는 것이 웃음 포인트...ㅋㅋㅋㅋ


ㅋㅋㅋ

ㅋㅋ





우리나라에선 프란시스코 자비에르? 누구임?

이런 느낌인데...일본에선 이사람 모르면 간첩수준입니다 ㅋ




그럼 위키를 긇어봅시다



종교개혁 후 개신교로 전향한 사람들의 전도를 막기 위해 직접 선교에 나선 그는 포르투갈사람인 알파르스 선장을 통해 사쓰마 번 태생의 일본인 부시(武士)야지로를 알게 되었다. 하비에르는 야지로(바오로 디 산타후에), 야지로의 동생(요한네스), 야지로의 부하(안토니오)에게 예수회 교리를 가르쳐, 1548년 3월 성령강림주일에 세례를 받게 하였다. 야지로가 포르투갈말을 잘하게 되자, 하비에르는 1549년 8월 15일 야지로를 포함한 7명의 일행(로마 가톨릭 사제, 수도사, 중국인 봉사자 등)들과 일본 최남단 가고시마 현에서 전도하기 시작했다. 1549년 9월 29일 하비에르 일행은 다이묘 시마츠의 초대로 그의 성에 갔는데, 하비에르 일행은 이곳에서 시마츠에게 화승총을 선물했다.[1] 다이묘는 크게 기뻐하며 전도를 허용하는 것은 물론 종교의 자유도 인정하였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하비에르 신부는 《예수의 길》이라는 기독교 책을 일본어로 발간했다. 당시 하비에르의 기록을 보면 그가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당시 일본문화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은 대단히 예의가 바른 사람들인데, 잘 사는 것보다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기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서 남자는 14세가 되면 항상 칼을 옆에 차고 다닙니다. 사무라이는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무기를 항상 갖고 다니며, 다이묘에게 충성을 바치는 일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비에르 신부는 《공교요리》(公敎要理)라는 기독교 교리해설서를 쓰기도 했는데,이를 읽고 감명받은 베르나르도라는 무사가 하비에르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하비에르 신부는 베르나르도를 일본 교회의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예수회에 가입시켰으며, 로마에 보내 신학공부도 하게 했다. 얼마후에는 미켈이라는 농부를 포함한 15명이 신자가 되었으며, 1년간의 전도로 1백명에서 1백 50명이 신자가 되었다. 하지만 불교 신자들의 반발로 시마츠 다이묘가 기독교에 대해 차가운 모습을 보이자, 야지로에게 교인들을 맡기고 교토로 가기로 했다. 1551년 하비에르 신부는 히라도와 야마구치 현을 거쳐 교토에 갔지만,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다시 야마구치에 되돌아갔다. 예수회는 오우치 다이묘에게 화승총 등을 선물하자 이에 크게 기뻐하며 대도사라는 빈 절을 교회로 내줄 정도로 하비에르의 전도활동을 도와주었다. 야마구치에서 5개월간 전도한 하비에르는 중국에서의 전도를 위해 1551년 중국에 갔지만 입국하지 못하고, 이듬해 11월 27일에 광둥 성 앞의 섬에서 열병으로 별세하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본에 처음 기독교를 전파한 사람으로 유명하단 거죠.



그럼 공원사진!





예전에는 이부근이 호수같은 느낌으로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물로 채워져 있었는 데, 언젠가부터 물이 없어졌다고 함..










참...세월을 느끼게 만드는 군요




이제 이런 곳도 자유자재로 올라서는 아드님!









음...마무리는 해맑은 웃음의 저 ㅋㅋㅋ



참...모든것이 세월을 느끼게 만드는 공원이었습니다.

그냥 원래 놀던 하마데라 공원에서 노는 게 제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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